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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선생 Dec 21. 2023

끌어당김의 법칙과 내맡김의 차이

현실창조의 이 두가지 방법이 어떻게 다른가요? 

지난 글에서 끌어당김과 내맡김으로 하는 현실 창조에 대해 소개하며 이 두 방법이 작용하는 핵심 원리는 같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현존이 그 핵심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두 방식이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무엇"을 끌어당기느냐의 차이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조금 다르게 표현하자면 누가 끌어당기느냐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에서는 끌어당기는 대상을 중심으로 현실을 창조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 나는 명예를 얻고 싶다 등등 내가 원하는 것을 정해두고 그것이 이루어진 현실을 끌어당기는 데에 초점을 둡니다. 


Matheus Bertelli @ www.pexels.com


끌어당김의 한계가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정말 나를 위한 것인가 알지 못하는 작은 나의 마음으로 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원하고 명예를 원하고 더 좋은 외적 상황을 원합니다. 그런 것들이 나에게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얻는다고 해서 행복해지느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예전 글에서 말씀드린 대로 행복 또한 습관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행복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만 하면 행복할 거라는 마음으로 산다면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 후에도 행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실 이루려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면 이룬 후에도 불행할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하는 현실 창조는 그 어떤 결과를 당겨오더라도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이 함께 당겨오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끌어당김을 하고 싶어하는 이유부터가 부족함, 만족하지 못함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거기에 이 방법이 성공하기 어렵고 이루어지더라도 한계가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는 잘 끌어당겨지지 않을뿐더러 끌어당겨지더라도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행복과 평화와 사랑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결과를 낳기 쉽습니다. 


그래서 끌어당김의 법칙을 사용하여 현실을 창조하고 싶다면 먼저 내가 무엇을 끌어당기고 싶어하는지를 돌아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내가 왜 이것을 원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고 깊이 사유하는 겁니다. 돈을 원한다면 돈이 무엇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가. 나는 왜 이것이 필요하다 생각하는가. 이것을 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원하는 이유가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서나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면 돈이 생긴다고 그런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겁니다. 돈이 있어도 인정받지 않을 때 더 큰 좌절이 생길 것이고 돈을 다시 잃게 될까 더 큰 불안이 생길 것입니다. 


돈을 원하는 이유가 자유롭고 싶어서라고 한다면 자유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사유해 봅니다. 자유가 어떻게 주어지는 지도 사유해 봅니다. 과연 돈만 있으면 진정 자유로워질지 생각해 봅니다. 원하는 것을 다 갖추어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에 크게 구속받지 않는 마음의 상태일 때 비로소 진정 자유로워진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사유해 봅니다. 나의 생각이 나를 어떻게 구속하고 있는지 깊이 사유해 봅니다. 


Kouroshi Quaffari @ www.pexels.com



내맡김으로 하는 현실 창조는 끌어당김과는 반대 방향으로 이루어집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이끌어가는 대로 협조하며 창조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삶을 따라간다는 것은 내면의 깊은 곳에서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나의 본래 본성의 이끎을 따라간다는 것과 같은 뜻이 됩니다. 


작은 나의 생각으로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깊은 본연의 느낌이 삶을 이끌어가도록 삶의 큰 흐름에 맡기고 살아갑니다. 그 느낌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나를 통해서 일어나도록 나의 마음을 열어두는 느낌입니다. 그렇게 창조하는 과정에는 억지로 하는 때의 힘이 들지 않습니다. 힘이 빠지고 편안합니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까 이루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지 않습니다. 이루어지지 않아도 이미 만족하고 감사한 마음이기 때문에 이루어지면 좋고 행복하고 감사하지만 결과에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 창조하게 될 때 우리는 삶의 지혜로움에 감탄하게 됩니다. 내가 알지 못했던 방식으로 내가 원하던 것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목도하게 됩니다.


제주에 오기 전 남편과 저는 경제적인 자유를 갈망했습니다. 저희에게 돈은 자유를 의미했습니다.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있는 자유. 당시의 저는 마음이 크게 열린 이후 물건이나 재산을 소유하는 것에 대한 집착은 많이 사라졌으나 자유와 평화를 원하는 마음은 오히려 조금 더 늘어난 상태였습니다.마음껏 명상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시간을 갖기를 갈망했습니다. 직장에서 일하고 어린아이들을 키우면서 늘 바쁜 것이 싫었습니다. 직장을 다닐 뿐만 아니라 세를 주는 집을 포함하여 총 네 채의 집을 관리하는 남편은 매일 스트레스를 호소했습니다.


남편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나타났을 때 우리는 이것이 경제적인 자유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정부 프로젝트를 맡아서 하는 이 사업을 잘 진행하여 한 몇 년만 열심히 일하면 경제적인 자유가 이루어질 것 같았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한 남편을 도와 일 년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저는 매일매일 회사를 나가고, 아이들 저녁을 챙긴 후, 밤에는 늦은 시간까지 혼자 카페에 가서 일하는 일상을 반복했습니다. 남편은 하루 18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유일한 휴식시간은 저녁식사 후 아이들이 8시 반에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놀고 있는 옆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주말에도 남편이 쉬지 않고 일하는 동안 저는 아이들을 어린이 박물관이라고, 한국의 키즈카페 같은 곳에 넣어두고 그곳의 휴게실 테이블에서 일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챙겨주지 못해도 나름 잘 자라주고 있는 아이들에게 감사한 마음뿐이었습니다. 미안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면서도 힘들다는 생각은 안 했습니다. 몇 년만 당겨서 열심히 일해서 경제적인 자유를 이루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게다가 현존하며 일하다 보니 크게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현존하며 몰입을 하고 있으면 카페의 문이 닫을 시간이 온 지도 모르고 일하는 때가 많았습니다. 어렵다는 생각이 끼어들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놀랐습니다. 그렇게 몰입해서 열심히 일한 프로젝트가 1년 후 무산 되었을 때 저는 내심 무척 놀랐습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의 원리를 이미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비전에 머물렀고, 이미 다 이룬 충만한 느낌도 느끼고 있었으며, 현존하는 마음으로 몰입하여 일해서 나온 결과물도 초반의 시행착오를 겪어나가면서 날이 갈수록 훌륭해지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좋은 결과가 나올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수주했던 정부 기관의 내부 정책 변화로 인해 프로젝트 자체가 중단되는 일이 발생하며 남편의 회사가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사실 돌이켜 보면 당시에도 문득문득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당시 직장이 운전해서 한 시간 거리에 있었는데 운전하며 출퇴근하는 시간이 너무나도 귀했던 기억이 납니다. 직장이 조금 더 멀어도 좋겠다했습니다. 오로지 혼자 편히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자유와 여유를 갈망하는 마음이 컸던 시절입니다. 


참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남편 회사의 프로젝트가 무산이 되고 이제 남편이 실업자가 될 위기에 처했는데 오히려 마음이 편안한 것이었습니다. 꽉 뭉쳐 닫혀 있던 마음이 열리면서 잡고 있던 것이 편안하게 내려놓아지는 것이었습니다. 내면 깊은 곳에서 다 괜찮다는 느낌이 그 열린 틈을 통해 올라왔습니다. 이 일이 진행되지 않은 것에도 어떤 이유가 있을 것 같은 직감과 함께 호기심마저 올라왔습니다. 명상을 하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열린 마음으로 앞으로 나타나는 삶의 신호들을 맞이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미리 계획되어 있던 3주짜리 한국 여행이 떠올랐습니다. 원래는 남편이 프로젝트 1년 마무리를 하고 회사의 다음 연도 계획을 세우는 동안 저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에 잠시 다녀올 예정이었습니다. . 


결국 편안한 마음에 드러난 신호를 따라 제가 휴직을 했고 남편과 함께 온 가족이 제주에 오게 됩니다. 그렇게 3주 한국 여행이 5개월 제주 살이로 계획이 변경되었고,  그 후 제주 생활이 1년으로 연장이 되고 다시 2년으로 한번 더 연장 되었고, 그 후 직장을 그만두면서 지금은 삶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Admiral General @ www.pexels.com


제주에 온 지 1년이 넘었을 때 어느 날 저는 문득 깨닫게 됩니다. 제가 바랬던 모든 것들이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을. 내가 생각했던 방향은 아니지만 내가 원했던 모든 것들을 이미 삶이 친절하게도 모두 다 이루어주었다는 것을. 


제주에 오고부터 저는 매일매일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누렸습니다. 아이들과 매일 함께 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나타났습니다. 하고 싶은 명상도 마음껏 하고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유튜브로 좋아하는 고양이 비디오를 실컷 보는 나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금전적으로도 예전보다 여유로워졌습니다. 워싱턴 디씨에서 살 때보다 생활비가 훨씬 덜 들었고 무거운 모기지의 부담이 없어지고 아이들 어린이집, 방과후 베이비시터 비용이 크게 줄면서 적은 돈으로도 풍요로움을 만끽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제주에는 소박하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지천에 널렸습니다. 집앞 동문시장에서 장을 볼 때는 넉넉하게 담아주시는 채소가게 할머니 인심에 마음이 크게 풍요로워지곤 했습니다. 


당시에 그 느낌에 대해 쓴 글이 여기에 있습니다. 


삶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가장 빠르고 가장 현명한 길을. 내가 아는 방식으로가 아닌, 예전의 내가 전혀 알지 못했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간절히 원했던 자유를 이루어 주었습니다. 


위의 글을 쓴 이후로도 삶은 계속해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외적 여건과 마음마저 자유로워질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삶이 가장 쉽고 자연스러운 길을 이미 알고서 인자하고 자비롭게 이끌어주고 있는 느낌입니다. 앞으로 어떤 변화든 일어날 수도 있고 예전에 겪었던 것처럼 어려워 보이는 일도 생길 수 있겠지만 그 일들을 통해 우리가 성장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되도록 차근차근 안내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고 있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믿음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삶이 이끌어 주는 방식의 또 다른 특징은 그 펼쳐지는 길이 작은 나 하나만의 소망을 들어주는 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끌어주는 그 길이 모두를 위한 길인 느낌입니다. 


예전 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미국을 떠나면서 세를 주고 있던 집들을 사고 싶다고 나타난 사람들에게 모두 팔았었습니다. 그때 낮은 이자율로 집을 샀던 세입자들이 지금은 좋아하는 집에서 오랫동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여건이 주어졌습니다. 지난 몇 년간 미국 집값이 많이 올랐고 모기지 이자율도 크게 올라서 지금은 사고 싶어도 사지 못했을 집입니다. 당시에 집을 샀던 세입자들이 지금 만족하며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그들에게만 좋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집을 판 후 은행 빚을 정리하고 남은 돈을 투자를 했던 저희는 그 수익으로 앞으로도 당분간일을 하지 않고도 편히 지낼 수 있는 경제적인 자유를 얻었습니다. 작은 나의 욕심과 두려움을 넘어서서 삶이 주는 신호를 따라 평안하고 자비로운느낌을 따랐던 것이 관련된 모두를 위한 최선의 결정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더 늦기 전에 암을 발견해서 치료를 받고 회복한 남편을 보면 온 마음으로 삶에 감사하게 됩니다. 그 친절하고 자비로움에 감탄하게 됩니다. 미국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며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남편은 제주에 있는 동안 수술을 받고 편히 휴식하며 치유되었습니다. 


저와 남편이 휴식하고 치유되는 동안 전 세계에 코로나가 창궐하는 중에도 아이들은 제주의 작은 학교를 다니며 행복했습니다. 친구들을 사귀고 어울리면서 그렇게 어렵게 여겨졌던 한국어도 아주 쉽게 배웠습니다. 그렇게 애써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일들이 자연스럽게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제주에 있는 동안 계속해서 제가 알지 못했던 방식으로 원하던 것들이 이루어지는 일을 목도했습니다. 심지어 원하는 줄도 몰랐던 것들이 나타나서 이루어 진 후에야 그것이 우리가 원했던 것이었음을 알게 되는 때마저도 있었습니다. 


모두를 위한 길을 이미 알고 있는 삶이 우리를 사랑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내맡김으로 하는 창조는 바로 그런 삶을 믿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작은 내가 고집하는 방식을 내려놓고, 힘을 빼고 거대한 흐름에 맡기고 그저 감사하며, 현존하며, 사랑을 나누며 평화로운 마음에 드러나는 신호를 따라가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일상에서 일어나는 기적들을 목도하며 소박한 일에 감탄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내맡김을 통한 현실 창조의 길입니다. 힘을 빼고 원하는 삶을 창조하게 되는 기적같은 길입니다. 



Asad Photo Maldives @ www.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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