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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진 Mar 13. 2024

서가를 헤매는 아이-2


  책을 읽는데 안절부절못하는 발소리가 들린다. 초등 고학년 남짓 되어 보이는 아이가 서가를 두리번거리고 있다. 책의 위치를 출력한 종이를 손에 쥐고, 청구기호를 살피며 열심히 찾는 중이다. 퍼즐, 퀴즈, 스도쿠, 오목, 바둑… 여러 책들이 손에 들렸다 다시 책장으로 돌아간다. 글씨가 너무 작고 글이 많아서였을까. 슬쩍 살펴보고는 얼른 표지를 덮는 손길이 귀엽다.


  찾던 책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이는 서가 곳곳을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책장 옆면에 붙어 있는 섹션을 살펴보며 제목을 들여다보았다. 과연 이 아이는 어떤 호기심과 흥미를 가지고 있을까. 걸음을 옮겨 스포츠 코너로 가더니 사뭇 진지한 얼굴로 책을 꺼낸다. 무얼 꺼내도 금방 닫게 되는 크고 두꺼운 책들.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가를 마음껏 구경했다.


  읽을 책을 정하지 못하면 어떤가. 서가를 헤매는 것만으로도 도서관에 머물 충분한 이유가 된다. 읽다 멈춰도 되고 지루해 보이면 덮어도 된다. 우리는 서가에서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도서관 청구기호 읽는 법이나 대출과 반납하는 법, 책을 어떻게 소중히 다뤄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도서관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스스로 원하는 책을 검색하곤 한다. 여기까지는 대부분 잘 해내지만 서가에서 책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나 역시 딸에게 여러 번 알려줬지만 여전히 어려워한다.


  스스로 책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그 이후로는 엄청나게 넓고 깊은 세계가 펼쳐진다. 엄마나 아빠, 선생님의 추천 도서가 아닌 내가 읽고 싶은 책, 내가 알고 싶은 것들을 찾아 서가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몇 번쯤 실패하거나 고른 책이 영 재미없고 어려워도 괜찮다. 수많은 실패 속에서도 아이들은 기어코 배우고야 마니까.


  “엄마, 이 책 좀 찾아줄래?“하고 묻는 아이의 손을 잡고 서가로 향한다. 종이를 들여다보며 숫자를 확인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아이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고, 엄마가 어서 찾아줬으면 하는 얼굴이지만 나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서가를 헤매는 아이를 기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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