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샤장 Aug 11. 2021

이참에

참으로 아찔한 경험이었다. 며칠 전, 자고 일어났더니 하룻밤 새에 아이패드가 먹통이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SNS 계정은 해킹을 당했다. 그 게 뭐 별거냐 싶지만 휴대전화 대신 태블릿 PC로 모든 업무를 처리하는 내게는 별거요, 대수였다. 사실 아이패드는 올 초부터 새 기기로 바꾸고 싶었던 터였다. 신의 계시겠거니 하며 일말의 고민도 없이 새 아이패드를 위해 거금을 지불했으나 그다음 문제는 SNS 계정이었다.


프랜차이즈 지점을 관리하는 것이 내가 맡은 직무에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 때문에 각 지점별로 개설해 놓은 채팅방과 부서별, 업무별, 협력업체별 등으로 분류해둔 채팅방만 어림잡아 200개 이상은 되었다. SNS 계정 복구 불가 판정을 받는다는 것은 저장된 모든 업무 히스토리 역시 불치의 판정을 받게 된다는 의미였다. 업무 히스토리를 잃은 나는 업무적으로 대단한 태만을 저지르는 것과 진배없는 사람인 것이다.

그 순간 인스타에서 본 두꺼비 움짤이 생각났다. 두꺼비가 물이 넘치는 하숫구멍 앞에 하염없이 앉아 있는 영상이었는데, 거기에다 누군가가 우스꽝스러운 더빙을 입혀 놓았다. 그 영상 속 두꺼비는 ‘콩쥐야 X 됐어’를 잔망스럽게 외친다. 마치 물 빠진 독을 막는 데에 실패한 것처럼 보이도록 말이다. 그리고 복구되지 못한 계정 앞에서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던 나도 결국 그 두꺼비가 되었다.


아이클라우드의 용량이 다 찼던 터라 최근 몇 달간의 메모와 사진은 업데이트되지 않아 있었다. 동기화도 되지 않는 고장 난 태블릿 PC와 복구되지 않는 SNS 계정이 이렇게나 큰 영향을 끼칠 줄은 몰랐다. 살리지 못한 데이터들과 함께 지난 몇 년간의 내 삶도 같이 사장되어 버렸다. 대단치도 않은 계정 하나와 기기가 내 인생의 한 조각을 앗아가 버린 것이다. 복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억울함보다는 대단찮은 것들에게 기대었던 내 삶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그래도 한가지 위안 삼을 점이 있다면 강제 리셋 덕에 불필요하게 메모리를 차지하고 있던 데이터와 연락 리스트를 싹 정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며칠 전에 필요한 업무 자료는 대강 정리하여 드라이브에 올려두었기에 지금 잃은 것들은 대부분 다른 팀원을 통해서 요청하거나 잊어도 되는 것들이다.


핏블리라는 헬스 유튜버가 최근 일 년간 화제가 되었었다. 치즈볼BJ로 더 유명한 그는 코로나 때문에 강제로 휴업하게 된 자영업자 중 한 명이었다. 영업 중지된 본인의 헬스장에 앉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치즈볼 먹방을 진행했다. 남들처럼 홈트영상만으로 유튜브 채널을 이끌어 갔다면 이런 성공은 없었을 것이다. 헬스트레이너로서는 절대 금기시 여겨야 할 음식을 먹는 모습에 보는 이로 하여금 신선한 자극을 주었고, 그를 바탕으로 조금씩 방송과 타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려갔다. 현재는 헬스장 운영이외에 바디 프로필 촬영을 전문으로 하는 사업을 하면서 재기를 했다고 한다.


거리두기 4단계가 실시된 첫 주말인 엊그제에는 내가 관리 하는 대부분 매장들이 몰려드는 배달주문에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지난 몇 년간의 통계치로는 한참 더운 여름 시즌은 사실상 뜨거운 찌개를 파는 우리 브랜드는 비수기로 보았던 게 맞다. 홀 매출은 물론 감소했지만 코로나 4단계가 또 다른 기회로 작용을 하여 성수기로 이끈 것이다. 물론 이는 배달을 도입하지 않거나 배달을 도입했더라도 조리를 하지 없이 밀키트만 파는 곳은 예외다.


이참에라는 말이 있다. 혹자는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는 거창한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코로나 4단계의 발표는 내 SNS 계정에 내려진 사형 선고와도 같았다. 그러나 이참에 내가 버릴 것은 버리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처럼 각 매장의 점주들도 이참에 새로운 시도를 했으면 좋겠다. 새로운 메뉴의 도입도 좋고 새로운 판매 플랫폼을 도입하는 것도 괜찮다. 하다못해 바쁘다는 핑계로 정비하지 못했던 매장 환경을 개선해 보는 것도 좋다. 이참에. 또 다른 기회로 만들지는 못해도 적어도 하향세의 반환점으로는 만들 움직임이 필요하다. 이참에 말이다.

                                              손님이 일찍 끊긴 날, 이참에 대청소

이전 04화 흐름이 끊기지 않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