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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L Jul 19. 2024

우리가 모르고 지나치는 기적들

헬싱키, 핀란드, 북유럽이라고 하면 오로라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진다. 

엄마도 그런 환상을 가진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나는 오로라를 보는 것에 대해 큰 열정은 없었지만 아무튼 내가 회사를 옮기고, 가족과 가까이 살면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여행이라던가 효도라던가 하는 것을 실현시키는 것에 대한 열정으로 인해 엄마와 헬싱키를 지나 북극령으로의 여행을 떠났다. 


눈을 참 좋아하는 엄마가 사람의 발자국이 많이 닿지 않은 곳의 깨끗한 눈을 마음껏 보면 행복해하실 것 같았고,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는 내가 행복할 것 같았다. 


핀란드의 유명 관광 상품 중에는 ‘이글루 호텔’이 있다. 

대충 통유리로 된 오두막 같이 생긴 숙소인데, 오로라가 보이는 9월에서 3월에 방문하면 숙소 전체를 감싸는 오로라를 감상할 수 있고 집 앞의 개인 사우나 또한 이용할 수 있다. 

인생 경험이라 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 줄 이 호텔은 성수기 동안은 하룻밤에 백만 원을 육박한다. 

그래서인지 내가 핀란드 동료들에게 이 호텔에 대해 물으면 가본 사람이 없다. 

이글루 호텔은 핀란드의 ‘라플란드’라는 지명 곳곳에 존재하는데, 나는 이발로라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언제 다시 갈지도 모르는데 최대한 북극에 가까운 곳으로 가서 몇 밤 안되지만 꼭 오로라 헌팅에 성공하고 싶었다. 

폭풍 검색 후에 이발로 안에 있는 사리셀카라는 마을의 이글루 호텔로 정했다. 핀란드 애들은 주로 스키장을 이용하러 많이 간다고 한다. 

호텔비가 하도 비싸서 딱 두 밤만 예약했다. 


나는 두 밤 동안에 오로라를 볼 확률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회사 동료들에게 물어봐도 뜨뜻미지근한 반응이었기 때문에 오로라를 보는 그런 행운이 겨우 두 밤 사이에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것 말고도 좋은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는 호텔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호캉스 개념으로 다녀오기로 했다. 


북극으로 겨울 여행을 떠난 것은 엄마도 나도 처음이었다. 

그곳의 눈은 얼마나 많이 쌓여있을지 설레는 마음으로 인천-헬싱키 14시간, 헬싱키-이발로 1시간의 긴 여정을 떠났다. 나야 비행을 자주 해서 장거리 비행이 익숙하지만 엄마가 힘들어하진 않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엄마는 나보다 비행기에서 더 잘 주무셨다. 


그렇게 도착한 이발로의 사리셀카는 말 그대로 눈의 왕국이었다. 



사리셀카 이글루 호텔의 외부와 내부
호텔 내부에서 본 옆 방의 모습 



눈을 밟으면 내 허벅지까지 들어갈 만큼 높이 쌓여있었고, 내가 본 중 가장 깨끗한 눈이었다. 서울의 거리나 스키장에서 보는 눈들은 늘 사람의 발자국 때문에 오염되기가 십상인데, 이곳 또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인데 어떻게 이렇게 눈이 깨끗한 지 신기했다. 


이글루 호텔은 정말이지 동화 속의 오두막처럼 생겼다. 내부는 편백나무로 장식되어 들어가는 순간부터 마음이 편안해지는 냄새가 코에 닿았다. 


경유시간 포함 약 20시간의 피로를 싹 날려주는 기분이었다. 

사람은 역시 자연을 가까이에 두어야 한다. 


이곳은 키가 큰 크리스마스트리 나무들로 빼곡했다. 비행기에서 착륙하기 전에 풍경을 보았을 때에 까맣게 뒤덮인 산이 보였는데 그 많은 것들이 다 빽빽이 나무들이었나 보다. 

원랜 이 나무들도 눈으로 뒤덮여 더욱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고 하는데, 우리가 사리셀카를 방문한 3월은 눈이 많이 녹은 상태라 나무들은 푸르렀다. 


호텔 안에서 있으면 눈이 허벅지까지 쌓여있는 바깥 풍경과 상반되게 따뜻하고 아늑했다. 

방 안에서 하는 눈구경이 꽤나 즐거웠다. 

주변을 산책하는 것도 맑은 공기와 청량한 풍경 덕분인지 꼭 다른 행성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대로 오로라를 보지 못하고 가도 아쉽지 않은 여행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새벽 두 시경에 방에 오로라 알람이 울렸다. 


첫날밤의 오로라


미약하지만 푸른빛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오로라를 처음 본 엄마와 나는 이게 오로라인지 아닌지 긴가민가 했다. 그런데 옆 방의 외국인들이 그 미약한 빛에 카메라를 대고 따라가며 우리에게 손짓하는 것을 보고 카메라를 대자 내 눈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선명한 빛이 분명히 하늘로 솟고 있었다. 


우리는 옆 집의 외국인들을 따라 오로라를 따라갔다. 

오로라는 한 15분 정도 머물다가 사라졌다. 

눈이 녹는 중이라 하늘에 증기가 많아 오로라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오로라 지수는 높다고. 

내일을 기약해 보자며 잠자리에 다시 들었다. 

상상 속에서 그려보기만 했던 오로라가 조금이나마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엄마는 이렇게 오자마자 오로라는 보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라고 하셨고 나도 동의했다. 




이튿날은 하늘이 좀 더 맑아 보였다. 

높은 건물 하나 없이 하늘과 맞닿아있는 지평선이 그대로 보이는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속이 고요해진다. 이곳에 와서 한 번도 큰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든 것이 사근사근 평화로웠다. 


나의 마음속에도 방학을 주어야지. 


선명히 보이는 별자리들


오늘 밤은 별이 정말 선명히 잘 보인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국자 모양의 북극성을 그림으로만 보았지 실제론 처음 찾았다. 

정말 국자 모양으로 선명히 있는 것이 신기했다. 

어젯밤의 오로라를 본 것보다도 이렇게 선명한 별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더 신기하고 새로웠다. 

사진은 야외 사우나를 하며 본 별 풍경들이다. 








그리고 그날 밤, 북극에서의 마지막 밤에 우리는 오로라를 제대로 만났다. 


맑은 하늘이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자정쯤에 다시 오로라 알람이 방안 가득 울렸다. 

또 비몽사몽에 겉옷을 들쳐 입고 나갔더니, 이번엔 카메라를 대지 않아도 푸른 물결이 내 앞에서 출렁이고 있었다. 

딱 봐도 오로라였다. 

이번엔 엄마도 나도 긴가민가 하지 않았다. 

밖에서 보아도 집 안에 들어와서 보아도 오로라는 오로라였다. 

푸른빛, 초록빛, 보랏 빛과 잿빛을 함께 뿜으며 하늘을 물들이고 춤추고 있었다. 오로라는 출렁이며 점점 숲 속으로 들어갔다. 우리의 옆 집, 앞 집 모든 사람들과 함께 오로라를 따라 숲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30분 정도 오로라는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고 우리 앞에 있었다. 


신비로운 빛이었다. 


신비로우면서도 아름다운 빛이었다. 


낯설면서도 아름다운 이 빛을 어떻게 만들어 냈는지 이 행성이 새삼 신비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제까지 지구 반대편에서 내가 바쁜 일상을 살아내는 동안 한쪽에선 이런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가 얼마나 큰 지, 그리고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 다시 생경하게 느껴졌다. 오로라를 보러 간다는 것이 가치로운 일인지 오로라를 실제로 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빛을 가진 행성에서 살고 있는지, 내가 한 일이 없이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지 몰랐다. 


그래서 그 가치를 알아보기 위해선 더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살펴보아야 하는 것 같다. 


이 세상엔 생각보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선물 같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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