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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장 Aug 11. 2021

친절하지 않습니다

월요일 밤만 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필시 내적 갈등에서 유발된 두통이리라. 내일 있을 디제잉 수업 준비를 하느냐 마느냐 그 것이 문제로다. 고민은 간단하다. 그러나 해결법은 간단하지 않다. 플레이할 노래를 미리 짜둔 것을 믹스셋(Mix set)이라고 하는 데 매주 한 시간 짜리 셋을 준비하기가 점점 버겁다. 이 음악이라는 것이 ’준비, 시작!’ 이라는 신호를 날린다고 하여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히 좋아하는 노래만 모아두는 메들리가 아니라 스토리와 맥락을 갖춘 리스트를 나는 매주 만들어 내야 한다.


이제 써먹을 음악도 다 써먹었다. 소싯적 음악 좀 듣는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왔던 나의 밑천이 바닥 났다. 소진되는 음악의 속도를 디깅해서 얻는 노래의 속도가 따라 잡을 수 없다. 음악에 대한 짧디 짧은 식견으로 여지까지 버텨온 게 용하다. 가끔은 꼼수를 써서 유튜브 뮤직의 알고리즘으로 자동 재생 되는 노래에서 셋을 따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럴때면 어김없이 노래의 맥락이 없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럴때만 AI가 아직은 완벽하지 않다. 인간을 지배하지 않음에 다행을 느끼기 보다는 원망스럽다.


어쨌든 감히 내가 논할 수준은 아니나 좋아하는 노래만 플레잉 한다고 하여 좋은 디제잉은 아니다. 콧노래도 좋아야 삼세번이다. 좋아하는 노래도 적당한 때에 끊고 흐름을 바꿀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 흐름을 바꿀 때도 맥락은 유지를 하되 자연스러운 전환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힙합을 플레잉한다고 가정해보자. 힙합안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메이카에 기반을 둔 댄스홀을 틀다가 급작스레 비트를 잘게 쪼갠 트랩이라는 장르를 틀 수는 없다. 대신에 댄스홀과 그 뿌리가 유사한 그라임으로 트랩과의 사이에 연결 고리를 만들거나 차라리 레게로 장르의 전환을 꾀할 수 있다. 매주 월요일 듣는 글쓰기 수업도, 디제잉도 꾸준한 맥락의 유지 즉 빌드업이 중요한 것이다.

                  로린힐의 Doo wop과 릴 바우와우의 Bow Wow (That's My Name)의 믹싱                    

프랜차이즈의 관리자로서 나는 이 꾸준함에 대해 현장에서 점주들을 설득해야 할 일이 최근에 많아졌다. 장사하기는 더욱 어려워지는 나날의 연속이다. 코로나의 기세가 조금 꺾이나 했더니 이번에는 유례없는 거리두기 4단계가 발표되었다. 유동인구의 제한과 감소는 장사하는 사람에게 물론 치명타이다. 식자재 가격도 오르다 보니 가게를 열어 식자재 로스를 떠안고 인건비만 쓸데 없이 지출 할 바에는 안 바쁠 때 조기에 영업을 종료 하고 가겠다라는 매장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영업시간에 변동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 하는 사실은 손님이 없어서 영업시간을 조정하는 게 아니라 영업시간이 조정되어서 손님의 유입도 조정되었다는 사실이다.


장사에도 빌드업이 필요하다. 고객이 원할 때 언제 어디서든 그 가게가 오픈되어 있어야 미래의 매출까지 약속 할 수 있다. 내가 단골이라고 생각했던 모 사시미집의 경우 닫는 날이 많아졌다. 일주일에 한번은 숙성회를 먹는 낙으로 사는 나는 하는 수 없이 대체재로 다른 가게를 찾기 시작했고, 슬프게도 그 가게를 대체 할 만한 곳을 찾고야 말았다. 혼자 운영한다는 단골집 사장님의 사정이 안쓰러워 어쩔 때는 먹고 싶은 날에도 꾹 참았다가 가게 운영을 재개하는 날 사시미를 시켜먹기도 했으나 나의 친절함도 어느새 바닥이 났다.


대부분 고객들은 나보다 더 친절하지 않을 것이다. 장사를 하는 데에 있어 꾸준하지 않은 영업시간은 다른 가게에게 내 기회를 살포시 양보한다는 의미이다. 내 단골집이었던 사시미집은 어제 부로 영영 나를 다른 횟집에 빼앗겨 버렸다. 나는 친절해도 고객은 절대 친절하지 않다. 그들은 친절할 의무도 없다. 현장에서 장사의 맥락을 유지하려면 꾸준하게 영업시간을 유지하거나 다음과 같은 자연스러운 영업종료의 분위기를 이끌어 내야 한다. "재료소진"

매장에서 적용 할 수 있도록 영업종료 팻말을 이참에  리뉴얼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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