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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진 Dec 27. 2023

아이가 안경을 끼게 되었습니다


  딸이 안경을 끼게 되었다. 부부 모두 시력이 좋지 않으니 안경을 끼게 되리라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빠른 시기였다. 가끔 유치원에서 멀리 있는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시력검사를 해봐야지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병원에서 길고 긴 대기시간을 버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별일 없겠지 생각하고 안일했던 게 화근이었다. 아이가 자꾸 머리가 아프다고 하자 느낌이 좋지 않았다. 단순 두통이 아닌 것 같아 그제야 안과로 달려갔다.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아이는 많은 글자를 읽어내지 못했다. 생각보다 훨씬 좋지 않은 시력 앞에서 식은땀이 났다. 알레르기가 심하고 근시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남편과 눈이 마주치자 둘 다 눈에 후회가 가득했다. 아이 앞에서 차마 당황한 티는 낼 수 없어 입만 꾹 다물고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불편했을까. 눈을 비비거나 영상을 보면 눈이 시리다고 할 때 바로 병원으로 왔어야 했는데. 뿌연 세상을 보고 있었을 딸을 생각하니 죄책감이 밀려왔다. 아무리 근시와 난시, 비염, 아토피를 달고 사는 아이들이 많아졌다고 해도 아이가 아프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모든 부모가 똑같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신경 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까지 시력이 떨어졌다 답답할 노릇이었다.

     

  정확한 시력 측정을 위해 약을 넣고 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아이는 무서웠는지 아예 눈을 뜨지 못했다. 못 넣겠다며 엉엉 우느라 약을 제대로 넣어보지도 못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알레르기 반응이 올라와 눈이 퉁퉁 부어올랐다. 결국 검사는 중단되었다. 입학이 코앞이고, 일상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있으니 안경을 쓰는 게 좋겠다고 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자기가 안약을 제대로 못 넣어서 미안하다는 아이의 말에 참았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좀 더 세심하게 신경 쓸걸. 엄마가 다 미안해. 불편하고 안 좋은 건 다 막아주고 싶었는데 너무 미안해.

 

  나는 어린 시절부터 안경을 꼈다. 늦은 밤 어두운 불빛 아래서 책을 읽다가 시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초등학교 내내 안경에 관련된 각종 별명을 섭렵했다. 낮은 시력이 주는 불편함은 일상에서 종종 걸림돌이 되었다. 아이만큼은 최대한 좋은 눈을 갖길 바랐다. 어두운 곳에서 책을 읽어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집에 텔레비전도 두지 않았고, 가끔 보는 영상도 길게 보여주지 않았다. 틈나는 대로밖에 나가 뛰어놀았고, 햇빛도 잔뜩 쬐며 자란 아이였다. 대체 왜 시력이 떨어진 걸까. 억울하고 속상했다. 수시로 안과 검진을 하면 괜찮았을까. 눈에 좋은 영양제를 꾸준히 먹였어야 했나. 병원에 다녀온 뒤로 우울한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눈에 좋은 음식과 생활습관을 찾아보며 한숨만 쉴 뿐이었다.

     

  아이의 첫 안경을 다 같이 사러 가던 날,  고심 끝에 고른 것은 투명한 테의 동그랗고 귀여운 안경이었다. 딸은 마음에 쏙 든다며 해맑게 웃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 같다며 남편도 나도 따라 웃었다.


  “엄마, 난 안경 끼니까 잘 보여서 오히려 좋아. 그러니까 너무 미안해하지 마, 알았지?”


  씩씩하게 나를 안심시키던 아이. 안경테 너머 반짝이는 딸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에게 언제나 좋은 것만 주고 싶었다. 마음 아프고 힘든 건 건다 내게로, 딸에게는 밝은 것만 가득하길 바랐다. 그러나 안경을 쓴 아이를 보며 깨달았다. 애쓰면 애쓸수록 나의 불안한 마음은 아이가 제일 먼저 알아챈다는 사실을. 모든 것은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두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아이는 어디든 안경 케이스와 함께 간다. 학원에도 도서관에도. 심지어 밤에는 머리맡에 두고 잠이 든다. 동그란 안경을 낀 아이의 얼굴이 귀엽다. 생각보다 잘 어울려서 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무겁지만 딸의 눈건강을 위해 열심히 노력 중이다. 결명자도 사두고, 당근이며 시금치, 생선, 블루베리와 딸기도 든든히 준비해 두었다. 수시로 창 밖 멀리 보며 눈을 쉬게 하고, 재미있는 표정으로 안구운동도 한다. 아이 역시 용기를 내어 눈이 건조해지지 않도록 인공눈물을 넣고, 먹기 싫은 야채도 먹어본다. 그래, 안경을 껴도 시력이 나빠져도 다 괜찮아. 씩씩하게 방법을 찾아내면 되니까. 이미 일어나 버린 일에 속상해하지 말자. 분명히 그 안에도 좋은 점은 있을 테니까. 이렇게 또 한 번 우리들의 마음은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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