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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선의 Oct 03. 2024

뚱녀 랩소디

40년을 뚱녀로 살아온 여성의 10kg 감량기

나는 뚱녀다. 엄연히 국어사전에 있는 단어다. ‘살이 쪄서 뚱뚱한 여자를 놀림조로 이르는 말’. 비슷한 결의 다른 말로는 뚱땡이, 뚱보, 뚱뚱보 따위가 있겠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부터 나는 늘 반에서 두세 번째로 통통한 아이였다. 강조하건대 ‘뚱뚱’이 아니라 ‘통통’이다. 마치 갈비찜 속에 동글동글하게 깎여 들어간 무나 당근 같은 아이. 그게 나였다. 비유를 해도 꼭 이렇게 음식을 소재로 한 것만 생각이 나서 내가 뚱녀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통통한 여자아이는 장난꾸러기 남자 아이들이 놀리기 제격이었다. ‘꽃돼지’(그래도 접두사 꽃-을 붙여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라는 놀림이라도 들은 날엔 집에 와서 훌쩍였다. 자초지종을 들은 부모님은 껄껄 웃으며 별 일 아니라는 듯 “진짜 돼지에겐 돼지라고 못 하는 법”이라고 조언해 주셨다. 그러고 보니 반에서 나보다 더 살찐 아이에겐 아무도 돼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친구가 받을 상처를 걱정하는, 은근히 착한 꾸러기들이었을까. 속내는 모르지만 부모님의 조언은 내게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다. 그 다음부턴 누가 놀리더라도 ‘내가 좀 통통하니 귀여운가보군’ 하고 행복회로를 돌리며 10대 시절을 보냈다. 급격히 찐 살로 인해 배와 허벅지, 팔뚝이 튼살로 가득 찼을 때도 엄마는 ‘살은 대학 가면 빠진다’고 했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다니, 순진한 고딩이었다.


통통한 10대 시절, 돼지라고 놀림받고 집에 오면 부모님은 내게 "진짜 돼지에겐 돼지라고 못한다"며 정신승리를 하게 도와주셨다. (사진 : 픽사베이)


  쌀로 밥 짓는 소리지만, 물론 대학에 간다고 해서 살이 빠지진 않았다. 남자친구를 사귀니 더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에 단기 다이어트를 해댔지만 ‘남친빨’도 오래 가진 않았고, 20대의 나 역시 통통과 뚱뚱 사이를 오갔다. 그러다 보니 취업준비 기간이 길어질 땐 ‘내가 너무 살이 찌고 못생겨서 취직이 안 되는 걸까’란 생각도 자주 했다. 어쨌든 취직을 한 걸 보니 다른 회사 면접에서 떨어진 게 외모 탓만은 아니었나보다. 사회 초년생 시절, 처음 만나는 일부 무례한 사람들은 나에게 부잣집 맏며느리 같다든지 후덕해 보인다며 외모를 평가하고 놀려댔다. 그들 딴에는 칭찬이었을 수도 있지만 나에겐 하나하나 비수가 되어 박혔다. 그렇게 상처를 받으면서도 내심 ‘그래도 부잣집인 게 어디인가. 아무래도 후덕이 박복해 보이는 것보단 낫지’라고 여전히 혼자 정신승리라도 했다. 그래도 내 동글동글한 모습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 결혼도 했으니 난 귀엽고 사랑스러운 뚱녀라고 믿었다. ‘남친빨’도 ‘신혼빨’도 모두 사라진 뒤, 내겐 다이어트를 해야만 할 동기가 마땅히 생기지 않았다. 출산과 육아를 거치며 내 몸은 통통에서 뚱뚱으로 변해갔다. 


  회사 일을 열심히 할수록 살은 더 쪘다. 헐레벌떡 출근해 아침엔 대충 믹스커피나 타 마시고, 점심엔 밥·면·빵 같은 탄수화물을 힘껏 욱여넣어 오후에 일할 에너지를 챙겼다. 일주일에 두 번은 감칠맛 폭발의 제철 안주와 함께 하는 술자리가 있었다. 술자리가 끝나고 집에 와서 먹는 해장용 육개장 사발면 한 그릇은 꿀맛이었다. 알코올을 잘 분해하지 못하는 체질임에도 고된 일을 마치고 마시는 술은 청량하고 달았다. 그 꿀맛 같은 것들이 나를 서서히 더 뒤룩뒤룩해지게 만들었다. 옷 사이즈가 점점 커졌다. 66 사이즈가 꼭 끼는 걸 넘어 77도 잘 맞아보였다. 서너 겹으로 접힌 뱃살을, 터질 듯한 허벅지와 엉덩이를 다 가릴 수 있는 옷을 평범한 옷가게에서 찾기는 힘들었다. 쇼핑을 나서도 기분만 상하니 인터넷에서 가장 헐렁해 보이는 어두운 옷만 주문해 입었다. 보이는 것만 문제가 아니었다. 건강검진에선 모든 수치가 위험신호를 가리켰다. 혈당 수치가 당뇨 전단계에 가까워졌으니 관리해야 한다는 소견이 검진결과지에서 눈에 띄었고, 자궁에 있는 근종은 살이 찐 만큼 커지고 있었다. 내 몸무게를 작은 발이 지탱하지 못해 족저근막염이 자주 왔고, 30대 후반임에도 발목과 무릎이 자주 시큰거렸다.


이렇게 튼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뱃살 사진도 있다니, 픽사베이엔 없는 게 없군. <주의> 내 배 아님. (사진 : 픽사베이)


  마흔을 코앞에 둔 나는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맞이하여 육아휴직을 했다. 아이가 점심을 학교에서 먹고 오면서 시간이 조금 더 생기자 나는 집 앞에 있는 일대일 PT숍을 찾았다. 사실 내 살들이 생활에 큰 불편을 줬다거나 엄청나게 날씬해지고 싶어서 거창한 결심을 한 건 아니었다. 이 나이에 드라마틱하게 예뻐져서 내가 기대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저 체중도 혈당도 콜레스테롤 수치도 근종 크기도 모든 게 과하다고 하니 건강관리 차원에서 일주일에 두세 번 운동 좀 해봐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퍼스널 트레이닝은 과연 비쌌다. 1회 50분에 6만 5천원. 돈 한 푼 못 버는 무급휴직 백수에게 큰 출혈이었지만, 이 정도 금액이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열심히 해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백만 원이 넘는 큰 금액을 결제했다. 올해 3월의 일이었다.


  첫 한 달은 완전히 죽을 맛이었다. 운동보다 힘든 건 식단을 지키는 일이었다. 끼니마다 닭가슴살 100g에 고구마나 감자, 채소를 고루 챙겨 먹어야 한다니. 오후가 되니 급격히 당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에 단 음식이 당겼다. 흰 쌀밥과 얼큰한 육개장이 먹고 싶었다. 안 하던 운동을 하니 배가 자주 고팠고 입도 심심했다. 대여섯 시쯤엔 체력이 쇠해 잠이 쏟아졌다. 30분이라도 쪽잠을 자야 저녁 준비를 위해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내가 먹은 것은 모두 사진을 찍어 나보다 열 살 어린 트레이닝 선생님에게 보냈는데, 어쩌다 주말 외식에서 햄버거라도 먹은 날엔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져 속상했다. “회원님, 정신 차리셔야 해요. 그래도 감자튀김과 콜라는 안 먹었다고요? 지금 그걸 자랑하실 때가 아니에요. 햄버거를 드시면 안 된다고요!” 카카오톡으로 선생님에게 흠씬 혼이 나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이 고생을 하고 있나’란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받는 개인 트레이닝 수업도 물론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당 6만 5천원이란 금액을 떠올리면 본전 생각이 나서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해내게 되었다. 개인적인 얘기를 나누거나 농담 따먹기 하는 시간도 아까워 사담은 거의 하지 않았다. 어떤 날은 등과 어깨, 어떤 날은 하체와 복근, 어떤 날은 삼두와 이두 근육을 ‘조졌다’. 어느 웹툰의 한 컷처럼 “운동 조지고 와야지!”하고 호기롭게 헬스장에 들어갔다가, 나올 땐 갓 태어난 새끼 기린처럼 제대로 걷지 못하고 머리는 산발한 추노 꼴을 한 채 나오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개인 트레이닝이 없는 날에도 아이가 등교를 하자마자 헬스장으로 향했다. 어느 날엔 트레드밀의 경사도를 14로 높이고 마냥 걸었고, 또 어느 날엔 내 앞으로 끝없이 내려오는 계단을 올라야 하는 ‘천국의 계단’이란 기구를 탔다. 걷다 보면 끝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그리스 신화 속 시시포스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운동 조지고 와야지!" 하지만 조져지는 건 나였다... (사진 : 픽사베이)


  그렇게 넉 달이 흘렀다. 내 인생에서 운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커졌다. 운동을 하루 하지 않으면 그 다음날은 몸이 왠지 찌뿌둥하고 뭔가 빼먹은 것 같았다. 쌀밥이나 식빵이나 쫄면 같은 정제 탄수화물을 한 끼라도 먹은 날엔 ‘이거 먹었으니 운동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운동에 진심이었던 적은 없었다. 그동안 살면서 해온 많은 운동들-요가도 크로스핏도 수영도 나를 이렇게까지 만들진 않았다. 비결은 몸의 변화에 있다. 몸이 가벼워지니 식단을 최대한 지키게 되고 운동을 더 열심히 하게 됐다. 며칠 전 인바디로 체성분을 측정해보니 운동을 갓 시작한 네 달 전보다 체중이 무려 10kg 줄었다. 내 몸에서 지방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40%에서 30%로 줄었다. (세상에나! 인간 몸의 40퍼센트가 지방일 수 있다니!) 근육운동도 빼먹지 않고, 매일 닭가슴살을 400g씩 먹어치운 덕분에 근육도 늘었다. 인바디 결과지를 보니 꽤 선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나는 성취했다. 


  10kg이 줄자 겉모습도 달라졌다. 삼중을 넘어 가끔 사중으로 접히기도 하던 턱살은 서서히 턱으로 올라붙어 이제 접혀봤자 이중이다. 여드름과 트러블을 달고 살던 피부도 꽤 맑아졌다. 작년에 입던 옷들은 모두 흘러내릴 정도로 커져 몸에 꼭 맞는 옷을 새로 샀다. 내가 좋아하는 연분홍, 연보라, 연하늘 같은 밝은 파스텔톤 옷이다. 그동안 옷장엔 검은색 옷 일색이라 옷 하나를 찾으려면 모든 옷을 꺼내야 했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빅사이즈 브랜드에 부러 찾아가 비싼 돈을 주지 않아도 유니클로에서 9,900원짜리 기본 티셔츠를 사 입을 수 있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도 아이 사진에서 내 사진으로 바꿨다. 외모에 전보다 조금은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운동을 시작한 후 넉 달 동안 체중은 10kg가, 체지방률은 10%p가 줄었다. 나이 40 먹고도 하면 되는구나, 싶었다.  (사진 : 픽사베이)


  이 몸이 언제까지 갈는지는 모른다. 지금은 휴직 중이라 고된 업무도 술자리도 없기에 유지가 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관성은 너무나 강해서, 오랜 시간 쌓여온 습관이란 건 정말이지 무섭기에 조금만 먹고 마시고 운동을 게을리 하면 난 원래대로, 어쩌면 그보다 더 뒤룩뒤룩한 몸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이 마음 깊은 곳에 있다. 내게는 공들여 살을 빼본 경험이 남았다. 간헐적 단식을 한 것도, 디톡스 주스를 마신 것도, 원푸드 다이어트를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싱싱하고 깨끗한 음식들로 세 끼를 챙겨 먹고 땀 흘려 운동을 했다. 드라마틱하진 않아도 조금씩 뼈의 위치와 모양이 드러나고 있다. 그 감각을 내가 안다. 가벼워진 몸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을 안다. 노곤해진 몸으로 잠에 스르르 빠져드는 느낌을 안다. 티셔츠를 입었을 때 착, 몸에 적당히 붙는 상쾌한 느낌을 안다. 그러니 최소한 시간이 허락할 때까지는 조금 더 건강관리에 진심이 돼보려 한다. 10kg나 빠졌는데, 체지방률이 10%p나 줄었는데 욕심이 과하다고? 애석하게도 아직 내 인바디는 ‘과체중·체지방 표준 이상’을 가리키고 있다. 표준이 되기까지는 아직도 감량이 더 남았다. 그럼 그 전에 대체 얼마나 뚱뚱했던 거냐고? 에이, 40년 세월을 꽃돼지로 살아온 짬이 있는데. 고작 넉 달 가지고 표준이 되면 그건 꼼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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