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무지개가 겹치는 순간
서울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종로에 왔다. 겨울방학을 맞아 아이와 함께 전시회와 뮤지컬을 보기 위해서다. 코로나가 걱정되었지만 이왕 온 김에 하룻밤 머물고 싶었다. 예약 사이트를 뒤적이다 루프탑 카페를 겸한 숙소를 발견하고 급히 1박 2일 여행을 계획했다. 이곳저곳 부지런히 돌아다니다 늦은 시간에 돌아왔다. 서울의 겨울은 너무 추웠고, 히터를 켜도 냉기가 가시지 않았다. 딸을 꼭 껴안고 자리에 누워 있으니 온기가 돌았다. 나의 작은 아이와 서울에서 보내는 밤. 외롭던 몇 년 전의 수많은 밤이 떠올라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일어나자마자 따뜻한 커피를 사서 루프탑으로 향했다. 평일 이른 아침이라 카페에는 아무도 없었다. 수많은 빌딩과 뾰족한 북한산 끄트머리가 보인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찬 공기가 폐를 뚫을 듯 파고들었다. 루프탑을 한 바퀴 둘러보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좁고 구불거리는 오래된 골목길과 옥탑방과 텃밭과 화분과 기다란 빨랫줄이 보인다. 옥탑 구석에서 피어오르는 누군가의 담배연기와 높이 솟아오른 빌딩이 내뿜는 하얀 수증기가 뒤섞여 겨울하늘로 퍼져나간다. 낡은 건물과 노포와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과 끝없이 이어지는 자동차와 버스를 바라보며 나의 20대를 생각한다. 종로의 골목에 서면 그 시절의 내가 떠올라 애잔한 기분이 든다.
기억 그대로이면서도 많이 달라져버린 곳. 이 골목에서 몇 잔의 소주와 뜨끈한 잔치국수를, 먹어도 늘 허기지던 편의점 김밥과 도시락을 입에 넣으며 하루를 버텼다. 배신감에 지하철 의자에 앉아 엉엉 울기도 했고, 무기력하게 누워 있던 까만 시간도 있었다. 아이와 높은 곳에 서서 종로를 바라보니 그 시절이 모두 꿈만 같다. 나의 구차했던 시절을 상상도 못 할 아이는 앙증맞은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말간 얼굴을 보다가 문득, 딸은 나와 다른 삶을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스친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다양한 삶을 만나며 살아갔으면. 아이의 삶이 부디 반짝거리고 빛이 났으면.
제주가 고향인 나는 세상 모든 것이 궁금했다.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건 죄다 이 작은 섬 밖에 있었다. 늘 멀리 떠나는 삶을 꿈꾸며 살았다. 서울에서의 삶은 막막하고 힘들었지만 자유롭고 행복했다. 결혼을 하고 육아로 정신없던 중에도 늘 생각했다. 아이만큼은 세상 곳곳을 보고 느끼게 해 줄 거라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며 만들어갈 수 있도록. 꼬물거리는 작은 손을 잡고 앞으로 엄마랑 많은 곳에 가보자 속삭였던 것도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버스와 기차를 타고 멀리 떠나거나, 지하철을 갈아타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여행뿐이었지만.
그렇게 어린 딸과 함께 수많은 여행을 떠났다. 짧으면 하루, 길면 일주일. 고향인 제주에서는 2주 정도 길게 머물렀다. 아이가 힘들지 않도록 세심하게 계획을 짜도 변수는 늘 등장했다. 항상 길을 잃었고, 버스를 잘못 타거나 정류장을 착각하기 일쑤였다. 내가 지독한 길치이자 방향치임을 아이와의 여행에서 깨달았다. 무리한 일정으로 코피를 쏟은 아이를 안고 당황한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딸은 재밌다는 듯 깔깔 웃었다. 엄마의 실수를 웃음으로 넘기거나 괜찮다며 안아주었다.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꾹 참고 걸었고, 자기가 멘 가방의 무게를 견뎌냈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켜켜이 딸의 몸에 쌓여갔다. 여행의 순간마다 아이는 부지런히 연둣빛 싹을 틔우는 나무처럼 자라났다.
루프탑 문을 열고 닫으며 노는 딸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문 틈 사이를 들어오는 두 개의 무지개가 만났다가 멀어졌다가 다시 만난다. 아이와 나의 삶 역시 그럴 것이다. 두 개의 삶이 만났다가 멀어졌다가를 반복하며 몇 개의 교집합이 생길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함께 울고 웃으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겠지. 하루하루 충실하게. 오롯이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더 많은 교집합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 시간이 비록 딸에게 아련한 기억으로 남는다 해도. 부지런히 낯선 곳으로 주저하지 않고 손을 잡고 가야지. 여행에서 본 풍경과 사람들과 냄새와 음식들, 그림과 음악과 책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우리 삶에 단단한 뿌리가 되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