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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진 Jan 10. 2024

할 수 있다는 기쁨

줄넘기와 아이에 대한 기록


“엄마, 나는 왜 이렇게 줄넘기를 못하는 걸까?”


하교 후 만난 아이 입에서 울음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여덟 살 인생 최대 난관에 봉착했다. 다름 아닌 줄넘기 때문이다. 친한 엄마가 입학 전에 줄넘기를 준비해야 한다며 학원에 다니자 할 때도 관심이 없었다. 아무리 교육 과잉의 기대라지만 줄넘기까지 학원을 가야 하나 싶었다. 잘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다. 에너지 넘치고 운동신경이 좋으니 금방 배울 거라 생각했다.


입학 후 받은 알림 사항에는 아이들의 신체활동을 위해 줄넘기를 진행한다는 공지가 있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괜찮을까 하면서도 잘할 거라 믿은 내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학기 초부터 시작된 줄넘기 시간에 아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고 한다. 한두 명 빼고는 곧잘 넘었다. 딸도 있는 힘껏 뛰어보았지만 번번이 줄에 걸려 넘어졌다. 야, 너 뛰는 폼이 이상해! 푸하하! 하고 놀리는 친구까지 있었다. 아이는 매일 속상함을 한 아름 안고 돌아왔다. 뒤늦게 현실을 파악한 남편과 나는 당황했다. 우리가 줄넘기를 너무 만만하게 봤구나. 이게 학교 생활에 걸림돌이 될 줄이야.


유튜브에서 줄넘기 관련 영상을 섭렵한 남편의 특훈이 시작되었다. 아이와 함께 위풍당당하게 집 앞 공원으로 나섰다. 줄넘기는 생각보다 어렵고 쉽지 않은 운동이었다. 손목을 이용해 리드미컬하게 줄을 돌리는 것부터 어려웠다. 일단 잘 뛰고 싶은 마음뿐인 아이에게 아빠의 말이 들릴 리 없었다. 손목을 돌리기는커녕 팔로 커다란 포물선만 그리기 바빴다. 발을 모아 가볍게 통통 뛰어야 하는데 무작정 뛰어오르는 것이 문제였다. 누가 봐도 아이의 머리와 몸은 완벽히 따로 움직이고 있었다. 발바닥과 다리가 아프다며 벤치에 앉은 아이의 커다란 눈에 결국 눈물이 고였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 결국 연습을 거부했다. 부모가 선생님이 될 수 없음을 느끼며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퉁퉁 부은 눈으로 잠든 아이를 보니 안쓰러웠다. 줄넘기가 이렇게 쉽지 않을 줄 누가 알았나. 진작 학원을 보냈어야 했었나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아이를 키우며 하루에도 몇 번씩 수많은 선택 앞에 선다. 엄마로서 아이의 좌절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고민한다. 너무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게. 적정선을 유지하며 지켜보고 격려하는 일은 늘 어렵다. 생각이 많은 나는 되도록 가볍게 생각하려고 매일 마음을 다잡는다. 내가 무거워지면 따른 더 깊은 늪으로 빠질 테니까. 무거운 일도 나의 마음가짐에 따라 충분히 가벼워질 수 있다. 줄넘기가 싫은 아이에게 할 수 있다는 응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날 이후, 일단 아이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였다. 줄 돌리는 타이밍이 어려워 뛰는 게 어렵고, 친구가 여전히 놀려서 속상했고, 그래도 한 번은 뛰었다는 사소한 이야기들. 아이의 마음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묵묵히 들었다. 그러다 보면 알게 된다. 사실은 너무 잘하고 싶은 진짜 속마음에 대해. 자신감은 말로 북돋아줄 수 있지만 자존감은 시간을 들여 단단해지도록 지켜볼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줄을 뛰어 보고, 속상한 말을 웃어넘기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시간을 통해서.


“엄마, 나 오늘 줄넘기 성공했어! 그것도 열 번!”

아이의 목소리가 하늘을 뚫을 기세다. 멀리서 달려오는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어떻게 그렇게 뛰게 된 거야? 너무 신기하다!”

아무리 해도 잘 되지 않자 아이는 친구들을 열심히 관찰했다고 한다. 아빠의 설명을 떠올리며 손목 돌리는 모습과 발을 모아 뛰는 동작을 유심히 보고 따라 했다. 잘 되지 않는 속상함을 누르고, 자신을 놀리는 친구를 살펴보며 어떻게 하는 걸까 보고 또 보았다. 그리고 조금씩 따라서 뛰었다. 한번 제대로 뛰게 되니 두 번, 세 번은 금방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오늘 갑자기 열 번이나 뛰었다며 기뻐하는 아이가 얼마나 대견했는지 모른다.

“너무 축하해! 진짜 멋지다. 우리 기념으로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


  엄마, 뭐든 노력하면 된다는 말의 뜻을 이제 알 것 같아. 어쩜 이렇게 당차고 순수할 수 있을까. 아이의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어쩐지 부끄럽다. 그리고 아주 많이 부럽다. 아이의 삶에 기대어 나도 잠깐 아름답고 투명한 시간을 통과하는 기분이다. 할 수 있다는 기쁨을 맛본 아이는 앞으로 어떻게 자랄까. 옆에서 지켜볼 딸의 하루하루가 기대된다. 너의 매일을 진심으로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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