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본품은 어디 가고 매번 샘플만

시어머니의 선물 편

by 이지속

자고로 선물이란 무엇인가? 정성으로 상대를 위하는 마음을 담아 주는 것이 아니었나? 시어머니가 지속에게 준 선물은 선물이 아니었다.

병히와 연애시절 유럽여행을 다녀온 병히모가 지속에게 주라며 기념품을 줬는데 손가락 한마디 크기의 귀걸이 보관함이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바닥에 2유로라는 가격표까지 붙어있었다. 지속은 이게 뭐지? 결혼 이야기가 오고 가는 아들 여자 친구한테 면세점 립스틱도 아니고 이런 걸 선물이라고 주다니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병히는 지속의 속도 모르고 귀걸이를 보관하면 되겠다며 사람 좋게 웃었다. 지속은 웃느라 반달이 된 병히의 두 눈을 손가락으로 찌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2유로짜리 선물은 시작이었다. 결혼 후 시어머니는 지속에게 이상한 선물들을 생색내며 줬는데 꽃무늬 고무줄 치마를 입으라고 주는 것이 아닌가! 본인 옷은 빈폴 레이디나 헤지스에서만 사는 걸 아는데 기차역에서 지속을 생각하며 만원에 샀다며 주는데 차마 감사하단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한번 입어보라고 종용하여 입으니 하... 그냥 그랬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옷이 주인을 만났다며 박수까지 쳤다. 지속은 치마를 받아와 구석에 처박아뒀다가 대청소를 할 때 버렸다.

한 번은 은밀히 지속을 부르더니 십 년 전 호주로 여행을 다녀오며 산 명품백을 선물이라고 줬다. 구찌백이긴 한데 할머니 가방 같았다. 요즘 핫한 디자인도 아니고 시어머니도 안 들고 다니는 그런 가방이었다. 지속은 엉겁결에 가방을 받아 들었다. 병히가 지속이가 들기엔 올드하다고 한마디 했는데 시어머니는 네가 패션을 아냐며 지속이가 드니 가방이 산다고 말씀하셨다. 맞는 소리였다. 가방은 사는데 그 가방을 든 지속은 후져 보였다. 구찌백도 안방 옷장에 처박아두고 한 번을 들고나간 적이 없었다.

늘 백화점에서 고급 라인의 화장품을 쓰는 시어머니는 본품은 자신이 쓰고 얻어온 샘플 한 보따리를 지속에게 써보라고 줬다. 사은품으로 얻은 파우치도 예쁘지 않냐며 지속에게 줬는데 뭐지 싶었다. 피부가 예민해서 아무거나 못 쓰는데 받아온 샘플은 고대로 지속의 집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이쯤이면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지속에게 버리는 것이었다. 원이의 돌 때 시부모가 원이에게 금 스무 돈을 선물로 줬는데 감사했다. 딱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 텐데 시어머니가 지속에게 선물이라고 꾸깃하게 포장된 물건을 건넸는데 지속의 가슴이 마구 뛰었다. 이건 또 무슨 똥일까. 양말 두 켤레였다. 그것도 엄청 큰 하트가 마구잡이로 새겨져 도저히 어디신고 나서지 못할 그런 양말.

이거 지금 멕이는 건가? 지속은 언제쯤 샘플이 아닌 화장품 본품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거저 얻은 샘플과 양말 쪼가리가 지속이 시가에서 받는 취급이었기에 서럽기도 했다. 선의를 가지고 주시는 거라 믿었기에 미워하는 감정이나 황당함이 느껴질 때면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다.

여기서 가만히 있으면 노빠꾸 지속이가 아니지. 지속도 시어머니에게 마음을 담은 선물을 드리기 시작했다. 예쁜 쇼핑백에 과자를 담아서 드리니, 이게 뭐야 반기며 꺼내보곤 실망하는 시어머니 표정이 재미있었다. 에뛰드하우스에서 나온 초콜릿 모양 쉐도우(8천 원짜리)를 선물로 드리니 떨떠름하게 고맙다 하셨는데 지속은 자꾸 웃음이 나왔다. 그리곤 깨달았다!

싸구려 선물을 받고 실망하는 얼굴이 웃기고 재밌다는 사실을. 그래서 시어머니가 그렇게 지속에게 선물을 했던 것이었다. 본인도 몇 번 당하더니 더는 지속에게 선물을 주지 않았다. 마치 휴전을 선언하듯 지속을 백화점으로 데려가 예쁜 신상 봄옷을 한벌 쫙 빼 입혀주셨다. 지속은 정말 기분이 날아갈 듯 신났다.

요즘은 쓰레기를 안 주시는데 한 번씩 예전 일이 떠오르면 웃기다. 지속의 시어머니는 참 재밌는 분이시다. 하. 하. 하. 하.

keyword
이전 10화사랑의 무게는 서로 달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