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한 손에 쥔 채 그녀는 텅 빈 눈으로 허공을 주시했다. 기를 죽이고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비단 그녀뿐만 아니었던 것이다. 학부모의 카톡 프로필 목록을 넘겨보며 그녀는 이것이야 말로 세련된 자기 과시로구나 하며 한수 배웠다.
만약 학부모가 구매한 명품 사진이나 유럽여행 사진등으로 프로필을 꾸몄다며 그녀는 콧방귀를 뀌며 흘려봤을 테지만 고수는 달랐다. 학부모는 푸릇푸릇한 축하화분을 찍어 올렸는데 리본에 새겨진 명조체 글자에 그녀의 기가 팍 죽었다.
"환자만큼 와이프도 신경 써주세요♡"
사진 한 장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보를 임팩트 있게 전달하는 노련미, 굳이 스스로 떠벌일 필요 없는 간결함. 그녀는 의사 사모님에게 존경의 큰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동시에 아침 등원길 프라다 블라우스로 로고플레이를 한 자신이 부끄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한때 그녀는 천박한 자본주의 맛에 흠뻑 도취되었다. 백화점 VIP로 주차장 자리를 찾아 뱅글뱅글 돌 필요 없이 1층에서 사뿐히 하차했으며 드림투어로 줄 서지 않고 에버랜드를 즐겼다. 다른 이들이 땡볕에 지친 표정을 짓는 것을 보며 소름 돋게도 그녀는 자본주의 만세를 외쳤다. 두 시간 넘게 놀이기구를 타겠다 줄 선 이들의 노고를 보며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신이 났다.
그녀는 편리해진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꿈을 멋들어지게 이뤘노라 자신했다. 그녀가 주인공인 인생 대역전극에 예상치 못한 빌런이 출현하기 전까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