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대하는 태도에 관하여
겨울 방학을 맞아 미리 예매해 둔 전시를 보러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가는 미술관이라 설레는 건 아이도 나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에 하루 머무를 계획으로 짐을 싸다 보니 두꺼운 옷 때문에 캐리어는 필수였다. 기차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들고 다니느라 팔이 아프고 어깨가 빠질 것만 같았다. 전시와 연계된 키즈 프로그램 예약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조급해졌다.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뛰어올라갈 자신이 없어 엘리베이터를 타기로 했다. 교통약자를 위한 것이므로 아이와 함께 못 탈 이유는 없었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나 지금은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다. 맨 앞에 줄을 서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그때였다. 내 어깨를 밀치며 새치기를 하는 할머니가 나타난 것은. 황당한 얼굴로 쳐다봤지만 모르는 척 뒤통수만 나를 향하고 있었다. 삽시간에 줄은 길어졌고 곧 문이 열릴 타이밍이었다. 갑자기 할머니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얘, 여긴 나 같은 노인들만 타는 건데 양심껏 옆으로 좀 비켜서야 하지 않겠니? 방해되잖아.”
라는 게 아닌가. 너무 놀라 말문이 막힌 나를 위아래로 쳐다보며 못마땅하다는 눈길까지. 새치기해 놓고 무슨 적반하장이냐며 따지고 싶었지만 열린 문 사이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도 구겨지듯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출렁이는 화를 겨우 누르고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이상한 사람 다 봤다며 딸을 다독이는데 아까 그 할머니가 같은 방향으로 오는 게 아닌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또 맨 앞에 당당히 서는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이쯤 되면 새치기가 일상이고 권리라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가는 곳마다 새치기를 하네. 아이들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나?”
결국 속마음이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그 말을 들은 내 앞에 서 있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내 팔을 끌어당기며 우리를 앞으로 보내고 되려 자신이 뒤로 가는 게 아닌가. 괜찮다고 사양해도 내 어깨를 토닥이는 손길이 부드러웠다. 추운 날 고생 많다고 말하는 목소리에 온기가 가득했다. 뾰족했던 마음이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었다.
“예술의 전당 가는 길인가 봐요. 나도 아이들 어릴 때 참 많이 갔는데. 우리 예쁜 친구, 엄마랑 재밌는 곳도 가고 좋겠네.”
따뜻하게 아이를 쳐다보던 눈길이 내게로 옮겨왔다.
“이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나중에는 큰 추억이 되니까 부지런히 많이 다녀요."
캐리어를 든 아기 엄마가 있으니 뒷문으로 타게 해 달라 기사님에게 부탁하는 말에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잔뜩 날이 서 있던 내 마음이 차츰 동글동글 부드러워졌다.
자리를 잡고 앉았더니 앞뒤로 나란히 앉은 두 할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의 삶에는 수많은 역사가 쌓여 있을 것이다. 어떤 시간을 통과하면 이렇게 상반된 태도로 타인을 대하게 되는 걸까. 버스의 덜컹거리는 리듬에 맞춰 흔들리는 할머니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이가 물었다. 유치원에서 새치기하면 안 된다고 배웠는데 할머니는 왜 하는 거냐고. 어른들은 이상하다고. 할 말이 없었다. 안된다고 하는 건 많으면서 정작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어른이니까. 나 역시 그런 순간이 분명히 많았으니까.
예술의 전당으로 향하는 길 내내 따뜻한 할머니가 몇 걸음 앞서 걸었다.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반대편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고맙다 목례하는 이에게 눈웃음을 보내는 걸 보니 배려가 몸에 밴 멋진 사람이었다. 우리 삶 곳곳에 할머니 같은 사람이 많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좀 더 살갑고 부드러운 사람이 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엄마, 우리도 저렇게 따뜻한 사람이 되자라고 아이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자고 대답했다. 엄마는 오늘부터 부지런히 자라서 다정한 아줌마가 먼저 되고, 마지막엔 꼭 다정한 할머니가 되겠노라고. 딸이 푸하하 웃으며 내 손을 꽉 잡았다. 엄마는 새치기 안 하니까 그럴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덧붙이며. 다른 사람이 내게 다정하길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기로 한다. 따뜻한 온기를 가진 그런 다정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