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은 수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수진 Sep 04. 2024

다시 책상 앞에 앉는 일



오전 열 시. 이 시간에는 꼭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작은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커서가 깜빡이는 하얀 화면을 본다. 어제 늦게 자고 일어난 탓에 눈꺼풀은 무겁고 몽롱한 상태지만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는다. 졸리다는 이유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허비하고 싶진 않다. 일단 뭐라도 쓰기로 한다. 쓰고 나서 하고 싶은 다른 일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쓰는 사람이라면 글을 써야 한다.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동안 쓰지 않고 흘려보낸 날이 너무 많았으므로 더 이상 미루거나 도망칠 수 없다. 그러면 나는 영원히 쓰는 삶과 멀어지고 말 것이다.

     

남편 서재에서 의자를 끌고 왔다. 허리를 받쳐주는 부분이 편하고 쿠션감이 좋아 오래 앉아있기 안성맞춤이다. 두 개를 사기엔 부담스러운 가격이라 나는 상대적으로 가성비가 좋다고 소문난 의자를 선택했는데 영 불편하다. 결국 글을 쓸 때마다 남편 의자를 끌고 오는 모양새가 우습다. 너무 저렴하거나 가성비를 따지다 보면 되려 돈이 두배로 들 때가 있다. 알면서도 자꾸 가성비의 덫에 걸리는 것처럼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진득하게 쓰다 보면 글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생동감이 넘친다. 그 방향이 맞다는 걸 알면서도 게으름과 귀찮음,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미루고 미루다 글을 쓰는 미련함이 비슷하다. 글쓰기보다 우선인 것들이 일상에 너무 많다. 이래서는 평생 제대로 된 글을 써보지도 못할지도 모른다.

     

아이의 여름방학이 끝나고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생기자 어떻게든 다시 책상 앞에 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노트북 화면을 마주하기 두렵다면 종이 위에 펜으로 쓰면 된다. 글쓰기를 가장 먼저 시작하자. 뭐라도 쓰고 나서 하고픈 일들을 하자. 얼른 집안일을 다 끝내야 할 것 같고, 자꾸만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싶고, 뭘 써야 할지 망설이고 싶은 마음들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곳엔 까만 두려움이 있었다. 내가 정말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그동안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던진 지루한 질문이었다. 답 없는 고민을 붙들고 지지부진 망설이고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엉덩이가 몇 번이나 들썩거렸다. 빨래가 끝났음을 알리는 세탁기 알림음 소리가 들리자 얼른 널어야 할 것만 같고, 갑자기 냉장고 속 요리 재료가 부족한 것 같아 당장 저녁메뉴 고민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글쓰기 보다 엊그제 산 책을 먼저 읽고 싶은데 그 마음을 누르기가 정말 힘들었다. 글을 쓰지 않을 핑계는 산처럼 쌓여가고 할 일은 무수히 많았다. 그런 마음에 지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어떻게든 멈추지 않고 글을 써야만 했다.

     

다시 책상 앞에 돌아와 쓰는 글은 두서없고 거칠고 조잡하지만 가장 솔직하고 투명하다. 글을 통해 나를 정면으로 마주 보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글을 쓰느냐 묻는다면, 그게 내가 태어난 모양이라 답할 수밖에 없다. 읽고 쓰는 과정을 통해 나를 깎아 내고 다듬어 나가야 한다. 혼란스러운 세상의 모든 두려움과 외로움에 가라앉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 비로소 나는 자유롭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한 편의 글 너머에 있는 어떤 시공간 속에 들어가 홀로 고요히 존재하는 기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멈추지 않고 글을 썼다. 글자수가 늘어나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며, 단어와 단어가 연결되고 문장이 완성되는 과정에 희열을 느끼며. 나라는 사람은 어쩔 수 없구나. 쓰는 삶이 지난하고 어려워도 어떻게든 이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글은 가장 먼저 내가 읽는 것이고, 결말도 내가 짓는 것이다. 나의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 글쓰기는 떼려야 뗄 수 없음을 깨닫는다.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시간들을 잘 지켜나가기 위해 다시 책상 앞에 앉을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