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이 지난 후에야 풀어놓는, 쪽팔리는 출간 실패담
요즘 에세이를 쓰는 모임에 나가고 있다. 함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같은 글감으로 글을 쓴 뒤 합평하는 모임이다. 요즘 같은 영상의 시대에 웬 글? 그것도 아무도 안 궁금할 것 같은 본인 에세이? 왜냐고 묻는다면 논리적으로 답하기는 어렵다. 누구나 어려서부터 가슴 한 편에 고이 접어 간직해 온 꿈이 있지 않겠는가. 누군가에겐 음치 탈출, 누군가에겐 남극 탐험, 누군가에겐 제과제빵 같은. 그게 나에게는 에세이 쓰기와 출간이었다. 글쎄, 가슴에 맺힌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 에세이 출간은 어느샌가 내 일생의 과업이나 오랜 목표 같은 것이 돼있었다.
때는 7년 전, 아이를 출산하고 몇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퀭한 좀비 같은 꼴을 하고도 나는 책과 글을 찾아 헤맸다. 신문기자로 일하다 아이를 낳은지라 내 ‘본분’을 잊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이기도 했고, 갓난아기에게만 갇힌 나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넓혀보고 싶어서였다. 그 중에서도 육아 에세이들은 내게 큰 위로가 됐다. 때로는 눈물 나게 웃겼고, 때로는 당장 작가를 찾아가 함께 술잔을 부딪치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보다 더 날 것의 이야기 없을까? 더 솔직해서 밑바닥까지 찍는 이야기를 원해!’ 그 즈음 아이에게 젖을 먹이며 TV를 보니 관찰예능 프로그램에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출산한 톱모델이 나와서 우아하게 아이를 보고 있었다. 거울 속의 나는 지저분하고 푸짐한 멧돼지 꼴을 하고 있는데, 톱모델의 아름답고 관대한 육아라니. 나와 같은 처지의 산모들이 얼마나 속상하겠는가. 안되겠다, 내가 나서야겠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육아 에세이를 써보겠다!
회사 복직을 앞둔 내게는 몇 달의 시간이 있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등원시키고 매일 동네 카페로 향했다. 『저는 엄마가 처음인데요』라고 (지금 생각하면 뻔하디 뻔한) 가제를 지어놓고, 출판사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해 출간기획서 양식을 받았다. 기획서를 채우고 목차를 만들고 소재들을 찾았다. 글감은 주로 아기를 키우며 느끼는 말랑한 감상이었다. 작디작은 새끼손톱을 깎기(오려내기) 위해 숨을 참는 마음, 어차피 소독기에 넣어 살균할 젖병을 굳이 팔팔 끓는 물에 한 번 더 소독하는 마음 같은 것 말이다. 당초엔 ‘바닥을 치는 민낯의 이야기를 써보이겠다’라고 다짐했지만 막상 노트북을 열면 힘들어 죽을 것 같은 일보다는 미소 지어지는 따스한 기억들이 더 많이 떠올랐다. 내 표현력과 어휘력의 한계도 문제였다. 그동안 업무로 기사를 쓸 땐 항상 짧게 치는 건조한 글만 써왔기 때문인지, 아름다운 문구나 감동적인 표현 같은 게 영 생각나지 않았다. 쓰면서도 너무 부족한 글이라는 것을 절감했지만, 시작한 김에 이대로 그만둘 수는 없었다.
복직을 두 달 앞둔 초여름 무렵, 서문과 십 수편의 글을 썼다. 방향이 맞게 가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혼자 글을 쓰고 있자니 영 흥이 나지 않았다. 이 길이 맞는지 알 수 없어 주변의 도움이 필요했다. 기획서 양식을 보내준 친구에게 중간평가를 부탁했다. 친구는 기존의 다른 육아책들과 비슷하다며 본인만의 강점이 발휘되는 책이었으면 한다고 평했다. 그래도 저자 명색이 기자이니 육아와 관련된 '정보'가 더 많이 들어가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필력이 달린다는 말을 돌려 하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어쨌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목차를 대폭 수정했다. 쓰다가 또 막혀버린 어느 날엔 가까운 손윗사람에게 SOS를 청했다. 한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는 선배였는데, 두 권의 책을 펴냈고 글을 기가 막히게 잘 썼기에 그의 평가라면 납득이 갈 것 같았다. 메일로 서문과 출간기획서 등을 보내고 평가를 부탁했다. 금세 온 답장에서 선배는 처음엔 용기를 불어넣었다. “목차와 자기소개서만 봐도 너의 원고들이 재미있고 감동적일 거란 느낌이 와.” 아쉽게도 본론은 그 다음부터였다. “그런데 네 기획서에는 여러 육아 에세이와 특별히 차별되는 지점이 없는 것 같아. 그러면 글이 아무리 좋아도 묻히기 마련이니까. 아쉽지만 세상이 그런 걸 어쩌겠나 싶어.” 친구와 선배, 모두 나를 아끼고 내가 지극히 신뢰하는 이들이었다. 주변인의 평가마저 이렇게 박하다면 나는 과연 모르는 이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잘하는 ‘당근형 인간’이라 그런지, MBTI가 싫증을 잘 내는 ENFP라 그런지 나는 글 쓰는 일에 점차 흥미를 잃어갔다. 혼자 스타벅스에서 옆 테이블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에 귀가 따가울 때까지 열심히 글을 쓰긴 했지만 웬일인지 신이 나질 않았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막 손가락이 춤을 추듯 키보드를 두드리며 쓰는 것과 골똘히 생각하다 한 문장씩 이어가는 글은 완전히 달랐다. '새벽갬성'으로 눈물 고여가며 쓰는 글과 훤한 대낮에 시끄러운 스벅에서 쓰는 글은 분위기부터가 천지차이였다. 그래도 칼을 뽑았으니 뭐라도 썰어야지. 원고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기획서와 원고를 보면 이러저러한 컨셉의 책을 내보자고 제안하는 출판사가 한 곳이라도 있지 않을까. 나는 머릿속 어딘가에서 작동한 희망회로를 믿고 원초적인 방법으로 출판사에 들이댔다. 대형이든 소형이든, 이름을 들어본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출판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투고’란에 글을 올리거나 기재된 주소로 메일을 보냈다. 교보문고와 예스24, 알라딘의 에세이 베스트셀러를 살펴보고 거기에 책이 올라와있는 출판사에는 모조리 원고를 보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출판 문학팀입니다. 우선 귀한 원고를 보내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찬찬히 읽어보았지만 저희 문학팀과는 출간 방향이 다소 맞지 않는 듯해 아쉽게도 반려를 하게 됐습니다. 원고가 다른 곳에서 꼭 빛을 보았으면 합니다.’
정중하면서도 차분하고 간결한 답장이 왔다. 과연 출판사 문학팀다운 답장이었다. 정말 찬찬히 읽어본 게 맞는지 내심 의문이 들었지만 달리 방법은 없었다. 또 다른 메일을 열었다.
‘보내주신 내용은 편집팀 전원이 검토하고, 내부 기획회의에서 출간 여부를 논의하였습니다. 그 결과, 아쉽게도 본 원고는 저희 출판사의 색깔이나 방향과는 맞지 않아 출간이 어렵다는 답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출간을 반려하게 되어 유감이고, 인연으로 이어지지 못한 점 저희도 아쉽지만 다음 번에 더 좋은 기회로 만나뵙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건필하십시오.’
아아, 저는 이번 기회도 좋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런 메일도 연거푸 받으니 출판팀 전원이 검토했다거나 내부 회의까지 했다는 표현은 좀 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멋들어진 답장이었지만, 자격지심에 사로잡힌 내게는 ‘네가 구질구질하게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진대도 두 번 다시 검토하지 않을 셈이니 이제 귀찮게 하지 말아줄래’로 읽혔다.
마흔 곳의 출판사에 보낸 메일 중 단 열 곳에서만 답장이 왔다. 표현은 달랐지만 결론은 모두 ‘꽝 다음 기회에’였다. 서른 곳에서는 아예 아무런 답도 오지 않았다. 읽어보기는 했을까. 네이버든 구글이든, 클라우드 서버 어딘가에 아직도 내 원고가 둥둥 떠있을지도 모른다. 거절에도 맷집이 생기는지, 한두 번은 속상했지만 같은 대답을 계속 들으니 타격이 크진 않았다. 사실 메일을 보내면서도 속으로는 부정적인 답변이 올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글 한 편 쓰기는 비교적 쉬워도 한 챕터를 관통하는 맥락을 가지고 여러 글을 엮어내기는 쉽지 않았고, 쓰면 쓸수록 과연 팔릴 만한 책인지 스스로 의심스러웠다. 저자가 자비로 하는 출판이나 독립출판이 넘치는 시대에 책 한 권 기획하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그동안 책을 펴낸 나의 지인들에 대한 진심어린 ‘리스펙’을 남긴 채 7년 전 나의 도전은 거기서 멈췄다. 그야말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렇다고 소득이 영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혼자 고군분투하던 걸 아는 지인이 당시 싸이월드로 이직을 했고, 내게 칼럼 게재 제안을 해왔다. 다시금 ‘일촌 시대’를 열어보려 회심에 찬 싸이월드가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를 새롭게 출시하는데 그 서비스 중 하나로 칼럼을 연재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내 육아 이야기는 ‘싸이월드 뉴스큐’라는 서비스에서 ‘초보엄마 육아고백’이란 제목으로 몇 달 간 연재됐다. 조회 수도 알 수 없었고 댓글이 활발하지도 않았던데다 이제는 서비스 자체가 없어져버려 내겐 어떤 경력도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때를 지켜 마감하고 연재를 해본 경험은 내 안에 남았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났다. 나는 또 한 번 육아휴직 중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다. 이번 휴직과 함께 그동안 묻어둔 나만의 미션도 다시 꺼내보려 한다. 에세이 쓰기 모임을 통해서, 또 혼자서 스스로 글감과 마감을 정해 글을 써내려갈 참이다. 어떤 글감을 받아도 내가 하고픈 이야기는 그동안 가슴 속에 맺혀 응어리진 이야기들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어려서부터 할머니에게 무시당한 이야기, 사회적 기준으로 보자면 조금 부족해 보이는 곳에서 아등바등 열심히 산 이야기, 뼈빠지게 일하느라 몸 어딘가가 고장난 이야기…. 나는 왜 이렇게 죽을둥살둥 고생한 이야기를 남에게 하고 싶은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그동안 그 같은 에세이를 읽으며 크게 위로를 받았기 때문인 듯하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못난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또 있구나, 내게 갑작스레 닥친 일에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는데 유난스러울 것 없이 다들 이렇게 사는구나 하는 걸 느끼면 내 삶이 그렇게까지 비극적이지는 않았다. 랜선 너머 어딘가에서 함께 울고 웃고 있을 이들을 상상하면 삶이 꼭 외롭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나도 괴로운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는 이야기를 열심히 그러모아 들려주고 싶다. 인생은 쓰다. 그리하여 나는,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