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친구가 심한 감기로 일주일째 결석 중이다. 제일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지 못하니 속상한 얼굴로 집에 온다. 언제쯤 유치원에 올까 내게 물어도 대답해 줄 수가 없다. 아마도 내일은 올 거라며 영혼 없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아닌지 어린이들은 대번에 안다. 더 이상 묻지 않고 스스로 방법을 찾아냈다. 맞은편 동에 사는 친구에게 편지를 써서 우편함에 넣겠다는 것이었다.
편지라니. 어쩜 그런 앙증맞은 생각을 하는 걸까. 어린이의 몸에는 날 때부터 사랑스러움이 흐르고 있는 게 분명하다. 서둘러 집을 뒤졌지만 적당한 편지지가 없었다. 괜찮다고 씩씩하게 대답하더니 편지지를 뚝딱 만들어낸다. 하얀 종이 위에 친구가 좋아하는 동물과 물건들을 그리고 예쁘게 칠한다. 소중하게 모아둔 스티커도 꺼내 아낌없이 붙인다. 몸은 괜찮은지, 네가 얼마나 보고 싶은지, 빨리 만나 놀자는 말을 꼬불거리는 글씨로 쓴다. ‘나 너무 속상해’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네가 없으니 유치원이 하나도 재미없다는 마음이 그대로 담긴 문장이었다.
아이의 문장 앞에서 아득해졌다. 최근에 내가 이런 단어를 쓴 적이 있나 생각이 들 만큼 솔직한 단어였다. 속상하다, 화난다, 마음이 아프다, 서운하다 같은 단어를 써본 적이 언제였지. 언제부턴가 내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마음에 담아두거나 너무 답답할 때면 글로 몇 글자 적는 것이 전부였다. 누구와 대화를 나눠도 가장 솔직한 마음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목구멍까지 차올라도 얼른 숨기기 바빴다. 어린이와 어른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쓸 용기가 있는가 없는가.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우편함에 편지를 넣었다. 친구 엄마로부터 잘 받았다는 연락과 함께 편지를 읽는 친구 사진이 도착했다. 다음날 저녁 우리 집 우편함에도 편지가 배달되었다. 너무 보고 싶다고, 얼른 만나서 놀자는 내용이었다. 투명한 마음이 가득한 귀여운 편지였다. 답장을 받은 딸의 얼굴에 예쁜 꽃이 활짝 피었다. 이후 편지 쓰기에 속도가 붙었다. 하루에 여러 장의 편지를 썼다.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썼다. 과자를 종류별로 정성스럽게 붙이거나 색색의 머리끈을 연결해 하트를 만들었다. 어떤 편지에는 그림만 그려져 있어도 마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너무 많은 편지가 친구에게 부담이 될까 조심스러웠다. 이제 그만 쓰는 게 어떠냐 물었더니 아이가 말했다.
“우리는 만나지 못하는 대신 편지로 마음을 얘기하는 거잖아. 집에만 있어서 많이 심심할 거야. 내가 편지로 심심하지 않게 도와주고 싶어. 그러면 얼른 나아서 유치원에 올 거야.”
말문이 막힌 나는 네 말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를 잔뜩 가져다주었다. 딸의 편지는 차곡차곡 쌓여 친구 집 우편함에, 유치원 사물함 구석에, 신발장 안쪽에 보물 찾기를 하듯 보내졌다. 아이도 몇 장의 편지를 우편함으로 받았다. 더 이상 눈물 가득한 얼굴로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편지를 주고받는 것도 놀이가 되고 대화가 될 수 있구나. 어른의 시선으로 아이들의 행동을 재단할 때마다 귀가 벌겋게 달아오른다. 어린이들은 솔직 담백하다. 마음을 빙 둘러 말하지 않는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고,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 말할 수 있는 아이가 부럽다. 나도 내가 느끼는 모든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졌다. 닫힌 마음의 문을 누군가 열어주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열어볼 용기가 생겼다. 보고픈 사람에겐 망설이지 말고 먼저 연락해야지. 서운한 감정을 뒤로 감추지 말고 다음에는 그러지 말라 얘기해야지. 슬픈 사람에게는 애써 위로하지 말고 조용히 안아줘야지. 아이가 스스로 편지지를 만들고 솔직한 마음을 쓰고 직접 우편함에 넣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