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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주영 Nov 21. 2020

요즘 댓글을 많이 읽는다.

2020년 8월 22일 오전 01:56

무언가를 보고, 내 나름의 생각을 하기도 지겹고 내 나름의 느낌을 표현하기도 귀찮아서, 남의 생각과 느낌을 대충 읽고 마음에 드는 것에 좋아요를 누른다. 그걸로 느끼는 일도 사고하는 일도 퉁친다. 일이 지겨우니, 일할 때 말고 일은 하기 싫다. 속칭 생각과 느낌을 외주 주는 일이다.


나만 그렇진 않을 테다. 어쩌면 모두들 그런 것 같고. 만사가 절망이라 그렇다. 나름의 생각을 하면 어둡고 비관적이고 오히려 힘들다. 대단한 비판정신, 나름의 주관과 시대정신을 수립하려 할수록 아직 모르는 게 많고 감정적으로도 미숙하다는 것만 느낀다. 낯 뜨겁다. 자기 연민이 너무 쪽팔리다. 뒤통수는 서늘하다. 그러다 보면 직접 느끼고 스스로 생각하는 일이 리스크가 크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남의 삶을 편집하는 걸 보는 일이, 남의 삶에 대한 평가에 적당히 좋아요를 누르는 일이 제일 안전하다.


실수와 실패가 많은 삶이어도 좋으련만, 요즘 하루는 최대의 모험을 집 밖에서 찾기도 힘들고. 이직도 공부도, 한다고 치면 그게 모험인지 타협인지 알 수 없고. 그러다 보면 오늘은 그 무엇도 새롭거나 대단찮아도 되겠지, 하고. 좀 쉬어도 되지 않나, 하고. 해서 적당히 뭔가 쳐다보다 누르다 잠든다. 그렇게 기분을 남에게 맡긴 지 어느새 몇 개월이다.


사람이, 굳이 태어났다면 뭐든 흔적은 남겨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날 닮은 아이든 내 사유의 결과물이든, 작품이든 재물이든. 누군가 탄성을 낼 재밌는 사진이든.


그럼 대체 이 삶이 남기는 근사한 건 무얼까. 혹시 어디서 좋아요 천 개 받은 댓글 하나에 머무는 건가. 세상에, 그건 죽어서 넋두리만 남는 것보다 더 무섭지 않나. 하지만 난 뭘 남기고 싶지.


그래서 새삼 생각하는 거지만 난 항상 도자기를 빚는 사람이나 의자를 만드는 사람들이 참 부러웠다. 그들의 하루 끝에는 작품이 없을지라도 깨진 마음 대신 깨진 조각이나 남은 재료들이 있으리라. 물리적으로 볼 수 있는 하루의 맺음은 얼마나 아름답고 위로가 될까.


하지만 일단은 스마트폰 액정 위에만 매일 손을 얹는다. 언젠가, 이 마음이 못난 도자기라도 될 날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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