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둘째를 준비할까.
야외 결혼식 피로연에서 뜻밖의 폭우가 내린다. 비바람에 우산이 뒤집히고 한껏 치장한 옷과 머리가 다 젖어버려도, 새빨간 미니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물론 신랑과 하객 모두가 함박웃음을 짓는다. 이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 <어바웃타임>을 본 건 2013년, 결혼식을 몇 주 앞둔 때였다. 그때 내 관심은 온통 결혼이었기에 나는 팀과 메리의 러브 스토리에 주로 감정이입을 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본 <어바웃타임>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란 어떤 것인지,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이런 말씀 드리긴 조심스럽지만, 동생이 있으면 ○○이에게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예요.” 때는 4년 전이었다. 아이가 각종 검사 끝에 상급 종합병원에서 희귀질환 판정을 받고서 유전 상담 간호사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다. 각종 치료를 받는 것 외에 또 어떤 환경이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냐는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엥? 지금 애가 아파서 병원에 왔는데, 그 애를 위해 또 다른 아이를 가지라고? 우리 가족을 위한 선생님의 조언은 감사했으나 당시 우리 부부에게 그런 이유로 둘째를 임신하려 노력한다는 건 태어날 아이에게 몹시 폭력적인 일로 느껴졌다. 수정되지도 않았지만 한 인간을, 또다른 인간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것 같아서였다. 거기에다 자녀 한 명을 제대로 키우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고 느끼던 차였기에 둘째 고민은 4년여 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나는 아이의 더딘 발달을 호전시킬 수 있는 언어치료 등을 수행하는 것과 여러 병원을 부지런히 다니는 것에 익숙해졌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도 육아휴직을 하면서 마음에 여유가 생긴 지금, 이제야 간호사 선생님 조언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왜 나에게 둘째 임신을 권유했는지 말이다. 아이들은 부대끼면서 자란다. 우리 아이 크는 것과 다른 아이들 자라는 걸 보니 그렇다. 그게 보육시설이든 학교든 가정이든 여럿이 함께 모여 생활할 때 더 빨리, 더 많이 배운다. 자녀가 둘이라면 둘째는 첫째 하는 걸 보고 자라니 뭐든 빠르게 습득하고, 첫째는 둘째와의 경쟁에서 이기려 관심받기 위한 행동을 하거나 인내하는 법을 배운다. 외동이라면 학교라는 사회에 나와봐야 기를 수 있는 사회성이 가정에서 절로 길러지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공평하게 사랑을 주고, 자녀를 제대로 가르칠 능력이 있다는 전제 하의 얘기다. 어디에나 예외는 있다.)
부모가 둘째 아이를 보는 시선도 다를 수밖에 없다. 영화 <어바웃타임>에서 팀이 발견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초능력의 미덕이 무엇이던가. (※영화를 안 보신 분은 스포일러에 주의하세요!) 평범한 하루를 두 번 살 아볼 때, 첫 번째에는 보이지 않았던 가게 점원의 친절하고 상냥한 얼굴이 보인다. 변호사인 팀이 재판에서 이겨도 처음 사는 하루에는 그저 ‘업무 미션 클리어’ 정도의 피곤한 낯빛으로 반응하지만, 한 번 더 사는 하루엔 해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기뻐하며 동료와 끌어안는다.
둘째 육아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첫 아이는 그저 내 몸 힘든 게 너무 크게 와닿았다. 실수투성이인 내가 아이를 잘 못 키울 것만 같아 전전긍긍했고, 왜 책에서 배운 만큼, 내가 마음 먹은 만큼 잘 안 되는지 답답하고 속상할 뿐이었지만 만약 이걸 한 번 더 한다면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아이가 커가는 순간의 아름다움과 몸은 고되더라도 뿌듯함으로 마음이 충만해지는 하루를. 또 신경이 둘에게로 분산되니 한 명에게만 매몰돼 ‘쟤는 왜 저럴까’를 고민하고 아이를 들들 볶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요컨대, 조금 살 만해지니 둘째 생각이 나더라는 것이다. 역시 환자 빅데이터를 통한 전문가의 짬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은 쉬이 넘길 것이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너무 늦었다. 나는 마흔이 코앞이고 남편은 벌써 4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이제 와서 아기를 갖는다면 아이가 장성할 때쯤 나는 환갑이 넘는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후에 어떤 일을 얼마나 재미있게 해나갈지 궁리 중인데, 다시 신생아의 얼굴을 맞닥뜨리면 내 사회적 커리어는 또 다시 리셋 되고 만다.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며 요즘 시터 이모님 구하기도 쉽지 않다. 그리하여 이성적 판단력을 십분 발휘해 우리 부부는 둘째를 갖지 않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내 주변에서 둘째 임신에 대해 고민하는 친한 이들에게는 오지랖을 부리며 ‘하나보단 둘이 나을 수 있다’고 주제 넘게 얘기하곤 한다. 내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일까. 다시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 걸까. 아니, 사람이 게임 캐릭터도 아니고 ‘잘 해낼 수 있겠다’는 이유로 내가 감히 한 생명을 탄생시켜도 되나. 물론 내가 갖겠다고 결심한다고 해서 단박에 이뤄지는 쉬운 일도 아니지만 말이다.
만약 4년 전 그때 그 병원 상담실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4년 후의 내가 약간의 후회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남편과 이야기를 나눌 것 같다. 둘째를 가지려 노력해 봐도 될 것 같다고. 한 명의 아이를 누구를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게 아니라 두 아이와 우리 부부, 네 명 모두에게 더 큰 기쁨이자 축복일 수 있다고. 하지만 아쉽게도 내겐 시간을 돌릴 재간이 없다. 그리하여 이렇게 만약을 전제로 한 글이나 끼적이며 아쉬움을 달래보는 것이다. 여전히 미숙하면서도 완벽한 엄마상(象)을 꿈꾸는 나에게는 사실 한 아이를 제대로 키워내는 것도 너무나 버겁고 어려운 일이다.
(※다시 한 번, 영화 스포일러에 주의해 주세요!)
<어바웃타임> 말미에 팀은 셋째 아이가 태어나고는 더 이상 시간여행을 하지 않는다. 막내가 태어나기 전, 마지막으로 하는 시간여행에서 어릴 적으로 돌아가 아버지와 해변을 산책하며 물수제비를 뜨는 장면은 지금의 나에게 ‘빗속 결혼식’보다 훨씬 큰 의미로 다가왔다. 팀은 말한다. “난 시간여행에서 마지막 교훈을 얻었다. 그저 내가 이 날을 위해 시간여행을 한 것처럼, 나의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완전하고 즐겁게 매일 지내려고 노력할 뿐이다.”
나도 ‘조금만 젊었어도 둘째를 가지는 건데’ 같은 생각에 매몰되지 말고, 매일 아침 등굣길 아이 얼굴을 한 번 더 쓰다듬어 주고 더 자주 깔깔대고 웃어야겠다. 우리 아이와 함께 하는, 나의 평범하지만 특별한 하루는 다시 오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