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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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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진 Jun 17. 2024

우주 너머로 떠나는 글


글 쓰고 온다는 나의 말에 당연한 것처럼 잘 다녀오라 말해주는 나의 남편, 나의 아이. 고마운 두 사람 덕에 도서관에 앉아 글을 쓴다. 주말이지만 늘어지고 싶지 않았다. 매일의 루틴을 그대로 이어가고 싶었다. 건강한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하루를. 가방을 챙기고 문을 나서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주말인데 이렇게 나와도 되나. 눈 딱 감고 밖으로 나섰다. 순식간에 혼자가 되었다.

     

오늘 온 도서관은 낡았지만 서가 정리가 매우 잘 되어있는 곳이다. 단정하고 쾌적하다. 주말 아침 이곳에 앉아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순간 기쁨이 차올랐다. 작은 것을 들여다보면 감사할 것투성이다. 화낼 일도 미워할 일도 속상할 일도 없다. 모든 건 마음이 만들어내는 신기루 같은 것. 어떤 하루를 만들어 갈 것인가는 내게 달려 있다.

    

지난봄, 제주의 한 과학관에서 우주에 관한 영상을 보았다. 의자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자 우리 은하에 대한 설명과 함께 드넓은 우주가 눈앞에 펼쳐졌다. 까만 어둠에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먼지보다도 작은 존재임을 생생히 느낀 순간이었다. 그때 생각했던 것 같다. 유의미한 삶을 살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자고.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과연 무엇일까 고민해 보자고 말이다.

     

우리 각자에게는 자기 몫의 그릇이 있다. 이 그릇에 어떤 삶을 채우고 비워 나갈지는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나는 내 그릇에 부지런히 단어와 문장을 채우고, 자연과 사랑을 채우고, 사람을 채우기로 했다. 차고 넘칠 땐 글을 쓰며 천천히 비워내고 있다. 내게 주어진 삶의 그릇은 나만이 채우고 비울 수 있다. 꾸준히 하다 보면 내 삶에 저절로 좋은 것들이 배어 나오지 않을까.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말이다.

    

모니터 앞에 앉은 나 자신만이 매일 써 내려가는 나의 글을 읽는다. 언젠가 많은 사람들에게 닿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때 부끄럽지 않을 글을 쓰고 싶다.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작은 먼지에 불과한 내가 우주 너머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나는 비록 닿지 못해도 나의 글은 어디든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돌고 돌아 언젠가 낯선 곳에서 나의 글을 정면으로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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