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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진 Jan 17. 2024

아이의 옷이 까매질수록

손빨래를 하며 알게 되는 것들


  집에 돌아온 아이의 옷이 새까맣다. 손목 부분의 밴드와 양쪽 무릎, 양말까지 죄다 흙투성이다. 친구들과 모래에 물을 섞어 커다란 강을 만들다 이렇게 되어버렸다며 해실해실 웃는다. 괜찮아, 빨면 되니까. 신나게 놀아서 좋았겠다며 벗어둔 옷을 하나 둘 모은다. 빨랫감을 많이 만들어 미안하다는 말에 신나게 논건 미안한 게 아니라고 대답한다. 아이들은 사소한 일에도 미안함을 표시한다. 나는 셔틀콕을 되받아치듯 저 멀리 그 말을 날려버린다. 매일 더러워져도 괜찮아.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고 신나게 놀기, 알았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갛게 웃는다.


  아이 학교에서는 교실 안에서 양말을 신는다. 실내화를 벗고 활동한다는 건 양말이 매일 더러워진다는 뜻이다. 신나게 노느라 바쁜 딸의 양말과 무릎은 늘 까맣고 구멍도 자주 난다. 같은 바지를 벌써 몇 번이나 샀다. 입학 후 손빨래는 일상이 되었다. 처음에는 귀찮고 힘들었다. 팔목도 아프고 집안일 하나가 더 추가된 것 같아 심통도 났다. 지금은 때가 잘 지워지는 비누도 찾았고 나름 방법도 생겼다. 빨래를 물에 담가 때를 불린 뒤 비누를 슥슥 묻혀 마치 고기 양념을 재우듯 비눗물에 빨래를 넣어둔다. 마지막으로 거품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여러 번 헹구기. 얼룩제거제로도 지워지지 않는 건 흐린 눈을 하고 넘긴다. 완벽한 빨래는 없다. 이런 마음가짐이 아니면 손빨래는 스트레스가 되기 쉽다. 물론 가끔은 스트레스가 풀릴 때도 있다. 새까만 양말이 본래의 색을 찾을 때 느끼게 되는 희열이란. 아이의 옷을 빨며 찾은 작은 기쁨이다.


  손빨래를 하며 아이의 하루를 상상한다. 어떤 날에는 클레이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 매직이나 색색의 사인펜이 묻어 있을 때도 있다. 밥알이 딱딱하게 굳어 있거나 빨강과 갈색의 양념을 흘린 흔적도 발견된다. 오늘은 친구들과 이런 놀이를 했구나, 이런 반찬이 나왔구나. 옷이 더러워질수록 아이는 그날 하루를 맘껏 즐긴 셈이 된다. 내 품을 떠나 또 다른 세상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음을 알게 된다. 속상한 날엔 소매와 팔에 눈물이 스몄을 테고, 화나는 날엔 도서관에서 마음을 달래느라 엉덩이에 먼지가 가득할 것이다. 즐겁고 신나는 날엔 오늘처럼 여기저기 까맣다. 구석구석 기쁨이 가득하다. 더러워진 신발을 벗어던지며 오늘도 아주 즐거웠어! 라며 집으로 돌아온 딸의 얼굴을 보면 나의 긴장도 그제야 풀린다. 다행이다. 너의 하루에 웃음과 기쁨과 행복이 많았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엄마, 내일은 까만 바지 입고 갈게. 내일도 모래놀이 할 건데 빨래하기 힘들잖아.”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마음이 쓰였던 모양이다. 오늘 만든 강을 내일은 더 길게 이어서 만들기로 했다는 목소리가 벌써 들떠 있다. 돌아오자마자 내일 입고 갈 옷을 준비하는 아이를 보며 좀 더 두껍고 튼튼한 양말을 사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창밖의 하늘은 높고 파랗고, 기분 좋은 햇빛이 집안 가득 들어오는 오후. 창가에 건조대를 펼치고 탕탕 경쾌한 소리를 내며 빨래를 턴다. 개운해 보이는 빨래를 하나 둘 널었다. 햇빛을 머금은 빨래는 내일이면 따뜻한 냄새를 품고 딸과 함께 학교로 갈 것이다. 또 어떤 이야기가 아이의 소매와 무릎과 엉덩이와 양말과 운동화에 스며들까. 기쁨을 쌓아가는 아이의 매일이 아름답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가을이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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