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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단 Jul 07. 2024

짝꿍 텃밭을 일구며

판수리 사는 황복순 어머님은 땡볕에도 정신없이 텃밭에서 일하느라 바쁘다. 풀을 뽑고, 물을 주고, 두둑을 보듬어주면서 호미로 연신 일한다. 황복순 어머님은 매주 그냥 오실 줄을 모른다. 수박을 한덩이 사오거나 늘 먹을거리를 준비해 오신다. 까만 뿔테 안경이 잘 어울리는 효림리 김광을 어머니도 자기 이름이 걸린 텃밭을 다듬어내느라 정신 없다. 쪽진 머리를 하고 장구와 민요에 재능있는 심영순 어머니의 입담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농반, 진반 적잖은 불평과 기분 좋은 소리를 섞어가며 사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매력이 있다. 같이 백운리에서 온 배정숙 어머니는 심영순 어머니의 보색이다. 바탕색처럼 조용히 그 옆에 앉아 있다. 상예곡리 김완록 어머니는 가만히 앉아서 무게중심을 잡아낸다. 더불어 같은 마을에서 온 송맹예 어머님도 티나지 않게 일을 하신다. 한번도 빠진 적이 없는 장수리 김수분 어머님은 짝쿵 텃밭이 지속가능하도록 공동체 활동에는 연신 참여하신다. 신매리의 안재순 어머님도 어지간하면 결석하지 않고 나온다. 지난번에 큰 아들이 같이 일하시는 분들과 나눠 먹으라고 10만원 쾌척하셔서 삼겹살을 거하게 쏘셨다. 지전리 사는 김내수 어머니는 늘 자전거를 타고 오신다. 그림도 곧잘 그리시는 어머니는 티 안내게 밭을 일구시지만, 황복순 어머니와 둘이서 일 잘하기로 소문 난 분이다. 상촌면에서 온 김희정 샘은 이 할머니들과 찰떡 케미를 자랑한다. 항상 말하지 않아도 그 이상을 준비하시는 분이다. 사실 김희정 샘을 만난 것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다. 텃밭의 지향과 비전을 제시하고 퍼머컬쳐에 대해 늘 공부하고 올바른 먹거리를 실천하는 여성농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풀이 우거졌던 땅 위에 난 잡초 때문에 어찌하지 못해 시멘트로 덮어버리려 했던 청산초 사택 공간은 여러 사람들의 힘으로 활기가 넘치고 생명력을 얻게 되었다. 


학교의 공간에 잠입하고 침투하는 것은 여간해서 쉬운 일이 아니다. 비교적 호의적인, 지역사회와 같이 어울리려했던 청산초 이기분 교장선생이 있었던 때라 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이기분 교장샘이 사택 빈 땅의 잡풀 때문에 시멘트로 덮어버리겠다고 했을 때 옆에서 조심스럽게 텃밭을 하면 어떨까요 라고 제안을 한 것은 나였다. 그 때 즉석에서 즉각적으로 그러면 너무 좋죠 라고 말했고 나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돈도 없고 공모사업이 기다려주진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교장이 바뀌면 어찌될 지 모르는 일이었다. 청산노인복지관 이동준 팀장한테 텃밭을 일굴 할머니들을 모집해달라고 청을 했고, 어느새 10명이 모아졌다. 그리고 전교생이 23명 되는 청산초등하교 학생들과 매칭을 했다. 이름하여 짝짜꿍 텃밭. 아이들이 텃밭을 일구는 것은 교육과정 중 하나로 많은 초등학교에서 하고 있으나 늘 뒷처리는 행정실 시설직 아저씨들의 몫이거나 그나마 나이든 교사의 일로 떠넘겨졌다. 그래서 지속가능하려면 농사에 이골이 난 빈 땅을 가만히 놓아두지 못하는 할머니들의 접속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본능적으로 복지관 할머니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는 딱 들어맞았다. 텃밭 틀을 만드는데 온전히 자부담 200만원이 들었다. 그래도 시작하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기분 교장샘은 수도 시설을 해주었고 울타리 문을 만들어 주었다. 학교에서 그만큼 호응해주는 것도 감지덕지라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매주 목요일 오후 1시에 만난다. 조막만한 그늘에 의지하면서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하며 텃밭을 일군다. 참외, 옥수수, 방울 토마토, 수박, 상추, 들깨, 할 것없이 개개별 농사 선생님이나 다름없는 할머니들이 텃밭을 일군다. 몸빼 바지에 모자까지, 호미를 들도 찾아오는 아이들이 올 때면 할머니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그렇게 사택의 버려진 공간은 생명이 움트는 공간이 되었다. 학교와 지역간의 협력 공간이자, 어르신과 아이들의 연대 장소가 되어 버린 것이다. 청산초등학교는 학교 홍보 팜플릿에 짝짜꿍 텃밭을 자랑스런 공간으로 표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들끼리 모두와 같이 신명나고 절실한 공간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 활동도 좋지만, 어르신들과 활동하며 느끼는 게 참 많다. 항상 늘 겸손하시고 약속을 꼭 지키시며 뭐라도 하나 꼭 쥐어주려고 하는 마음들이 참 고맙다. 함께 나누려는 그 마음을 보고 많이 배운다. 그래서 요즘 준비하는 것이 하나 있다. 청산별곡의 낮 시간동안 빈 공간을 할머니들에게 선물해주고 싶다. 시니어 로컬카페 및 시니어극장을 개봉하고 싶은 것이다. 스스로 마실 수 있는 건강한 음료를 같이 만들어 마시고, 일주일에 한번 옛날 고전 영화를 같이 보았으면 한다. 그래서 어르신들의 문화를 재미나고 살맛나게 바꿔보고 싶은 욕구가 뿜뿜 샘솟는다. '찾아가는'이 들어간 이벤트 적 사건이 아니라 그것이 '일상'이었으면 좋겠다. '찾아가는'은 시늉만 내고 예산 소진을 하려는 감질맛 나는 더 갈증을 불러일으키는 탄산음료와 같다. 맹물같이 시원하고 보리차 같이 구수한 일상의 문화이길 바란다. 그럴려면 늘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에 맞는 맞춤형 기획이 필요하다. 또  이것이 어르신들만의 문화만이 아닌 세대가 뒤섞여 같이 누리고 보완할 수 있는 문화가 되었으면 한다. 서로 관계를 트고 같이 보듬으면서 시공간을 함께 하는 것이란 얼마나 생산적이고 행복한 일이던가. 그렇게 공동체 활동을 하고 싶다. 그래서 매주 목요일 아침에 밑반찬 배달을 하는 일도, 그리고 할머니들과 텃밭을 일구는 일도 그 자체로 행복이고 기다려지고 설레인다. 참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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