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나 대우만 받고 아쉬울 거 없는 사모님들이 그녀의 집에 방문 후 묘한 기류를 풍겼다. 남들의 부러움과 추앙으로 내면을 채우던 이들이 자신보다 더 잘 사는 사모님을 만나자 주눅 아니 그보단 회피하고 싶은 마음인지, 전처럼 그녀에게 살갑지 않아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녀는 이런 상황이 재밌어 즐기고 있었다. 그녀가 그들이 확인할 수 없는 허풍으로 우위를 차지한 채 승자의 여유로운 미소를 날리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한 인물이 등장했다.
유치원 셔틀버스 바로 뒤에 포르셰 한대가 멈춰 서더니 운동복 차림을 한 여성이 아이와 내렸다. 후덕한 체형의 그녀와는 상반된 늘씬한 몸매의 소유자로 두 팔 엔 온갖 명품 팔찌와 시계를 착용하고 운동화엔 샤넬 로고가 반짝였다. 저 여자는 처음 보는데 누구지? 새로 이사를 왔나? 그녀가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생각하는데 도준맘이 뉴페이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학부모들 중에 유일하게 앞동 초대형 평수에 사는 사모님이었다. 남편은 종합병원의 원장으로 페이닥터가 감히 비빌 수준이 아닌지라 같은 의사 사모님이라도 클라스가 달랐다.
그녀는 종합병원 사모님의 위엄에 극복한 줄 알았던 "사모님 앞 쫄보병"이 다시 도졌다. 그리곤 속으로 제발 그가 내성적이고 사람들을 싫어해 학부모들과 형식적으로만 지내길 간절히 바랐다.
"처음 보는 분인데... 오늘 같이 티타임 가질래요? 선물 받은 좋은 보이차가 있거든요."
그녀는 좋다고 말하면서 긴장감을 감출 수 없었다. 상황을 보니 그녀 빼고 모두가 한 번씩 종합병원 사모님 댁을 방문한 듯 보였다. 도준맘과 의사 사모님은 그런 그녀를 보며 너도 한번 당해보란 듯 눈은 그대로 입만 웃고 있었다.
앞동에 가보는 건 처음이었다. 뷰가 굉장히 좋단 소문만 들었을 뿐. 게다가 80평대 가정집을 한 번도 본 적 없어 몹시 궁금했다. 그 호기심이 차마 초대를 거절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현관문이 열리자 그녀는 깜짝 놀랐다. 작은 방보다 더 큰 현관에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세련된 인테리어와 걸어도 걸어도 넓은 거실에 시립박물관 정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뻥 뚫린 뷰까지. 이런 집에 초대받은 것이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게다가 병원 사모님이 내온 티팟 세트는 에르메스였다. 에르메스 찻잔에 입술을 대보긴 난생처음이었다. 그녀는 비로소 진짜 사모님을 알현하여 말문이 턱 막혔다.
이분과는 감히 돈배틀을 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누군가 그랬던가.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시기 질투를 하지만 그 정도를 초월하면 그저 부러움만 남는다고. 그녀는 태어나 처음으로 질투 없는 순수한 부러움에 감정이 벅차올랐다.
"저희 집은 부잣집 뒷베란다 뷰인데 여긴 전망이 정말 좋네요"
병원 사모님은 가감 없는 그녀의 솔직한 표현을 무척이나 재밌어했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티타임을 갖자 사모님이 그녀에게 물었다.
"내일 에스테틱 가는데 같이 갈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