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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선생 Jan 14. 2024

워싱턴 정토회와의 인연

미주 워싱턴 정토회

지난 글 <정토회를 만나다>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인터넷의 법회 일정과 주소를 보고 무작정 찾아간 메릴랜드 외곽의 벨츠빌에 위치한 워싱턴 정토회 법당은 제가 머릿속으로 기대했던 절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채소를 가꾸는 정원이 한쪽에 자리 잡은 넓은 앞 마당의 너머에는 작은 고속도로가 하나 인접해 있어서 차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건물은 일반 가정집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산새소리와 고즈넉한 절의 모습을 기대했던 마음이 조용한 느낌을 찾아 법당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으나 그런 느낌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저 찻길 옆의 일반 가정집 모양입니다.


하지만 법당에 들어서자마자 절의 모습을 기대했던 마음이 금세 내려놓아졌습니다. 신발장으로 보이는 곳에 신발을 벗어놓고 성큼 법당 안으로 처음 들어가는 내 마음이 제 집에 온 것처럼 편안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당연하게 정토회는 제게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저 가는 곳. 당연히 때가 되고 기회가 되면 가는 곳. 어떤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특별히 꼬집어 이야기할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닌, 그저 가는 곳. 그저 계속 가게 되는 곳. 


출처: Junto USA Google Map



수행 실천 공동체로 운영되는 워싱턴 정토회는 겉으로 보는 것만큼이나 내실도 소박했습니다. 법당에는 불상 사진이 한 장 걸려있고 한쪽 구석에 쌓여있는 방석들과 가부좌가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맨 뒷줄의 의자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소박한 그 자리에 큰 마음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워싱턴 디씨의 지리적인 특성상 법륜스님의 미주 활동을 보좌하는 주축들이 상주하며 수행하고 봉사하는 이곳에선 일을 수행 삼으라는 법륜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적은 인원으로도 믿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일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나와 남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이바지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인생을 걸고 헌신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계속 자연스럽게 정토회를 다닐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습니다. 사실 당시에 직장에 다니며 어린아이들을 돌보면서 힘들어하는 남편까지 챙겨야 하는 제가 주말에 저 혼자서 법회에 가겠다고 서너 시간 집을 비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마침 얼마 전부터 남편이 일요일 오전마다 제게 잠시 휴식시간도 줄 겸 아이들과 함께 운동을 하겠다고 긴 산책과 놀이터 나들이를 시작한 터였습니다.그 시간을 활용해서 정토회 법회에 다녀오겠다고 하고 매주 일요일 정토회 법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법회에 참가하기 시작하면서 시간적 여유가 조금 더 생겼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법회를 약 일 년쯤 다닌 후에는 수요일 저녁에 하는 불교대학을 다니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품자마자 남편이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일요일마다 법회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말에는 가족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남편의 장단에 맞추어 아주 쉽게 일요 법회 대신 수요일 저녁에 저 혼자서 불교대학에 가기로 타협을 보았습니다. 손대지 않고 코푸는 일이 계속되었습니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정토회에 가서 법문을 듣고 나누기를 하고 천일 결사에도 번역 봉사에도 불교 대학에도 참가하는 나날들이 이어졌습니다. 


법문을 듣고 있으면 그저 좋았습니다. 법륜스님의 혜안이 담긴 법문의 내용도 좋았지만 차분히 앉아 법문을 듣고 있는 그 시간 자체가 좋았습니다. 법회 시작 전에 반야심경을 함께 낭독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법륜스님의 법문 듣는 것이 명상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법문을 듣고 나면 나누기할 때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그저 "지금 마음이 편안합니다." 한마디로 끝내는 날도 있었습니다.


이제껏 혼자 마음 수행을 해 왔던터라 도반이 있는 것도 참 좋았습니다. 혼자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고 마음공부에 대해 허심탄외하게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또 좋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수행은 결국 스스로를 믿고 나아가야 함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함께 하지만 또 혼자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여느 집단에서나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가족에 대해서 남에 대해서 분별하는 마음은 여전히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경험을 아우르는 감사함과 평화가 늘 함께 있어 제가 지금 있어야 할 곳에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도 정토회에서 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일요일이 되면 엄마를 따라 정토회 법회에 가고 싶어 했습니다. 인연에 깊이 감사하고 감동하는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워싱턴 정토회 법당에서 사귄 귀한 친구와 아이들이 제주로 떠나기 직전에 찍은 사진


그렇게 그냥 마음의 이끌림을 따라 8개월 남짓 정토회 법회를 다녔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머릿속에서 의문이 일어났습니다. 그 의문이 자꾸 반복되어 일어나다가 어느 순간 제 머리를 꽉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질문에 답을 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을 즈음 법륜 스님의 워싱턴 디씨 지역 방문 계획을 들었습니다. 왠지 이번 방문에서 질문에 답을 구하게 될 것 같았습니다. 


사실 이번에는 즉문즉설 행사 진행요원으로 봉사를 할 예정이었습니다. 때문에 제가 질문을 할 기회는 없을 터였습니다. 공개적으로 질문하기에도 적절하지 않다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저의 질문에 답이 구해질 것 같은 겁니다. 꼭 스님께 여쭙지 않더라도 이 질문의 답이 드러날 것 같은 겁니다. 


결국 예감은 적중합니다.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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