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주사 놓는 여자의 사연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벚꽃이 예쁘게 핀 올 봄부터 나는 밤마다 주사기를 든 여자가 됐다. 주사기라고 해서, 그것도 하필 밤에만 든다고 해서 험한 것을 떠올려선 안 된다. 일곱살 아들이 잠들기 전에 매일 밤 침대에서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추는 것이다.
미루고 미룬 일이었다. 아이에게 희귀질환이 있어 다른 아이들보다 한참 더디게 큰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부터 각오는 하고 있었다. 종합병원 교수님은 처음 아이가 질환명을 진단받은 4세부터 바로 호르몬 치료 시작을 권하셨다. 나는 ‘호르몬 치료’라는 말에 겁부터 덜컥 났다. 부작용으로는 뭐가 있는지 묻자 갑상선 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양쪽 다리길이의 차이가 더 커져 척추측만증이 올 수 있다고 했다. 그 밖에도 크고 작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부작용 걱정해서는 어떤 약도 쓸 수가 없고, 그보다 얻을 수 있는 실익이 크기에 치료를 추천한다고 하셨다. 그럼에도 나는 호르몬이라는 것을 인위적으로 주입시켜 몸의 면역체계에 뭔가 변화를 일으킨다는 두려움에 “다섯살이 되면 시작하면 안 될까요” “여섯살에 하면 어떨까요?” “일곱살에 시킬게요, 교수님. 그동안 집에서 소고기 잘 먹이면서 조금만 더 기다려 볼게요”라며 매년 주사를 유예해왔다.
매일 밤 주사를 놓아야 하는 삶도 두려웠다. 교수님은 치료를 한 번 시작하면 아이의 성장판이 닫힐 때까지 중단할 수는 없다고 했다. 중간에 멈추면 역효과가 생겨 키가 더 자라지 않을 수도 있어서였다. 그러니까 일곱살에 시작하면 최소한 10년 동안은 매일 주사를 놓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인터넷 세상 속에 둥둥 떠다니는 글들을 보니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주사 자국에 멍이 많이 들어서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는 글, 더 이상 놓을 자리가 없어서 뱃가죽을 잡고 바늘을 찌른다는 글, 남자 아이들은 사춘기가 오면 주사 맞기를 거부하기도 한다는 글……. 쉽지 않을 것 같은 얘기들이 가득했고, 나는 매일 밤 아이와 씨름할 것이 아득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끼니마다 소고기를 구워 먹여도 아이는 잘 크지 않았다. 먹는 양도 적었지만 아이는 질환으로 인해 키며 몸무게가 몇 년 째 '전국의 그 나이 아이들 백분위'에서 하위 3% 미만을 기록했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
결국 병원에서 교수님께 한 달 분량의 약을 받아왔다. 호르몬제를 만드는 제약회사 간호사에게 연락이 왔다. 영상통화로 주사 놓는 법과 주의사항에 대해 오리엔테이션을 해준다고 했다. 스터디카페에서 글을 쓰다 말고 복도에 나가 30분 가까이 벽을 보며 영상통화를 했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있었지만 일단 넘어갔다. 통화가 끝나고 간호사 선생님은 카카오톡으로 ‘주사 놓는 법과 주의사항’ 동영상 링크를 여러 개 보내주셨다. 몇 번을 돌려보다 보니 식은땀이 쭉 났다. 나, 잘할 수 있을까. 주사라면 매번 맞아만 봤지, 놓아본 적은 없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는 작은 일에 죽자고 호들갑을 떨고, 큰 일이 닥치면 조금 담담해지는 타입이었다. 처음에는 주사기와 약제 설명서를 펼쳐놓고 동영상도 다시 한 번 보면서 거의 대학병원 외과의사가 수술을 집도하듯 심호흡을 해가며 주사를 놨다. 아이가 움직이지 않게 하기 위해 엄한 표정을 지을 때도 있었고, 별 일 아니라고 안심시키기 위해 일부러 활짝 웃으며 아이의 사기를 북돋기도 했다. 하루는 왼쪽 팔, 다음 날은 오른쪽 팔, 그 다음 날은 왼쪽 엉덩이, 또 다음 날은 오른쪽 엉덩이. 이렇게 돌아가면서 주사를 놨다. 첫 주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주일에 다섯 번, 둘째주와 셋째주는 토요일까지 일주일에 여섯 번. 매일 비슷한 시각에, 어제와는 다른 자리에 놓아야 했으므로 알람을 맞춰두고 꼼꼼히 기록했다. 내 양치는 빼먹고 자도 아이의 주사를 빼먹을 순 없었다. 피곤이 밀려와 어쩌다 깜빡하고 까무룩 초저녁 잠이라도 드는 날엔 화들짝 놀라 일어나서 핸드폰 불빛에 의지한 채 잠든 아이의 팔에 주사를 놓기도 했다.
아이는 생각보다 씩씩했다. 무서워하거나 힘들어하지 않았고, 내 예상보다 너무 잘 해내서 대견할 정도였다. 혹시나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이런 얘기를 나누는 일은 없겠지, 싶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리 일러뒀다. “○○아, 친구들에게 너 주사 맞는다는 얘기를 굳이 할 필요는 없어. 알겠지?” 부끄럽거나 창피하거나 잘못한 일은 전혀 아니지만 행여나 주사 사실을 알면 장난꾸러기 친구들이 수군대거나 주사 자국을 보며 놀릴까봐 걱정스러웠다. 행여나 아이가 상처받을지도 모르니 미리 방어막을 하나 친 것이다.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러기를 몇 달, 아이가 다니는 학원에서 우연히 만난 같은 반 수아 엄마가 내게 말했다. “○○이도 도장 찍는다면서요?” 다른 엄마들이 들을세라 내 쪽으로 몸을 바짝 붙여 얘기하면서도 웃음기를 띤 표정이 마치 ‘우리는 말 안 해도 통하는 게 있죠?’ 하는 듯한 친근한 표정이었다. “도장이요?” 놀란 토끼눈을 하고 되묻는 내게 수아 엄마는 말했다. “아, 성장호르몬 주사요. 저희 수아는 그걸 도장 찍는다고 표현하거든요. 아이들끼리 쉬는 시간에 얘기하는 모양이에요. 수아가 ○○이도 맞는다고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은 한 번도 시뮬레이션 해보지 않았는데……. “아아 네 맞아요. 수아는 맞은 지 얼마나 됐어요?” 포커스를 수아 쪽으로 돌리며 대화를 이어나가다 나는 금세 주제를 바꾸었다.
우리 아이만 주사를 맞는 게 아니라고 하니 은근히 반갑기도 했지만 뭔가 비밀을 들킨 사람처럼 민망하기도 했고 왠지 그 주제로 계속 얘기를 이어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 주제로 공감하며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며 외로워했는데, 그래서 얼굴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찾아보려 인터넷 카페에도 가입하고 우리 애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을 찾아댔는데. 눈앞에서 바로 그 동지를 만났으니 그저 반가울 일인데 나는 왜 이렇게 당황했을까. 겉으로는 아이에게 “이거 아무것도 아니다, 부끄러운 일 아니다, 괜찮다”고 큰소리 쳐왔지만 사실 엄마인 내가 그 부분을 아이의 약점이라 생각하고 창피하게 여겨왔던 건 아니었을까.
어느새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고 완연한 가을이다. 아침저녁으로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따뜻한 차를 내려 마신다. 덥혀진 찻잔을 양손으로 감싸본다. 인터넷 서점에서 산 찻잔에 책의 한 구절이 새겨져 있다. ‘내가 굴욕이라고 생각하면 굴욕이지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장강명_<대기발령> 중)
굴욕은, 창피는 그런 것이다. 약점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그렇다고 생각하면 그런 것이고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매일 주사를 놓는 일도 마찬가지다. 자기 전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듯, 루틴 중 하나 같은 것. 숨길 필요도 이유도 없고, 그저 도움을 받아 잘 클 수 있다면 좋은 것. 10년의 세월이 남았다고 하지만, 매일매일 뚜벅뚜벅 걷다 보면 어느새 쑥 커버린 아이 덕분에 그 기간이 줄어들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까지 내가 할 일은 그저 담담하고 건조하게 성실히 루틴을 수행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