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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진 Apr 17. 2024

봄날의 산책


날씨가 좋으니 자주 걷게 된다. 혼자 걸을 때도 있고 하교 후 아이와 함께 동네 곳곳을 걷는다. 엄마, 산책하러 가자. 엄마, 공원에 가자. 엄마, 숲에 가 보자. 교문에서 내 얼굴을 보자마자 숨도 쉬지 않고 말한다. 아이와 함께 하는 산책은 느리다. 덕분에 주변을 아주 천천히 둘러볼 수 있다. 올해 봄이 유독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이와 거닐며 수많은 꽃과 나무와 하늘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사 온 동네에는 길고양이가 많다. 공원 벤치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거나 숲 속 덤불 안에서 경계심 가득한 눈을 가진 고양이들을 만나곤 한다. 우리는 만나는 녀석들마다 이름을 붙여주었다. 벌써 여덟 마리쯤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아이가 아끼는 작은 수첩은 고양이 도감으로 변신했다. 고양이를 만난 장소와 이름, 특징이 세세히 기록되어 있다. 수첩을 팔랑 넘길 때마다 우리의 봄이 그대로 묻어난다. 봄날의 산책이 주는 기쁨이다.


공원 곳곳에 설치된 운동기구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하나씩 섭렵하고 난 뒤 잡기 놀이까지 하고 나면 나무와 이끼 틈새로 보이는 개미집이 아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흩날리는 꽃비를 맞으며 둘이서 개미집을 들여다본다. 시간은 느릿느릿 흐르고 아무것도 급할 게 없는 하루가 지나고 있다. 나는 베니에 앉아 카메라로 담기지 않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열심히 눈과 마음에 담는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일상 속 고민은 끊이지 않고, 내가 한 선택과 결정이 맞는지 틀린지 확신이 없다. 살아갈수록 명확해지기는커녕 희미해지는 것 투성이다. 생각이 나를 덮칠 것 같은 두려움이 일 때면 아이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그 평화로운 시간은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다. 나를 살리고 우리를 지켰다. 봄은 가고 곧 여름이 올 것이다. 꽃이 지고 연두색으로 나무들이 물들고 있다. 모자를 눌러쓰고,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서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걸을 생각이다. 물론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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