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막다른 벽을 만나는 순간이 있다. 열심히 몸을 움직여 걷지만 더 나아갈 수 없는 상태, 제자리걸음이 그런대로 나쁘진 않지만, 어쩐지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들 땐 걸어온 길의 정반대로 향해본다. 고집하던 방향이 옳았고, 뒤돌아 걷는 일이 두렵더라도 그 용기가 가져다줄 새로운 기쁨을 기대한다.]
- 그나저나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세요/그림. 글 하람
잘 살아왔나 의문이 들던 그즈음, 삶은 제자리걸음을 걷는 듯했다. 돌아보니 내 삶의 중요한 결정들은 내 생각보다는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정해졌던 것 같다.
'천재는 1%의 영감이 중요하다'는 말처럼, 나는 공부도 노력보다는 적성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나는 적성이 아니었다. 학창 시절, 공부가 재미있다고 말하던 친구들은 왠지 아니꼽게 느껴졌지만, 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그들의 비상한 머리는 부럽기도 했다. 물론 집에서 뼈를 깎는 노력을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학교에서 내내 놀다가도 성적이 좋은 친구들을 보면, 내 기준에서는 그것 역시 비상한 머리였다.
나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어중간했다. 취미도 없고, 재미없는 공부는 적당히 노력해서 고득점이 나올 리 없었다. 늘 중간 어딘가에 머물렀다. 어중간한 성적만큼이나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욕망도 학교와 부모님의 뜻에 밀려 마음 한구석에서 희미해졌다. 내 진로는 성적에 맞춰 흘러갔고, 일찍이 공부를 그만두고 기술을 배우고 싶었던 마음은 '인문계-대학'이라는 경로 아래 묻혀버렸다.
가난 때문에 배우지 못하고, 배움 부족으로 불이익을 받았다고 여긴 부모님의 기대가 한몫했을 것이다. 부모님의 기대를 일찌감치 끊어버린 형과 누나의 영향도 더해졌으리라. 결국 내가 최종적으로 선택했지만, 사회적 분위기가 내 선택지를 좁히고 "이것만이 갈 길"이라고 강요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지금은 공무원만큼 안정된 직업도 없지 않나 생각하지만, ‘이 일도 저 일도 못하겠다면 면서기라도 하라’는 말 때문이었는지 어릴 적 부모님은 공무원을 좋은 직업이라 여기지 않으셨다. "할 일 없는 사람이 공무원을 한다"는 말을 듣던 어린 시절, 공무원은 내 선택지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 퇴직 후 안정적인 연금 혜택을 누리는 외삼촌을 부러워하시는 아버지는 그 말을 기억하지 못하시는 것 같다.
1999년, IMF를 막 지나던 때 나는 군대를 제대했다. 지방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누군가는 토익에 매달리고, 누군가는 자격증을 따야 한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유학을 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차별화를 위해 친구들이 도전하지 않는 어렵다는 자격증을 취득했다. 성공 후, 교수님과 친구들의 축하 속에서도 나는 결국 그 자격증과 무관한, 부모님이 원하는 곳에 취업했다.
초등학교 시절, 만화 속 로봇 박사를 보고 꿈꾸던 아이는 변화무쌍한 환경 속에서 부족한 재능을 메우고자 얇은 귀와 줏대 없는 결정을 반복하며 결국 중년에 이르렀다. 그 지친 삶의 한편에서는 시도조차 하지 못한 꿈들과 묻어둔 욕망이 선택에 대한 후회와 사회에 대한 원망으로 드러났다. 틀어진 경로가 길이 되었고, 이제는 돌아갈 수 없을 만큼 와버려 앞으로 갈 힘조차 떨어진 듯하다.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표정을 기억한다. "가족들이 다 변변치 못한데, 너마저..."라는 표정의 아버지와 자초지종에 공감하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 거냐"는 표정의 어머니. 잘한 선택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날 나는 가족의 기대를 끊고, 마흔을 넘어서야 비로소 막내라는 껍데기를 벗고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모든 선택이 다 좋을 수는 없다. 내가 원하는 것만을 선택하며 살았다 해도 모든 일이 잘 풀렸을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다. 제법 탄탄대로를 달렸던 안정된 삶과 경제적 풍요는 어쩌면 나의 우유부단함과 반강제적 선택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결과에 대해 타인을 탓하며 살 수 없다. 내가 선택한 결과를 내가 책임지며 살아가고 싶다. 지금보다 더 불안한 삶일지라도 말이다.
[그나저나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세요?] 작가는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한다. 항상 좋아하는 것을 담을 마음을 마련해 두고 그것들을 채울 공간을 늘려가라고 한다. 좋아하는 것은 그냥 하면 된다는 간단한 공식이지만 오랜 시간 내 방식대로 살지 못한 탓에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흐릿하다. 좋아하는 것들로 삶을 채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당장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모르지만, 그렇기에 어디로든 갈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어디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