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매일 무언가를 쓰는 엄마가 신기했던 모양이다. 내가 읽는 책이나 노트와 펜의 종류를 유심히 관찰해 온 아이. 설거지를 마치고 식탁 끄트머리에 앉아 일기를 쓰는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불쑥 묻는다. 이렇게 매일 쓰는 게 힘들지 않냐고. 사실 이렇게 꾸준히 일기를 쓰는 건 엄마도 처음이라고 대답했다. 제각각 다른 목적을 지닌 노트들을 펼쳐 보여주었다. 문장을 필사하거나 떠오르는 생각을 끄적이는 노트. 하루를 시작하거나 마무리하며 쓰는 일기장. 이리저리 살펴보던 아이가 수줍게 말을 꺼낸다. 자신도 엄마처럼 예쁜 노트에 펜으로 글을 쓰고 싶다고. 실은 이 말이 하고 싶었구나. 그런 딸이 귀여워 내가 쓰는 노트 하나를 꺼내주었다. 소중하게 품에 안고 침대 위를 방방 뛰며 좋아한다. '글쓰기 노트'라고 또박또박 쓴 글씨 옆에 연둣빛 새싹을 그려 넣는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아는 걸까. 글을 쓰면 쓸수록 단단한 씨앗 하나를 마음에 품고 살게 된다는 걸. 노트에 써 내려갈 글과 그림이 살아갈 모든 날에 큰 힘이 되어줄 것이라는 것을.
아이는 작은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틈나는 대로 끄적였다. 어떤 날엔 그림을 그렸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따라 쓰기도 했다. 귀여운 동시를 쓰거나 평소 궁금했던 질문을 적어두기도 했다. 내가 사랑하는 작은 사람의 노트는 매일 손때가 묻어갔다. 조그만 손바닥 같은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이 쌓여갔다. 이따금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없는 생각들-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나 세상 속 불공평한 것들에 대한-도 적혀 있었다. 마음껏 상상하고 자유롭게 쓰는 동안 딸은 노트와 함께 자라났다. 천천히, 자신만의 속도로 세상을 이해하고 있었다. 비밀스럽고도 소중하게, 글자와 그림으로 마음을 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하고픈 이야기를 자유롭게 썼으면. 글 쓰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신나고 즐거운지 알아가기를. 초등학교 필독서를 읽고, 틀에 박힌 글을 쓰고, 비슷비슷한 문장을 쓰는 게 아니라 머릿속을 부유하는 단어를 잡아서 단어와 단어, 단어와 사건, 단어와 감정들을 다채롭게 조합해 보길. 아이가 자신만의 문장을 만들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길 바란다. 부디 행복하게, 멈추지 말고.
아이는 글을 쓰며 자신만의 빛을 내고 있었다. 반짝반짝, 너무나 기특하게도. 앞으로 어떤 이야기들이 노트에 담길까. 이 작은 노트에 마음을 쏟아내는 동안 딸은 자기 자신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함께 있어도, 언젠가 멀리 떨어져 지내게 되더라도 외롭거나 슬프지 않을 테다. 어디서든 단단하게 여문 자신만의 문장을 쓸 수 있을 테니까. 그 문장들이 뿌린 씨앗이 자라나 커다란 숲이 되어 아이를 지켜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