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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Jun 26. 2024

사모님에게 필요한 건

  그녀는 뜨끈한 물침대 위에 누워 눈을 말똥말똥 뜬 채 대기 중이었다. 병원 사모님이 끊은 10+1 회원권에 1회분을 공짜로 누리는 호사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기에. 산전, 산후 마사지만 받아봤지 에스테틱은 처음이라 긴장했는데 섬세한 손길로 얼굴을 매만져주자 금방이고 눈이 감길 듯 몸이 노곤해졌다.

'아, 사모님들은 이런 걸 일상으로 누리는구나'

황홀경에 빠지려는데 갑자기 마사지사가 그녀의 팔을 들어 올리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얼굴만 만질 줄 알고 겨드랑이 제모도 하지 않고 털털한 모습으로 쭐래쭐래 따라왔건만 아무렇지 않게 덥수룩한 그녀의 겨드랑이를 주무르는 게 영 민망하여,

   "제모 못 했는데 다음엔 꼭 하고 올게요"

   "아이 뭘요. 별로 없는걸요 사모님. 괜찮아요."

별로라니.. 있긴 있다는 소리네. 그녀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병원 사모님과 각방을 써 망정이지 이 꼴을 보였다면 망신스러울 뻔했다고 안도하며 남은 서비스를 다 받고 윤기가 좔좔 흐르는 얼굴로 샵을 나왔다.

  공짜 에스테틱을 받았으니 밥이라도 사야 할 것 같아 사모님 단골 레스토랑으로 갔는데 세상에 그가 2인에 20만 원짜리 코스를 주문하는 것이 아닌가! 자기는 덤으로 주는 회차를  쓰듯 써놓고 그녀에겐 생돈 20만 원을 쓰게 하겠다. 이래서 부자인가. 베푼 것 이상으로 삥을 뜯어서? 그녀는 속으로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보이려 애썼다.

  20만 원 코스 요리는 시작이고 병원 사모님은 날이 갈수록 그녀가 만만한 건지 아니면 편한 건지 선을 넘기 시작했다. 백화점 식품관으로  함께 장을 보러 가서는 굳이 딸기를 같이 사서 나누자고, 그래놓곤 자긴 윗줄의 크고 실한 딸기를 챙기더니 그녀에게는 아래줄에 눌린 잔챙이 딸기를 . '나보다 자기가 개수가 더 많아'라는 개소리도 함께 얹으면서. 거기에 백화점 상품권 행사 때는 둘의 영수증을 모아 7만 원 상품권을 받았는데 그걸 혼자 챙기며 입을 쓱 닦기도 하고. 자기 아이를 셔틀에서 대신 받아 달라고 늦으니 저녁까지 먹여달란 부탁도 빈번히 했다. 무엇보다 그녀가 참을 수 없었던 건 함께 동네를 산책하자 해놓고 자기가 키우는 개, 알렉산더를 그녀에게 떠넘긴 채 한 시간 넘게 다른 이와 통화하는 그녀를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알렉산더는 똥도 푸지게 쌌는데 어쩌다 보니 매번 그녀가 똥까지 치웠다.

  그녀는 병원 사모님의 집으로 초대받았던 날을 떠올렸다. 부내 풍기는 집을 보고 동경의 반짝이던 그 눈빛. 그게 화근이었다고. 그녀가 진짜 사모님을 한눈에 알아보았 듯 그도 입맛에 딱 맞는 시녀를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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