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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Nov 23. 2023

친구와 가을날 산책

잠깐 만나 차 한잔 마시고

시간에 쫓겨 헤어질 때마다

아쉬운 눈빛을 보내던  그녀.

그날은 일정이 한가해서

마음을 툭하니 던져 버리고

친구를 만났다.

둘이서 따끈한 가락국수를 먹으며

한가로운 마음에 배시시

웃음이 맴돌고 조금은 허둥지둥

발길 닿는 데로 옮겨 가는데

은행잎, 둥근마 잎사귀.

이름 모를 덩굴이 목련나무를 타고 오른 모습에

"얘는 뭐야? 뭔데 이 계절에 새파랗게 싱싱해?"

"둥근 마 아냐?"

"마라고? 마는 땅속에 나지 않아?"

"응, 흙에서 캐는 마도 있고 따는 마도 있어."

히 설명하는 그녀 앞에서 렌즈 검색을 돌리니

"확실하게 알아야 해?~ㅎㅎ"하며 웃는 친구.

그녀도 누구 못지않게 식물의 이름을 많이 알고 있는데....

배풍등 열매

둑방길로 올라가니 나무마다

벌레가 겨울을 날 집을 예쁘게 만들어 주었다.

예전에는 볏짚으로 만들어 감아 주던 것을

재능기부라도 한 것일까?

재활용 천을 실처럼 만들어 코바늘 짜기를 해

벌레유충들이 추운 겨울을 이겨내라고

따듯한 마음들이 한 올 한 올 엮어져

이심전심 이 겨울은 따스하리라 믿어진다.

그날은 벚나무잎도 은행잎도 아직 예쁘게 물들지

않았지만 흰머리 소녀 둘은 마냥 즐거워

어쩌다 만난 빨간 장미에 잠시 넋을 잃고

오종종 매달린 빨간 열매에 눈을 빼앗겨

열심히 검색해서 배풍등 열매라는 것도 알아낸다.

그녀가 갑자기

"저기 봐"하며 손짓하는 곳에

검은 새 한 무리가 날아든다.

멀리 중랑천으로 날아드는 새들에게도

아라 마음이 닿아 반갑기만 한데

날아들던 검은 새 민물가마우지

가을 햇살 몸을 맡겨 망중한을 즐기고

한 녀석은 깃털을 말리는지 부지런히 날갯짓을 한다.

백로는 날아가고

유유자적 노닐던 백로 부인

'에잇 방해꾼들아. 내가 떠나마~ '

휘익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아쉬운 은빛소녀 간신히 영상에 담는다.

여유로워 좋다며 푸근해하는 그녀가 고맙다.

바쁘다며 헐레벌떡 숨차게 왔다가

차 한잔 마시고 후다닥 가버렸던 나.

늘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그날은 어린애처럼 보이는 것마다

'좋다, 좋다' 감탄사 외에 말이 필요 없음을 안다.

그래도 인생의 황혼, 이 가을에 와 있는

우리 나이를 자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해물부추전, 양념장.

아들만 있는 그녀와 딸만 있는 나.

부단히 도 힘든 세월을 보낸 그녀지만 의사 아들과 의사 며느리 잘 크는 손주. 

손주는 손녀 하율이와 동갑 초등 1년생이다.

비슷한 듯 비슷하지 않은 환경이지만 이 풍진 세상을 살아내며 

희망가를 울렸을 그녀와 나, 고달픔은 저울에 달면 똑같을 것 같다.

그래도 마음은 부자.

동생 농장에서 가꾼 채소, 가을걷이해 만든 반찬으로

동네 언니들 불러 밥을 먹이고

내게도 냉장고에 있는 재료 꺼내 두런두런 얘기하며

"부침개는 역시 해물이 들어가야지?" 하며 

오징어를 넣어 부친 부추 부침개를

뜨거울 때 먹으라며 뚝딱 한 접시 놓아주는 솜씨쟁이.

그 사이 밥도 다 되어

따끈한 밥 한 공기에 맛깔스러운 밑반찬이 놓인다.

삼채장아찌, 양념 고추, 진미 고춧잎 무침이

엄마가 만든 반찬처럼 그리움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어느새 편육도 썰어 새우젓 양념을 놓고

맘 편한 저녁을 먹는 시간.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진심이 통하는 곳에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음을 안다.

*photo by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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