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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무게는 서로 달라서

갈치구이 전쟁 편

by 이지속

결혼 후 지속은 엄마가 보고픈 날이 많았다. 원이가 이유 없이 두발을 쪽쪽 뻗으며 울어댈 때도 그랬고 병히가 등을 돌린 채 코를 골며 잠들었을 때도 그랬다. 특히 시댁에 가서 식사할 때 엄마가 보고 싶었는데, 시어머니는 지속에겐 김치나 나물 같은 반찬을 권하며 손에 가깝게 놓아주고 고기나 전복구이 같은 반찬은 손이 안 닿는 먼 곳에 두었다. 한두 번은 코앞에 놓인 반찬으로만 밥을 먹다 가면을 벗은 뒤엔 다 들리는 소리로 나도 전복 좀 먹자, 나도 고기 좀 먹자. 왜 이렇게 멀어하며 팔을 쭉 뻗어 맛난 반찬들을 사수했다. 지속이 그렇게 나오자 시어머니도 머리를 썼다. 두툼한 갈치를 구워 제일 살 많은 부분을 시아버지에게, 그다음 크기는 병히에게 그다음은 자신의 앞접시에 놓더니 지속에게는 살이 없는 삐쩍 골은 꼬리 부분을 담아주는 것이 아닌가! 신랑 접시와 바꾸려는데 눈치 없는 병히가 이미 갈치를 해체해 와구와구 먹고 있는 바람에 못 바꾸고 아예 갈치 구이가 놓인 접시를 병히에게 통째로 줘버리며 먹지 않았다. 두 여자의 살벌한 기싸움이 식탁 위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지속은 식사 때마다 자신은 이곳에서 객식구 혹은 불청객이란 사실을 체감했다.

지속은 식사 후 항상 상을 치우고 설거지까지 했는데 일을 마무리하고 쉬려 하면 시어머니는 통과일을 과도와 함께 쟁반에 두곤 앉아있는 지속 앞으로 밀었다. 과일을 깎으란 뜻이었다. 지속은 시댁에서 딸도 아니고 며느리도 아닌 종년이었다.

그런 기 빨리는 시댁 방문을 하고 나면 엄마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집에서 맛있는 반찬은 늘 지속 앞에 놓였다. 엄마는 설거지를 시키는 일도 과일을 깎으라고 과도를 쥐어준 적도 없었다. 진짜 딸이면 그렇게 대하는 게 맞았다. 딸 같은 며느리가 아양을 떨며 온갖 잡일을 군말 없이 하는 건 시어머니의 로망일 뿐.

지속은 진짜 가족이 그리웠다. 병히와 결혼하며 출가했지만 책임과 도리만 생겼을 뿐 병히와 이룬 가정은 안락한 울타리는 아니었다. 언제나 우는 지속을 아무것도 묻지 않고 포근히 안아주던 엄마의 품, 그 온기가 그리웠다.

사랑의 무게가 달라 엄마가 지속을 바라볼 땐 지속이 딴 곳을 봤고 지속이 엄마를 바라볼 땐 엄마는 지속과 함께 타고 있던 시소에서 내렸다. 엄마가 앉던 자리에 병히가 앉았는데 무게가 똑같아 시소가 재밌지 않았다. 엄마는 어디로 갔지? 엄마는 멀리서 그네를 타고 있었다. 지속은 시소에서 내려 엄마와 그네를 타고 싶었다. 지속이 내리려 엉덩이를 들썩이자 엄마는 다시 앉으라고 이리 오지 말라고 손짓했다. 그러고 보니 지속은 원이를 업고 있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시 시소에 병히 앞에 앉고 말았다.

지속은 결혼 후에야 엄마의 사랑을 깨달았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시부모를 만나고서야 엄마의 사랑을 깨달았다는 사실이 좀 슬펐다. 시부모의 생신상을 차리며 지속은 아빠, 엄마에게는 이런 음식을 대접한 적이 없었다는 걸, 시어머니와 여름휴가를 보낼 때도 이곳에 엄마와 왔더라면 하고 일상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를 생각했다.

병히 때문에 억지로 꾸역꾸역 맺어진 관계의 사람들을 지속 또한 사랑하지 않았다. 본품도 막상 사서 써보니 별로인데 함께 딸려온 사은품은 정말이지..... 할많하않.

반품을 부르는데 기한이 지나 어쩔 수 없이 떠안은 실패한 쇼핑을 어떻게 극복하나 지속은 머리를 굴렸다. 그냥 확 중고로 팔아버릴까? 내놔봤자 사갈 사람이 없을 거 같은데?

지속은 엄마에게 갈치 사건을 이르자 엄마는 고향에 오면 통 갈치를 구워 모조리 다 줄 테니 마음을 풀라고 했다. 엄마의 말에 속상함이 사르르 풀렸다. 한 달 뒤 병히와 친정에 갔는데 식사 때 엄마가 약속대로 두툼한 갈치 한토막을 접시에 담아 지속에게 주고 병히는 그보다 작은 한토막을 담아 줬다. 그 모습에 지속은 눈을 반짝이며 좋아했다. 복수는 언제나 짜릿하고 신나는 법. 지속은 병히에게 이제 내 기분을 알겠냐고 이것이 바로 역지사지라 말했다. 그러자 병히가

"역지사지? 뭐가? 갈치구이 맛있다. 간이 딱이네"

하더니 프로 발골러의 면모를 보이며 밥 한 그릇을 뚝딱했다. 맛있게 잘 먹었다며 기분까지 좋아 보였다. 병히는 뭐가 뭔지 몰랐다. 복수도 상대가 복수라 느껴야 통쾌한데. 이건 뭐... 병히의 타고난 둔함이 원망스러웠지만 한편으론 부러웠다. 지속은 시들해져 갈치를 깨작이다 남기고 말았다.

언제 어디서 무엇으로 복수를 해야 저 곰탱이가 내상을 입을지 지속은 엄마가 깎아준 사과를 아작아작 씹으며 복수의 칼날을 빠득빠득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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