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 들어가십니다!"
성수동 팝업은 처음이었다. 검색만 해도 너무 힙해서 나 같은 30대 후반 아줌마가 가도 되나, 물을 흐리는 건 아닌가, 동네 분위기와 맞지 않는 건 아닌가 하고 그 동네에 가기를 주저했다. 브런치스토리의 팝업 <작가의 여정(Ways of writers)> 덕분에 나도 성수동 팝업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금요일 오전이었다. 악명 높은 성수역 3번 출구는 평일 오전에도 사람이 꽤 많았고, 나는 지도 앱을 열심히 보며 길을 찾아갔다. 드디어 팝업 스토어 도착. 입구에서 초대장을 보여드리자 직원 분께서 마치 이자카야에서 “이랏샤이마세!” 하듯이 크게 외쳤다. “작가님 들어가십니다!” 앗 내가 작가였던가. 아 맞다, 브런치 작가지. 입구에서 아이패드로 사진을 찍고 내 사진이 인쇄된 플라스틱 명함(작가 카드)을 받으니 조금 실감이 났다.
팝업은 오밀조밀 짜임새가 있고 무척 흥미로웠다. 직원 분들은 친절했고, 관람객들은 그냥 지나가다 들른 게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온 것이 분명해 보였다. 눈빛이 빛나는 건 물론이고 표정에서 설렘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도 전시장 구석구석, 글 하나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꼼꼼하게 살펴봤다. 브런치스토리 팝업에서 배운 것이 있다.
“작가님 들어가십니다! 안내해 주세요!” 라는 직원 분의 말씀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브런치스토리는 자신만의 시선을 담아 세상을 향해 글을 쓰는 사람을 작가로 명명해준다. 꼭 책을 내야만, 등단을 해야만 작가라는 타이틀이 붙는 게 아니다. 인터넷 뉴스매체 ‘오마이뉴스’의 모토가 ‘모든 시민은 기자다’이듯, 브런치스토리의 모토는 ‘모든 글 쓰는 사람은 작가다’인 셈이다. 나도 작가란 마음이 생기면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달라진다. 수정체에 작가의 필터가 씌워지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즐거운 에피소드가 생기면 독자들에게 재미있게 들려줄 생각에 기쁘고, 속상한 일이 있으면 구구절절 써내려가 슬픔을 나눌 생각에 덜 힘들다. '역시 난 작가니까, 이 얘기를 글로 써보라고 하늘이 이런 시련을 주시는군!'이란 웃픈 생각도 든다. 그렇게 하나둘 꾸준히 써내려가다 보면 ‘어느 날 작가가 되었다’고 말하는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작가들처럼 언젠가 진짜 작가로 발돋움할 날도 오지 않을까.
브런치스토리 팝업에는 눈에 띄는 방문객들이 있었다. 바로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다. 이 분들이 Z세대의 성지 성수동에 출동하신 건 팝업을 보고 영감을 받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 분들은 벽에 빼곡히 적힌 글들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찬찬히 눈에 담았다. 찰칵, 사진만 찍고 바로 다음 공간으로 넘어가는 젊은 관람객들보다 큰 열정이 보였다. 글쓰기에는 정년이 없다. 정년퇴임한, 명예퇴직한, 사회에서 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이제 집으로 돌아와 몸을 뉘인 분들에게는 글감이 무궁무진하다. 하고 싶은 말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얼마 전 가수 성시경은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배우 박서준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난 꼰대가 활성화됐으면 좋겠어, 우리나라에. 그래야 사회가 좋아질 거야. 늙은 사람이 닥쳐야 하는 사회는 자유로워질 수는 있지만 기준이 없어지는 거야. 멋진 꼰대는 얘기를 할 수 있어야 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게 무조건 있잖아. 앞길을 간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무시 안 했으면 좋겠어.”
팝업을 누구보다 진지하고 진득하게 살펴보신 그 분들이 잘 숙성해 들려주실 인생의 지혜가 기대된다.
팝업에는 작가에게 영감을 주는 질문과 문장, 그리고 글감들이 가득했다. 브런치북 대상 수상자들은 “나는 내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을까?” “어제와 조금이라도 달라진 오늘의 작은 변화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몇 시간이고 떠들 수 있는 나의 관심사는?”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고 소개했다. 알록달록한 색색깔 스티커를 하나씩 모아 집으로 모두 챙겨왔다. 매일 하나씩 나에게 질문해 보려 한다.
브런치스토리에서 꾸준히 작가활동을 하고 있는 다섯 분의 스타 작가들(정문정·임홍택·황보름·윤수훈·정혜윤 작가)은 글쓰기 레시피를 공유해 주었다. “아름다운 문장을 계속 수집하기, 글 쓰는 장소와 시간을 정하기, 독자를 사랑하기”(정문정 작가), “끊임없이 사람에 대해 생각하기, 조금 아는 상태로 시작하기, 나의 이야기를 믿기”(황보름 작가), “글로 사진 찍기, 문장 하나에서 출발해 큼직한 구조 짜기, 누군가에게 말하듯이 쓰기(정혜윤 작가)” 등 이 분들만의 글쓰기 요령을 책상 앞에 붙여두고 따라해볼 참이다. 또 팝업이 소개해준 한 달의 글감 키워드들만 가지고 써도 글 30편은 뚝딱이다.
브런치스토리는 전시의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글쓰기는 특별한 사람들만이 누리는 재능이 아닙니다.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섬세하게 바라보며 글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바로 ‘작가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작가의 여정>으로 향하는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글이 아니라, 진솔하게 자신을 담아내는 것입니다. 글쓰기 요령보다도 나만의 생각과 이야기가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야기가 있다. 나만 겪었다고 생각하는 일, 그래서 남들이 공감하지 못할 것 같은 일도 희한하게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크게 보자면 세상사, 인간사가 얼추 비슷한 궤적을 가졌기 때문이다. 내가 간 길을 먼저 걸어간 사람도 있고, 내 뒤를 따라올 사람도 있다. 같은 심연에 빠져있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때로는 오래된 친구보다 얼굴도 모르지만 글로 만난 랜선 친구, 브런치 이웃이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친구와 햇살 좋은 점심에 브런치를 먹으면서는 목이 메어서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브런치스토리에는 털어놓을 수 있다. 앞으로도 진솔하게 나만의 이야기를 브런치스토리에 털어놓으며 작가라는 평생의 여정을 즐겨봐야겠다. 이제, 나도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