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산일기
지난 여행의 마무리는 별 것이 없어 한 편의 글로 추가하기도 애매했고 연말 맞이 급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남편은 여행 이후 즉시 지방 한 달 출장을 갔고 새해를 맞아 어린이집에 장염이 돌아 정초부터 반반차를 골고루 써 댄 바쁜 나날들을 보낸 육아맘. 늦은 일기를 씁니다.
나름 여러 번의 M&A를 통해 이제 대기업의 반열에 오를만도 하겠건만 아직 현실은 중소기업이라 단체연차도 닥쳐서 공지하는 센스를 보여주신다. 12/29이 연휴라는 긴급 뉴스에 남편은 이 기회가 아깝다며 여행을 가자고 했다. 남편이 화두를 던지면 늘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기는 건 나이기에 연말도 무지하게 바쁘다.
내가 사랑하는 스카이스캐너로 일정을 정해놓고 행선지는 anywhere로 검색했더니 촉박한 일정에 싼 항공편은 없었지믄 대만과 오사카가 그나마 가격이 접근할만 했고 겨울이니 대만으로 가볼까 했으나 숙소가 200만원대밖에 남지 않아 가뿐히 포기하고 또 다시 일본 여행을 가기로 한다. 글을 읽는 사람들은 지겨우려나? 그래도 세 명 다 역마살이 있는 우리 가족은 하나도 안 지겹고 또 설렌다. ㅎㅎ 이번 여행은 오로지 아기를 위한 일정이다.
12/29
14:05-16:00 진에어 제 2터미널
사람이 많을 것이란 얘기에 여유롭게 공항에 도착했으나 2터미널은 매우 한산해서 시간이 많이 남았다. 여느때처럼 라운지에서 식사를 하고 음료도 마시고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키즈존에 가서 사진도 찍고 구경도 하고 놀았다. 뽀로로존은 기존에 가봤던 곳이었는데 아기상어가 있는 곳에 타요존이 있는 건 처음 봤다. 그간 여행을 하도 다녔던 탓에 비행기만 타면 착하게 잠이 들어준다. 다만 첫 좌석이 생겼으나 안아야 자는 탓에 자릿값이 아깝다 싶네.
17:00 하루카 타기 17:16, 17:46 시간대 있음. 47분 소요
생각보다 짐이 나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나름 여행객이 많았던 모양이다.
검색한 결과 간사이공항 1터미널 2층 jr ticket office(파란색 창구이용) 기계에서 교환이 가능하다고 했으나 오피스에서만 교환이 가능하다고 했다. 꽤 줄이 길어 15분 정도 까먹은 것 같다. 성질급한 세 식구는 17:13에 3분을 남겨두고 빛처럼 날아 16분 좌석에 안착했다. 아기는 슬슬 지겹다. 칭얼대기 시작한다. 역시 아기가 있는 집의 수준에는 후코콰가 최고다. 오사카역은 2017년 기준 매일 약 230만명을 실어나른다고 하는데 그 숫자의 규모에 도착하기도 전에 걱정이 한 짐이다.
호텔이 역 근처 도보 10분 거리에 있다고 하는데 워낙 오사카역이 크고 거미줄처럼 엮여 있는데다 출구 번호가 있지 않아 구글맵으로도 길을 찾기 어려워 일단 나가서 길을 가다보니 조금 시간이 걸렸다. 오사카는 역시나 큰 도시다. 높은 빌딩 숲으로 둘러쌓여 어디가 어디인지 알기가 어렵다.
호텔은 우려했던 것보다는 좋은 위치에 있었다. 한 번 찾기가 어렵지 두번째부터는 다니기 편했다. 특히 jr 타기에는 기가 막힌 장소이다. 근처에 편의점이 없다는게 안타까운 점이었다.
18:00 호텔 체크인
체크인을 하고 내가 숙소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침대 너비를 확인하기 위해 방으로 향했다. 웰컴 드링크 하나 없는 비즈니스 호텔이었지만 그래도 일본치고 이만한 크기의 침대를 제공하는 곳도 드물다. 아기가 굴러도 충분할 만큼의 크기에 소파베드만한 큰 소파도 있었다.
19:00 저녁 오사카역 앞 제3빌딩 지하 2층 부도테이
아님 그냥 역사 슬렁슬렁 다니며 식당 구경하고
한큐백화점에서 선물용 손수건 사기
Enya Umeda 꼬치집에서 맥주한잔 하고 들어가기
경양식 돈까스류를 찾아놓았으나 도저히 어딜 찾아갈 엄두가 안났다. 역시 일본 제 2의 도시 중심역 답게 저녁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맛집은 커녕 일반 식당도 기본 30분은 줄을 서야해서 그냥 아무도 줄서지 않는 곳을 선택해서 있는 메뉴 중에 골랐다.
오차즈케 명란밥에 우동과 고로케와 가라아게, 맥주를 먹었고 추가로 연어알을 시켰다. 삿포로에서의 경험 이후로 아기는 연어알을 엄청 좋아한다. 일본 어느 식당을 가도 대개 쌀밥이 참 맛있다. 흰 쌀밥에 연어알을 올려 밥 한 공기를 거의 다 먹어서 내 밥을 위해 추가로 한 공기를 더 시켜야 했다. 대단한 맛은 아니었지만 여유롭게 허기를 달래기엔 나쁘지 않았다.
한가하게 맥주도 두병씩이나 마시고 요도바시 카메라를 향했다. 일전에 글을 보니 호빵맨이나 유니버셜을 가기 전에 쇼핑을 좀 해 두는 것이 낫다고 한다. 현장의 제품들은 가격이 더 비싸다고.. 요도바시 5층에 아기용품과 게임용품이 있었다. 너무 제품이 많고 다양하니 물건 고르기도 어렵다. 여러 유혹을 지나 아기는 최종 호빵맨 세균맨 인형과 퍼즐, 그리고 코킨짱 도킨짱 가방을 하나 샀다. 아기의 기분이 찢어진다. 얼마나 즐거웠으면 평소보다 많이 걸었을텐데도 지친 기색이 없다.
쇼핑을 마치고 엘레베이터에서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있는데 이유없이 시비를 거는 사람을 만났다. 내가 중학생때부터 일본 여행을 다녔는데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나도 눈싸움으로는 어디 지지 않는데 그 사람 눈을 보니 보통 도라이 눈이 아니라서 이거 진짜 일 내겠다 싶은 느낌에 조금 기싸움을 하다가 먼저 눈을 피했다. 오사카가 혐한도 많고 성향도 드세다는데 한 명 때문에 첫 날의 인상이 좋지는 않아졌다.
쇼핑을 마치고 편의점을 찾아 나섰다. 밤길인데다 초행이라 지도를 찾아 가는데도 길이 어렵다. 숙소로 돌아와 뜨거운 욕조에 몸을 좀 지지고 놀다가 12시가 넘어 늦으막히 잠들었다. 우리 아기는 너무 잠이 없다. 모든 생활을 엄마아빠 패턴에 똑같이 맞추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