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속 Jun 19. 2024

누가 누가 잘 사나

  그녀는 한껏 자신을 과시할 생각에 얼굴까지 상기됐다. 평소 비싸서 한번 사 먹을까 말까 한 애플망고 수제 마카롱, 프릳츠 원두까지 배송받았다.

  이처럼 입맛 까다로운 사모님들을 초대하는 건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의사 사모님은 약속이 있다며 좀 늦게 합류하겠단 연락을 주어 도준맘과 단둘이 대면하게 됐는데 긴장감이 감돌았다.

  집이란 평수만 넓다고 위화감을 줄 수 없다. 내부를 꾸민 가구나 고가의 오브제, 가전이 주는 압도감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녀의 집 가구는 혼수로 한샘에서 산 중국산이었다. 거기에 진품 USM 서랍장은 너무 비싸서 똑같은 모양의 짭을 구매해 중문 입구에 두었는데 혹여나 도준맘이나 의사 사모님이 가짜인 걸 알아볼까 봐 그녀는 조마조마했다. 이런 부담감을 안고 먼저 초대의 선빵을 날릴 수 있던데는 그녀 나름 믿을 만한 구석 이있었다.

  "우아, 집이 너무 예뻐요. 갤러리 같아요"

평소 빈말을 안 하던 도준맘의 탄성이 계속 이어졌다. 집안의 모든 벽면을 채운 현대미술 작품들. 사치품의 최고봉인 그림이 그녀의 집에 가득했다.

  이렇게 그림 많은 집을 처음 본다며 얼마 전 다녀온 아트페어에서 봤던 작품들이 집안에 걸려있자 도도한 도준맘의 입이 벌어졌다. 그녀는 전날 남편에게 소장한 그림의 작가이름을 물어봐 달달 외웠다. 도슨트에 빙의하여 목소리를 깔고 외운 이름과 그림제목을 소개하자 그림에 조예으시네요란 칭찬까지 들었다. 미술계통에서 일을 하냐 질문엔 순수취미생활이라고 대답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취미를 가진 남편덕에 그녀의 어깨뽕이 한껏 치솟았다.

  뒤늦게 합류한 의사사모님도 그녀의 집을 보고 놀라긴 매한가지. 기에 눌리기 싫은 듯 우리 병원에도 이런 그림 한점 사서 걸어야겠다고 얼마인지 묻자 그녀는 웃으며 6천인데 지금 시세는 모르겠다고 하자 의사사모님은 질 수 없다는 듯 갑자기 신축 자가 아파트를 두고 학군 때문에 삼십 평대 전세를 산다는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꺼냈다. 도준맘도 질세라 자신도 오십 평대 자가를 두고 여기서 산다며 미소 지었다. 그녀는 순수한 전세 세입자인지라 움찔하다, 에라 모르겠다 서류를 떼보겠냐 있지도 않은 서울 공덕동에 아파트를 가지고 있어 그들과 마찬가지로 전세를 살고 있다고 질러버렸다.

  서울 아파트를 두고 여기서 사십 평대 전세까지 산다니 너무 갔나 아차 싶었다. 하지만 이미 쏟아진 물. 고삐 풀린 망아지들처럼 자신들의 재력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시부모가 땅이 있네 없네. 외제차 세 대를 굴리네 네 대를 굴리네. 한바탕 입을 턴 사모님들이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가자 그녀는 황망했다.

  변호사, 의사 사모님들과 돈배틀을 벌린 자신에게 현타가 왔다. 겸손할 순 없었을까? 적어도 진실할 순 있었잖아. 거짓을 쌓아 올린 거짓된 관계는 의미 없잖아.

  그녀의 인생극에 빌런은 다름 아닌 그녀 자신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