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12일 금요일
친한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급하게 한국에 나가게 되었다고, 당장 다음날이 출국인데 이제야 짐을 싸느라 정신없다며, 혼자서 초등학생 첫째와 두 돌도 안 된 둘째를 데리고 뉴욕에서 한국까지 14시간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도착해서는 또 2주간 자가 격리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1년 반 전, 남편과 아이 둘을 데리고 뉴욕행 비행기를 탔던 그때가 떠올랐다.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찼던 그 순간. 팬데믹과 락다운이 펼쳐질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 순간.
유일하게 우려했던 14시간의 비행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비행기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 풍경과 군것질거리, 아이패드의 조합은 6살, 8살 아이들이 14시간을 버티기에 충분했다.
아직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되지 않는 돌쟁이 아이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는 건 나의 경험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겠지.... 잘 다녀오라고 안부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핸드폰 화면에 떠 있는 오늘 날짜가 눈에 들어왔다.
어? 오늘 언니 생일이네…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오기도 했고 내 생일과 가까워 언니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생일인데 급하게 출국 준비하느라 밥도 못 챙겨 먹고 있겠구나….
간단하게 끼니라도 챙겨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어차피 나도 오늘 점심은 사 먹을 작정이었다. 팬데믹 이후 나의 투베드 스위트 홈이 남편의 오피스와 아이들의 클래스룸이 돼버린 이후 일 년 넘게 삼시 세끼를 챙기다 보니 사다 먹는 일이 잦아졌다.
날씨 탓인가… 오늘 몸이 좀 무겁네…
초등학생 두 남자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피로감은 언제 어디서든 마주할 수 있는 일상이므로 대수롭지 않았다.
뉴저지 포트리에 내가 좋아하는 반찬 가게로 향했다. 음식이 정갈하고 맛있지만 너무 비싸서 자주 이용하지는 못하는 곳. 김밥 한 줄이 한국돈으로 만원 정도 하니 자주 못 갈만 하다. 마침 가게에 들른 날이 한국의 설날이라 유난히 맛있는 음식들이 많았다. 김밥과 전, 가자미 찜을 사고 바로 은행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환전할 시간도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당장 공항에 내려서 쓸 여비를 한국돈으로 챙겨주고 싶었다. 물론 공항에도 환전소가 있지만 이민 가방과 애 둘을 끼고 무슨 일이든 쉽겠는가....
환전을 마치고 언니가 사는 아파트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미리 문 앞에 나와있는 언니에게 창문으로 음식과 환전한 여비를 건네고 작별 인사를 했다.
고마워… 이런 것까지 챙기고.. 너 진짜 복 받을 거야…
복 받을 거야… 복 받을 거야… 인생이라는 극 중 복선이었을까. 이틀 뒤 나는 코비드-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날 저녁, 아이들의 저녁을 챙겨주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목이 왜 칼칼하지? 목감기가 오려나.......
목이 약간 잠기고 답답한 기분이 들어서 저녁 약속이 있어 밖에 나간 남편에게 톡을 보냈다.
여보, 집에 올 때 목캔디 좀 사다 줘. 목이 조금 불편한 것 같아….”
잠시 뒤 집에 돌아온 남편은 주머니에서 종류별로 사 온 목캔디를 내밀었다. 많이도 사 왔다.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골라먹는 재미가 있게 여러 가지 맛으로 사다 주는 세심함을 보라며 자화자찬이다.
잠깐 엔도르핀이 돌았던 것일까. 목 상태가 금세 나아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