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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진 Jan 03. 2024

눈물 먼저 사람


  당신은 어떤 순간에 눈물이 나는가. 사실 나는 대중없이 우는 사람이다. 감정을 느끼면 바로 눈물이 차오르는 '눈물 먼저 사람'이다. 이 단어는 지난밤 딸과 함께 만들었다. 속상했던 이야기를 하는 아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친구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아 화장실에서 눈물을 닦았다더니 내 앞에서는 엉엉 운다. 눈물을 방울방울 매달고 이야기하는 아이를 보며 새삼 느낀다. 우리는 참 많이 닮았다.


  “괜찮아, 엄마도 자주 울어. 울고 싶지 않은데 눈물이 먼저 차오르지? 엄마도 그래. 그거 이상한 거 아니야. 괜찮아, 다 괜찮아.”

  “그럼 우리는 눈물이 먼저 나는 사람이네? 그러니까 우리는 눈물 먼저 사람이라고 하면 어때?”

  “너무 좋다 그 말. 우리 눈물 많은 사람 말고, 눈물 먼저 사람 하자.”

  아이와 나는 이 단어가 마음에 쏙 들었다. 울고 싶지 않아도 눈물이 솟아오르는 난처함을 이 단어 말고는 표현할 수 없다. 아무도 이해 못 할 우리의 마음을 감싸 안아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못 말리는 울보였다. 어린 시절 앨범을 보면 눈이나 코가 빨개져있거나 울먹이는 얼굴로 찍힌 사진이 많았다. 섬세한 기질을 타고난 내게 세상은 시끄럽고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왜 이리 눈물이 많냐, 운다고 해결될 줄 아느냐, 울 일 아닌데 뚝 그쳐라. 모진 말을 참 많이도 들었다. 그냥 눈물이 차오르는 걸 나더러 어쩌란 말인지. 억울하고 속상했다. 감정을 표현하는 다른 방법을 몰랐으니 그 후로도 눈물은 계속되었다. 사춘기가 지나고 어른이 돼서야 겨우 눈물을 참을 수 있었다. 입을 꽉 다물고 조용히 앉아 있던 그때의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 눈물을 구겨둔 채 무슨 생각을 하며 그 시간을 통과했었나.


  좋은 영화를 보거나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 빛나는 문장을 읽고 감탄할 때도 어김없이 눈물이 난다. 기뻐도 슬퍼도 당연히 눈물이 먼저다. 남편과 극강의 말싸움을 할 때도 다르지 않다. 언제나 이 말을 덧붙인다. 울고 싶어서 우는 게 아니야, 그냥 눈물이 차올라서 그래. 남편은 내 눈물을 이해해보려 하지만 이해불가능한 얼굴을 하고 있다. 감정으로 사람을 만든다면 바로 나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스스로가 버거웠다. 당최 이 눈물을 어쩔 수가 없으니 답답했다. 그랬던 내가 아이를 키우며 많은 것이 변했다. 눈물이 그렁한 아이를 보면 꼭 어린 시절의 나를 보는 기분이었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아이에게 해주었다. 울어도 괜찮다고. 세상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감정이 있다고. 그 감정을 통과하면서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면 된다고. 아이는 나와 달리 씩씩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피하지 않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줄 알았다. 그런 아이를 지켜보며 나의 마음도 조금씩 새롭게 자라났다.


  인생의 많은 순간 속에서 다양한 감정을 배웠다. 너울거리는 감정에 정신없이 휩쓸려 다니기도 했다. 어느덧 많이 단단해진 나는 출렁이는 마음을 잔잔하게 만드는 방법을 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 눈물 먼저 사람인 나는 그저 모든 감각 중 눈물이 빠르게 반응하는 것뿐이라고. 그러니 자책하지 말라고 나를 다독인다. 화도 짜증도 눈물도 많지만 따뜻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임을 잊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안아주기. 부족한 부분까지 모두 감싸 안아주는 것이다.


  외롭다는 것은 반대로 나에 대해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외로움은 또 다른 나였다. 기쁨과 슬픔은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 나의 기쁨은 누군가에게는 슬픔이기도 하며, 행복이 찾아온 다음에는 예기치 않은 불행도 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에는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감정의 형태가 있다는 것도.


  어린 시절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은 내 마음속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작은 방 하나를 만들어 그곳에 보관해 두었다. 내가 쓰는 글은 그 방문을 열어 하나씩 꺼낸 것들이다. 나는 내 얼굴을 부드럽게 잡고 좀 울어도 괜찮다 말해주었다. 어린 내가 대답했다. 누군가는 그런 이야기를 해주길 오래 기다렸다고. 어린 나도, 다 커버린 나도 눈물이 차오른다. 눈물이 그렁한 채로 방문을 닫았다. 하고 싶은 말 하나를 꺼내 조용히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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