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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리 Nov 19. 2023

망한 책은 어떻게 살리나요? 2탄

김채리 출판사 창업일기 #18

안녕하세요 채리입니다.

다음 주가 다다음주가 되어버렸네요 하하

제 계산법으로는 그렇습니다.

문과거든요.


일단 모든 일의 화근을 꼽자면, 제가 너무 자신감이 넘쳤다는 거였어요. 지금이야 여러 군데 독립출판 행사를 다녀보면서 대단한 작가님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지만, 그때는 아니었거든요. 저는 창업교육을 받으면서 제가 속한 집단 안에서 열심히 한다는 평을 듣다 보니 잘하고 있는 줄 알았어요. 뭘 해도 잘 될 줄 알았던 거죠. 이게 혼자 뭘 하는 사람의 폐해예요. 뭐가 잘되고 잘못된 건지 판단이 똑바로 안 서거든요.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간 채로 만드려 했던 책 제목은, ‘나는 배달을 기다리기로 했다’였어요. 제목에서도 화려했던 표지 디자인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배달책자를 본 따 만든 책이었죠. 

콘셉트에 걸맞게 음식을 주제로 해서 작가님들께 글과 그림을 부탁했습니다. 저도 글 작가로 참여하고요. 마라탕, 닭볶음탕, 떡볶이, 치킨으로 야식편을 채우고 쿠키, 빙수, 도너츠, 케이크로 후식편을 채웠습니다. 개그코드도 놓칠 수 없으니 요즘 핫한 음식 논쟁을 같이 실었어요. 실제로 투닥투닥하는 것처럼요.


텀블벅에 상세페이지를 꾸밀 때까지만 해도 '이 책 대박 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원래 다들 그러잖아요. 출시하기 전에 제일 큰 꿈을 꾸는 거, 저만 하는 거 아니죠? 재치 있는 말과 이미지를 그럴듯하게 조합해서 상세 페이지를 꾸렸는데 이게 웬걸,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더라고요.


이미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난 뒤에는 돌이키기가 힘들어요. 처음 접한 이미지로 상품에 대한 인상이 정해지는데, 뭔가 모르게 부족한 상태로 진행되고 있었으니 말이죠. 아무리 이미지를 고치고 열심히 후원자분들과 소통하려 애써도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인스타그램에 홍보 게시글도 올리고, 광고도 집행해 보았지만 후원 전환율은 현저히 낮았어요. 마케팅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정말.


결국 펀딩은 그렇게 난항을 겪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남자친구한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의견을 구했더니 글쎄, ‘그거 망했잖아?’라고 하는 거 아니겠어요. 너 T발 T야? 그가 T인 것은 아니지만 꽤나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저도 상처받은 건 아니었어요. ‘헉 그러네. 이 프로젝트 망했잖아?’ 뎅-하고 머리가 울렸습니다. 나만 모르고 있었구나. 이거 망했는데?


크라우드 펀딩 기간이 절반 정도 흘렀을 때, 저는 이미 다른 방식의 홍보 방법을 구상하고 있었어요. 어차피 배달책은 예술인 지원사업을 통해 제작할 거라 예산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고, 이미 그림과 글은 나와 있는 상태라 잘 엮기만 하면 되는 상태였죠. 지원사업 담당자님께 양해를 구해서 SNS를 통한 직접 판매로 전환하고, 책 디자인을 전면 수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표지에 대한 고민이 다시 시작되었어요. 배달책은 통장책 <자유청춘예금통장>과 같은 느낌으로 제작하는 책이었는데, 상대적으로 통장책은 판매가 꽤 괜찮은 편이었어요. 북페어에서 ‘이 책 본 적 있어요!’라고 자신 있게 말해주시는 분들도 많았죠. 그럼 반대로 통장책이 잘 되었던 이유는 뭘까? 거기서 배달책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생각하자 생각하자 생각... 저는 문제에 직면하면 진짜 머리가 터질 것 같을 때까지 고민을 해요. 그렇게 고민이 머리에 꽉 차 있을 때면, 샤워를 하거나 설거지를 할 때 혹은 전혀 관련 없는 책을 읽다가 좋은 생각이 갑자기 번뜩 떠올라요. 그때는 사진 앨범을 보고 있을 때였죠. 친구와 여행을 갔다가 방문한 중고서점이었는데, 간판이 웃겨서 사진을 찍었었거든요. 그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찍은 사진이었는데, 머릿속에 고민이 꽉 찬 상태로 사진을 보니 갑자기 해답이 떠올랐어요.

  

아 이거 이야기가 꽤 길어지겠는데요?

오늘의 채리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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