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문득 행복했던 순간과 느낌
내가 아주 어릴 때 우리 집은 차가 없었다.
아버지의 직장이 자전거를 타고 집에서 15분밖에 걸리지 않았고,
그 시절 지방의 소도시에서는 자동차가 집집마다 있는 건 흔한 일은 아니었다. 차가 없어서 불편한 점이 아주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아쉬웠던 것은 우리 가족끼리 여행을 자주 가지 못했던 것이다.
93년에 대전 엑스포가 한창일 때도 뒤늦게 앞집 아저씨의 소나타에 8명이 끼여서 힘들게 다녀온 악몽 같은 기억이 있다.(자기 부상 열차를 꼭 타고 싶었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 탓에 탈 수가 없었다.) 그 이후에 결국 우리 집에도 차가 생기긴 했지만 어디 나가는 게 익숙하지 않았던 아버지 덕분에 여행에 대한 기억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매년 여름 친척들과 텐트를 들고 캠핑을 다녔던 기억은 강렬하게 남아있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한 번씩 갔었던 캠핑이 유년시절 나에겐 소중한 추억이 되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었다.
첫째가 태어나고 유치원에 갈 무렵 슬그머니 와이프한테 캠핑 이야기를 꺼냈다. 밖에서 자는 거라면 질색하던 와이프에게 아이에게 무조건 좋은 추억이 될 거라고, 겨우겨우 꼬셔서 집에 있는 가재도구를 대충 챙겨 캠핑을 다녀왔다. 다행히도 나쁘지 않았는지 그 날 이후로 거금을 들여 텐트와 타프를 한방에 구매할 수 있었다.(캠핑은 역시 장비빨이다. 장비는 사면 살수록 더 사고 싶어 진다.)
이제는 매달 2~3번은 아웃도어 라이프를 즐기게 되었다. 최근 1년간은 코로나로 쉬긴 했지만 아이들에게 캠핑 간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일주일 동안 들뜬 마음으로 캠핑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다. 캠핑에 가면 집에서 뛰지 못한 한풀이를 실컷 하고, 킥보드를 밤새 타며 캠핑장을 돌아다닌다. 캠핑 날만큼은 달콤한 과자도 사탕도 흔쾌히 허락하는 엄마 때문인지, 숯불에 구운 두터운 삼겹살을 실컷 먹을 수 있어서인지 캠핑하는 동안 웃음꽃이 질 줄 모른다. 한바탕 신나게 놀고 나면 깊어가는 밤에 모닥불에 모여 군고구마와 마시멜로를 구워 먹다가 점점 눈꺼풀이 무거워지면 깔깔대며 웃던 아이들은 금방 곯아떨어진다. 그렇게 캠핑의 하루가 저문다.
대부분 1박 2일의 일정을 보내지만 운 좋게 2박 3일 예약이 성공하면 금토일을 캠핑장에서 보내고 집에 돌아온다. 집에 도착하면 마음은 아직도 밖에서 신나게 놀 수 있을 것만 같지만 몸은 천근만근이 되어서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나면 아이들은 평소보다 일찍 잠에 들고 만다.
캠핑 짐을 다 정리하고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면, 밖에서 육아하느라 힘들었던 육아 동지와 시원한 맥주를 들이켠다. 텐트를 치고 이것저것 손보느라 온몸이 쑤시고,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정신없이 하루를 보낸 하루이지만 기분 좋은 피곤함을 어제오늘 캠핑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맥주와 함께 풀어낸다.
"오늘 해준이가 잠들기 전에 너무 행복한 하루였다고 말했어."
와이프가 전해준 한마디로 하루 종일 고생했던 피로가 다 풀리는 듯하다.
신나게 놀아준 날 아이들이 만족해하면 몸은 힘들지만 기분은 날아갈 듯 좋다.
코 고는 소리에 누가 말할 것도 없이 방문을 살짝 열어본다.
문틈 사이로 침대 위에서 뒤엉켜 자고 있는 아이들을 조용히 바라본다.
침대에 누워있는 달덩이들.
보름달 같은 볼살, 자면서도 꾸물대는 입술
너무 작아서 깍지를 낄 수도 없는 고사리 손
피곤했는지 그렁그렁 코 고는 소리
하루 종일 신나게 뛰어놀고, 베갯잇에 침방울이 옹달샘을 이루어도
불편한 내색도 없이 누가 엎어가도 모를 만큼
꿈나라에서도 신나게 뛰어노는 듯한 모습들
어느 것 하나 이쁘지 않은 것이 없다.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와 다시 소파에 앉아 남은 캔 맨주를 마신다.
아이들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보면 가진 건 없지만 부자가 된 기분이다.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족들과 알찬 하루를 보냈을 때
나는 그럴 때 문득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