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쓴 산문집을 좋아한다. 그들이 쓰는 문장은 간결하고 담백하다. 정제된 물을 조금씩 나눠 마시는 기분이다. 문장 곳곳에 사려 깊게 사용된 단어들이 자꾸 마음을 두드린다.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되는 기쁨이 있다. 나는 늘 한 수 배우는 자세로 시인의 산문집을 정독한다. 단어의 의미와 뉘앙스의 미묘한 차이를 생각하며 한 글자 한 글자 아껴 읽는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시인의 산문집은 한 편의 시에 가깝다는 것을.
오늘은 오은 시인의 산문집 ‘초록을 입고’를 읽었다. 요즘과 딱 어울리는 제목이다. 이 책에도 시인이 발견한 다양한 단어들이 등장한다. 읽다가 몇 번이나 멈추고 단어의 뜻과 예문을 찾아보았다. 평소 읽는 것보다 두 배 이상의 시간이 걸리고 심지어 아직 반도 읽지 못했다. 하지만 이 쏠쏠한 재미를 놓칠 순 없다. 흥미로운 단어들이 계속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막연히 알고 있었거나 잊어버린 단어도 있었다. 새로 알게 된 단어를 수첩에 적어두고 소리 내어 읽어 보았다. 아직 입에 붙지 않아 어색하다. 이렇게 모은 단어들은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된다. 마치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아 언젠가 올 봄을 기다리는 것처럼. 나 역시 단어를 모으고 글을 쓰며 많은 사람들에게 내 글이 읽힐 날을 기다린다.
내친김에 짧은 문장 몇 개를 써보기로 한다. ‘곱거나 아름다운’이라는 뜻을 가진 ‘빛있다’를 오늘의 단어로 골랐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카페 창 밖 풍경 같은 단어다. 빛있는 초록이 넘실대는 5월의 아침. 나는 초록에 기대어 글을 쓴다. 테이블 위에는 시원한 커피와 노트와 펜, 시인의 산문집이 있다. 좋아하는 곳에서 빛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모아둔 단어를 엮어 글을 쓰고 나면 반나절이 훌쩍 지나 있겠지. 오후가 되면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그림자가 생겨날 테고 나는 그 사이를 통과해 집으로 갈 것이다. 별다를 것 없지만 꾸준한 일상이 모이면 빛있는 풍경이 된다.
행복한 마음으로 오래 글을 쓰고 싶어 시인의 산문집을 읽는다. 읽는 내내 이런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잘 쓰고 싶어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나도 빛있는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마음을 두드리는 단어가 가득한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많은 사람들과 만나는 나의 글이 누군가의 마음을 간질이며 쓰고 싶게 만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