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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선의 Oct 10. 2024

가정주부가 청소를 돈 주고 맡겨도 되나

4시간에 6만8천원입니다.

‘내일이 딱인 것 같아. 청소해주실 분을 불러야겠어.’ 지난 월요일이었다. 불현듯 ‘내일 가사관리사 도우미를 고용해야 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10월 8일 화요일에 집을 말끔히 청소하면 다음날인 10월 9일 한글날에 깨끗한 집에서 쾌적하게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내가 하면 되지 않느냐고? 나에겐 써야 할 글이 있고, 읽어야 할 책이 있었으며 둘 다 미처 못 한 상황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청소가 너무너무 하기 싫었다. 원래도 나는 살림엔 영 젬병이었다.(‘원래’라는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집안에 있는 것보다 집 바깥으로 나가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는 게 적성에 맞았다.(집에 콕 틀어박혀 집안일만 하는 게 적성에 맞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만) 여하튼 내겐 우렁각시가 없으니 이걸 돈으로 해결하면 되지 않을까. 몇 년 전 다운받아 첫 고객 할인쿠폰만 이용하고선 바로 삭제했던 앱을 다시 설치했다. <청소연구소>. 휴대전화 화면에 설치된 앱 아이콘 색부터가 마음에 들었다. 비 온 뒤 말끔히 갠 하늘처럼 쾌청한 파랑색. 


  나는 육아휴직 중이다. 그런데 첫 번째 휴직이 아니라 두 번째 휴직이라 회사에서 월급을 받지 못한다. 맞벌이 부부에서 ‘맞’이 빠졌으니 1년간은 외벌이다. 무급 육아휴직으로 땡전 한 푼 벌지 못하는 가정주부가 된 것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등교하고 난 뒤 나의 일과는 매일 비슷하다. 집에서 청소·빨래·설거지 같은 집안일을 하거나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대강 아침 겸 점심을 먹다 보면 금세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다. 못해도 이틀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청소를 해왔지만, 최근 한 달 정도는 개인적인 일이 생겨 무엇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정리도 대강, 청소도 대강, 겨우 세탁기만 돌리고 설거지는 퇴근한 남편이 했다. 무기력함은 나를 조금씩 갉아먹어 집안은 난장판이 됐다. 특히 화장실은 눈 뜨고 보지 못할 정도로 지저분해졌다. 누군가 와서 집안을 치워준다면, 이 무기력함이 없어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난 정말로 나 대신 청소에 대해 연구해 줄 사람이 필요했고, <청소연구소>는 그렇게 다시 내 휴대전화 속에 들어왔다.


평수에 따라 46,200원부터 청소가 가능하다니. 현대인은 시간이 금인데, 이 정도면 합리적인 가격인걸?! (사진 : 청소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집 평수를 입력하니 기본 청소시간 4시간 30분에 73,700원이라는 금액이 떴다. 아, 좀 센데. 다행히 청소시간을 30분 줄이는 옵션도 가능했다. 4시간에 68,600원. 만원 단위의 앞자리가 바뀌니 심리적 장벽이 조금 낮아졌다. ‘이 정도면 배달음식 두 번 정도 안 시켜먹으면 되는 금액인데?’ 오, 게다가 추가로 무료 선택 옵션도 있다고? 옵션 중에 실내 창틀먼지 제거가 있기에 냉큼 골랐다. 다음날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로 예약을 잡아두고 결제를 마쳤다. 그냥 내가 천천히 청소하면 될 것을 괜히 불렀나 하는 마음 반, 전문가의 손길은 다르겠지 라며 기대되는 마음 반이 공존했다. 그럼 나는 나가 있어야 하나, 집에 있어야 하나. 혹시 나가 있다가 집안에 (별다른 것도 없지만) 귀중품이 없어지면 어떡하지. 그렇다고 집에 있기에도 서로 불편할 것 같은데.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런데 우리집에 처음 와보시는 분이 각 물건들의 제자리가 어디인지는 어떻게 아실까. 일일이 나에게 물어보시긴 곤란할 테니, 너무 널부러져 있는 물건들은 내가 모두 제자리에 두었다. 이 기회에 애지중지하다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화장품이며 의약품이며 버릴 것도 좀 버렸다. 초면인 분이 지저분한 우리 집을 보고 나를 너무 인간 말종으로 보실까봐 ‘이건 좀 심하다’ 싶은 부분들은 내가 조금 치웠다. 건조기에서 건조를 마친 빨래도 바로 개켜놓고, 빨래도 내가 돌릴 요량으로 세탁망에 넣을 것을 분류해 바구니에 넣어두었다. 곳곳에 조금씩 손을 대다 보니 ‘아니 이럴 거면 뭐 하러 돈을 써서 사람을 불렀지?’란 생각도 들었다.


가사청소 중 거실, 방의 청소 범위. 주방, 화장실, 현관, 실내창틀까지 보다 보면 '이걸 어떻게 4시간 안에 하지?' 싶기도 했다. (사진 : 청소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드디어 디데이.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는데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10분 전에 도착한 가사관리사 선생님의 전화였다. 나는 금방 들어가겠다며, 어떤 커피를 좋아하시냐고 여쭤봤다. 아이스 카페라떼 두 잔을 포장해 집으로 갔다. 인상 좋은 선생님은 길 찾기가 어려웠다면서 익숙한 듯 스몰토크를 주도하셨다. 커피를 앞에 두고 마주앉아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청소도구의 위치를 알려드리곤 빨래는 제가 하겠다, 쓰레기는 모아 주시기만 하면 된다, 레고는 이 통에 그냥 구분없이 담아주시라 등등 숙지해주셨으면 하는 사항을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내가 집에 있을 계획이란 얘기를 들으시고는 어느 방에 있을 거냐며 그 방부터 치워주셨다. 나는 “제가 집에 없다 생각하고 하시라”며 “좋아하는 음악 크게 틀어놓으셔도 된다”거나 “혹 더우면 에어컨을 켜시라”고 했다. 취향대로 드시라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탄산음료, 물과 각종 간식을 식탁 위에 올려뒀다. 나는 서재에서 내 일을 했고, 그 사이 가사관리사 선생님은 집안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쓸고 닦았다. 


  집은 깨끗해지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점점 불편해졌다. 마음껏 드시라거나 편하게 하시라면서 뭔가 시혜를 베푸는 것 같은 내 태도가 꼴불견이었다. 꼭 월급은 쥐꼬리 만큼 주면서 '주인의식을 가지라'며 일은 엄청 시키는 직장 상사 같았다. 물론 냉정하게 말해 그와 나는 금전으로 얽힌 고용관계가 맞지만, 사지 멀쩡하고 젊은 내가 숙모뻘의 선생님에게 돈을 준다는 이유로 윗사람처럼 구는 게 영 불편했다. 회사에서 부장님이 아무리 “편하게 해 편하게~”라고 해도 차장 과장 대리는 절대 편해지지 않듯이 내가 아무리 선생님께 저런 말을 했어도 그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점심 때가 되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마침 잘 됐다. 이 불편한 동거를 얼른 끝내고 싶던 차에, 겸사겸사 집 밖으로 나가 선생님이 함께 먹을 김밥을 사왔다. 기본 김밥으로 할까, 속재료가 더 들어간 프리미엄 김밥으로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1,200원을 더 주고 참치가 듬뿍 들어간 참치김밥으로 골랐다. 3,800원과 5,000원 사이에서 갈등하다 5,000원을 택한 내가 아주 조금은 멋있다 생각했고, 그렇게 여긴 자신이 또 꼴불견이라 혼자 코웃음을 쳤다.


나는 사실 속으로 '김밥에 커피까지 사다드리면 예산 초과인데' 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우리집에 찾아와 내 일을 대신 해주고 있는 손님을 허투루 대접할 순 없었다. (사진:픽사베이)

  과연 전문가는 전문가였다. 가사관리사 선생님이 가신 뒤 집안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반짝반짝 반지르르하게 광이 났다. 커피를 사다드려서 유난히 더 잘 해주신 걸까, 아니면 원래 전문가는 다른 걸까.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집의 청결함이 내가 했을 때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과연 돈은 좋은 것이었다. 사실 한 달에 한 번씩 화장실 청소를 하고 나면 나는 늘 화가 났다. (한 달에 한 번만 하기 때문이겠지만) 찌든 때와 핑크색 물곰팡이를 박박 닦으면서 땀인지 락스 희석액인지 모를 것에 푹 젖어 있으면 눈도 맵고 목도 따가웠다. 왜 세 명이 사는 이 집에서 화장실 청소는 늘 내 몫인지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었다. 누군가 사용한 변기를 말없이 닦는 것이야말로 그에게 지극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런데 왜 그 사랑을 나만 표현해야 하는 거지. 모두가 잠든 새벽, 그렇게 화장실 청소를 하고 나면 다음날엔 유난히 남편과 아이에게 툴툴거렸다. 이번엔 곰팡이가 핀 화장실과 싱크대 하수구를 청소하며 단전에서부터 올라온 짜증이 없었기에 가족들은 내 화를 받아내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 면에서 전문가가 해주는 청소는 내 마음 건강과 우리 가정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아주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 어지간히 힘들지 않고서는 웬만하면 우리집 청소는 내가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땡전 한 푼 못 벌면서 68,600원을 썼기 때문이 아니다. 뭐 매일도 아니고 한 달에 한 번쯤은 충분히 지출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전문가의 손길이었다. 하지만 나는 뭔가 불편했다. 꼴랑 돈 몇 만원으로 누군가를 ‘부리고 있다’는 느낌도 거북했고, 다 큰 어른이 내가 지내는 집안 하나 돌보지 못해 외부에서 다른 이의 힘을 빌린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 표현이 맞겠다. 나는 부끄러웠다. 그걸 가려보려, 약간의 돈으로 때워보려, 커피도 김밥도 간식도 사다드리고 서재로 쏙 숨어버린 것이다. 휴대전화 바탕화면의 앱을 다시 본다. <청소연구소>는 가장 최근에 받았기에 아이콘들 중 맨 마지막에서 여전히 청량한 파랑색으로 빛나고 있다. 길게 눌러 삭제한다. 꾸욱.


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 가사관리사 선생님은 내 안의 무기력함을 빨아들였다. 쑤욱. (사진 : 픽사베이)


< 에필로그 >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이 글은 해당 서비스를 폄하하거나 청소를 외부 인력에 맡기시는 분들을 힐난하는 글이 아닙니다.

확실히 전문가는 다릅니다. 제가 늘 하던 부분만 대강 하는 청소와, 가사 관리를 수년간 해 오신 분들과는 정리와 청소의 기술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리고 ‘땡전 한푼 못 버는 가정주부’라는 표현에 혹시나 상처받는 분이 계실까 염려되어 덧붙입니다. 

바꿔 생각하면 주부들이 집안 청소에 들이는 4시간이 집 바깥에서는 최소 7만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노동이란 얘기 아니겠습니까. 어디 청소뿐이겠어요. 식자재 준비와 매일 식단을 달리한 요리, 냉장고 정리에 설거지까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을 정리하고 침구류를 교체하고 가족들의 건강을 신경쓰는 일까지.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만큼 값어치 있고 어려운 일이지요. 저를 비롯한 많은 주부들이 고급 노동력을, 우리 가정이 잘 굴러가게 하기 위해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걸 가족 구성원들이, 사회가 더 많이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그저 가사관리 서비스를 두 번째로 이용해보는 초보 소비자의 입장에서, 숙모뻘의 선생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으려니 마음이 불편하더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또 모르죠. 반질반질한 집안이 그립다며 또 한 달이 지나면 지웠던 앱을 다시 설치할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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