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창윤 Oct 19. 2020

13. 우여곡절, 정동진


'버스를 타면 좋지만 못 타면 갈 수 있는 만큼 걸으면 되고, 걸어가다 힘들면 되돌아와도 되고, 오늘 못가면 내일 가도 되고, 내일 못가면 아예 안 가도 상관 없고...'
정동진 방향  버스 타기에 실패한 후, 저의 생각은 이랬습니다.

며칠전 금진초교 앞 버스정류장 부스에서 112번 버스 운행표를 보았습니다. 공단발 낮 12시 30분 차가 있길래 그걸 타고 정동진에 다녀올 생각이었습니다. 금진초교 앞은  면사무소 및 옥계시장 방향이고 건너편이 정동진 방향일테니 버스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면 되리라 생각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정동진 방향에 버스부스는 물론 정류장 표시가 없었습니다.

자전거 타고가는 여인네에게 물었더니 금진해변 쪽으로 가보랍니다. 그쪽으로 오는 버스는 정동진에 갈 것이랍니다. 15분 가량 시간 여유가 있어 발빠르게 금진 해변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역시 정류장이 안보입니다. 마을회관까지 왔는데 건너편에 있는 정류장 부스가 이쪽 편에는 역시 없습니다. 지나가는 버스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금진항까지 갔더니 이제야 버스정류장 부스가 보입니다. 거의 한 시간을 걸었습니다.

시간 맞춰 버스타기는 틀렸고, 두 시간마다 다니는 버스가 언제 올지도 모르겠고 결국 정동진 행을 포기한 후, 바닷길 산책이나 더 해야겠다며 몇 발짝 걸음을 옮기는데 웬 승용차가 멈춰서더니 차 유리문을 열고 말을 붙입니다.
" 어디까지 가세요?"
" 정동진이요."
"그럼 타세요. 저도 그쪽으로 가는 길이니 태워다 드릴게요."
"고맙습니다."
잠깐 망설이다가 차를 얻어탔습니다. 불순한 의도로 차를 태워준 것은 아닌지 경계심이 생겨 반신반의 하다보니 진땀이 났습니다.
"어디서 오셨어요?"
"대구요"
" 대구, 좋은 곳이죠."
대구가 좋은 곳이라고 말해주는 걸 보니 예의가 바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 여행 오셨어요?"
"한달 간, 글 쓰러 여성수련원에 와 있어요. 그런데 이곳은 교통이 불편하네요. 버스도 잘 안다니고..."
" 아, 작가시구나. 정말 멋지세요. 여기가 교통이 좀 그래요."
운전자는 40대 초반으로 보이는선량한 인상의 남자였는데 매우 친절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며 20분 가량 가다가 선량남이 내려준 곳은 정동진 모래시계 공원 입구였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자
"아닙니다. 작가님을 태울 수 있어서 제가 영광이죠. 좋은 글 많이 쓰세요. "
"안녕히 가세요."
차에서 내린 후. 돌아갈 방법을 먼저 모색해야 하기에 마침 걸어오시는 할머니께 여쭈었습니다.
" 금진 가는 버스는 어디서 타요?"
" 저기 저쪽에 해양경찰서 있지. 그쪽에서 타면 돼요. 1시 30분에 차가 오니까 지금 바로 가서 타면 돼"
" 지금 도착했거든요. 좀 둘러보고 가려고요."
'다음 차는 3시 반에 있어"
" 네. 고맙습니다."
복귀할 방안을 강구해놓았으니 안심하고 정동진 모래시계 공원으로 갔습니다. 다리를 건너며 해변에 잔뜩 모여 있는 갈매기 무리를 보았습니다. 바닷가에 바위가 없으니 모래사장에 떼로 모여 쉬고 있는 것입니다.

평일이라 그런지 공원은 붐비지 않았습니다. 바닷가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젊은 연인과 모래사장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중년의 여인네 둘, 해변을 산책하는 노부부 등이 보였습니다. 모래시계와 정동진 박물관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여행객들도 보였습니다.

연인커플, 부부커플, 가족 커플들이 줄줄이 레일바이크 타고 지나가는 것을 보며 나무 그네를 탔습니다. 혼자지만 외롭지 않았고 홀로여서 좋았습니다. 홀로 산책하고, 혼자  점심 먹고, 느릿느릿 시간을 보내다가 차 시간 맞춰 해양경찰서 앞으로 갔더니 다행히 버스가 와 주었습니다.
버스는 금진 해양경찰서 앞이 종점인지 그곳에서 저를 내려주고는 멈춰섰습니다. 숙소 인근 금진초교까지 버스를 타지 못하고 하차하여 한 시간 정도 걸었지만, 어찌되었든 걸어서 복귀할 수 있는 거리까지 차를 탈 수 있었으니 할머니 만난 것이 운 좋았다 싶었습니다. 할머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버스 타는 장소와 차 운행시간을 어찌 알 수 있었겠습니까.

정동진을 누비다보니 차 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사람은 저 밖에 없는 것 같아 서글픔이 느껴졌지만 두 사람의 귀인을 만나 무사히 정동진을 다녀올 수 있어서 그 정도의  설움 따위는 간단히 날려버릴 수 있었습니다
'차가 없으니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두 다리가 무기네. 많이 걸어서 운동되고 다리도 튼튼해지니까 일석이조잖아'

             정동진 모래시계공원

정동진 해변의 갈매기 떼


이전 12화 12. 들어온 틈이 출구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