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부터 주위의 질투와 시기를 많이 샀던 것 같다. 타고난 눈치가 없어서 이기도 했고, 외골수 기질도 조금은 가지고 있어 유연하지 못한 탓도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내가 만만한 '천석꾼' 포지션 이어 서기도 했다. 소위 '넘사벽'으로 뛰어난 재능이나 능력을 가진 사람을 질투하는 사람은 의외로 생각보다 없다. 왜냐하면 뭘 어떻게 하든 그 사람을 그 분야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 이미 알고 있으니깐. '만석꾼'은 질투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공경과 경외의 대상이 되지만, '천석꾼'은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어느 정도 재능은 있는 것 같은데 특출 나게 뛰어나지 않은 사람. 조금만 노력하면 충분히 이길 수도 있을 것 같은 만만한 사람. 그래서 질투와 시기심이 생기는 대상, 그런 사람이 바로 나다.
그래서 나는 나보다 잘난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들은 나를 질투하지 않으니깐. 그런데, 나보다 잘난 사람이라는 것의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객관적으로 아무리 나보다 잘 나도 나의 주관적 기준으로 별로면 그 사람은 잘난 사람이 아니다.
어쨌든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 나보다 잘난 지인들이 모인 모임이 있다. 나보다 돈도 많이 벌고 똑똑하고 어리고 예쁘고... 인성과 사교술까지 갖춘 소위 말하는 골드미스들.(나는 실버미스도 안되는데..ㅋ 나랑 놀아주는 그들에게 늘 감사하다..ㅎㅎ) 그런데, 그녀들이 담합이라도 하는 듯이 모두들 결혼을 한다고 내게 말했다. 얼굴 표정관리가 잘 안됐다. 정말 축하하는 마음이 컸지만, 나도 모르게 얼굴 피부가 굳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그들이 알아차리지 않았으면 해서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다. 실제로 그렇게까지 충격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결혼 소식을 몰아서 들으니, 길을 걷다가 순간적으로 발을 헛디디는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일순간 동지들을 잃은 기분이 들었다. 거기에 더해서 친하게 지냈던 솔로 언니 하나가 그 시점에 목하 열애를 시작했다. '나만 없어.. 나만 없어.. 남친이..'를 속으로 외쳤다.
'될 놈 될'이라고 했나? 코로나 시국 속에서도 애정은 싹텄고 다들 연애도 하고 결혼도 준비하고. '남들이 애정사로 바빴던 그 순간들에 도대체 나는 뭘 했나?' 다시 한번 내가 한심한 순간이었다. '나보다 잘 난 사람들이어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나? 결국 내가 못난 탓인가?' 아주 잠깐이지만 이런 생각들까지 들었다.
겉으로는 최대한 내색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나는 나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을 사실 매우 한심하게 여긴다. 왜냐하면 나는 나 스스로가 그리 잘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오죽 못났으면 나 같은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까지 하나 싶어서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런 생각이 더 커졌다. 나의 자존감이 낮아질수록 더.
나는 원래 태생적으로 누구를 그렇게 크게 부러워하고 그러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에게는 각자 주어진 몫의 행복과 불행이 있다고 생각했고, 지금 행복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언젠 간 자신만의 아픔의 순간이 주어질 거라 여겼다. '저마다에게 주어진 몫이 제 각각 다 다른데 그러한 것들을 부러워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 나이에 맞지 않게 참 애늙은이 같았던 것 같다.
어쨌든 인생은 길고 사람은 그 긴 시간 속에서 여러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 생각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부러운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람들이 가진 것이 탐이 났고 왜 내게는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쉽게 주어지지 않는지 때때로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내게 주어진 문제 중에 수월하게 풀 수 있는 문제는 거의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직장, 연애, 결혼.. 이 문제들은 난제 중에 난제였다. 원래 다른 사람보다 뭐든 조금씩 더디고 헤매고 늦었던 내가 그 3가지 문제라고 빨랐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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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친구들이 하나 둘 자신의 길을 찾아서 자리 잡아갈 때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연애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모습을 지켜볼 때마다 자괴감이 들었다. 나는 앞으로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데, 나를 제외한 모두는 생명력을 가지고 한 계단 한 계단 단계를 밟아가는 듯 보였다. 수업을 마치고 모두들 집으로 돌아갔는데, 나 혼자만 내가 주어진 과제를 다하지 못해서 빈 교실에 남아 나머지 공부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비참하고 외롭고 고독했다. 하지만 그런 기분으로 세상을 계속 살 순 없었다. 내가 주저앉아있어도 세상은 언제나 빠르게 잘 돌아간다. 시간은 나를 배려해서 결코 기다려주지 않는다. 내가 주저앉아 있으면 있을수록 나는 더 뒤처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 자신을 달래가면서 겨우겨우 낮아진 자존감을 일으켜 세우고 부서진 자존심들을 모아 가까스로 보수해서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마음속에 외쳤다. '각자에게 주어진 행복은 제 각각 그 모양새와 빛깔이 다르고, 인생의 속도도 다르다'라고 말이다.
그렇게 가까스로 나를 추스르면서 나름 잘 살고 있던 시기에, 다시 한번 연애&결혼시즌이 찾아온 것이다. 그것도 나를 제외한 연애&결혼시즌! 이 시즌은 살면서 몇 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돌아오는데, 나이가 들면서는 이 주기가 조금씩 늘어난다. 그래서 어느 적정한 시기가 되면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연애든 결혼이든 하지 않는 듯이 고요해지는 순간이 온다. 나는 그런 시기를 맞이 했었고 그 시기는 꽤 오래 유지됐었다. 그리고 마음 한편에는다음 연애&결혼시즌이 찾아오면 나도 그 행렬에 동참하고 있으리라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보기 좋게 깨졌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나 자신을 더 이상 빈 교실에 혼자 남겨두지 않기로 했다. 나는 이제 선생님이 나머지 공부를 시킨 어린아이가 아니다. 나에게 빈 교실에 남아있으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 스스로 그렇게 느끼는 것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 빈 교실을 박차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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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에 나의 몇 안 되는 지인의 결혼식이 있다. 결혼식을 앞두고 앞서 이야기했던 나보다 인품도 뛰어나고 뭐든 더 조금씩 나은 지인 모임을 가졌는데, 거기서 나는 그들에게 고백 아닌 고백을 했다. 그대들을 부러워했노라고. 나 혼자 빈 교실에 남은 기분이었다고. 하지만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고. 그대들도 내가 결혼을 '못'했다고 여기지 말아줬으면 하고 그저 아직 인연을 못 만나서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으로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빈 교실에 남은 사람처럼 보지 않았으면 한다고.
나의 말에 그 지인들은 환하게 웃으면 건승을 빌어줬다. 자신들도 빈 교실에 남은 기분을 모두 경험했고, 결코 나를 그런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고. 오히려 교실 밖 넓은 세상에서 여러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내가 부럽다고. 당신은 결코 빈 교실에 남아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그렇게 어두컴컴한 내 마음속 빈 교실에서 나와서'내일은 더 멋진 일이 생길 거야'라고 말해주는 듯한잔잔한 햇빛이 아름답게 비치는 넓은 운동장으로 걸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