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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라 Jul 24. 2021

당당하나 흐름을 깨지 않는다.

조선이 유럽보다 큰 이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중요한 것은 크게, 가운데에 그린다.


석가모니는 인도의 한 왕국에 왕자로 태어납니다. 그는 모든 살아있는 것이 생로병사(태어나고, 죽고, 늙고 병드는 것)의 고통을 겪는 것을 보고, 그 고통을 없애야겠다는 큰 결심을 합니다. 그는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을  버리고 수행하여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됩니다. 부처가 된 그는  열반에 들 때까지(죽을 때까지) 자신의 깨달음을  온 세상에 퍼트립니다. 아래 그림은 그가 인도의 영취산에서 진리를 가르치고 있는 장면입니다.

해인사 영산회상도/조선 영조 5년(1729)

이 그림에서 석가모니는 크고, 가운데에 그려졌습니다.  석가모니가 다른 사람들보다 키가 몇 배가 크지는 않았을 것이며 큰 키로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려고 한 것도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이나 팔부중, 사람들에게 진리를 깨치게 하고 고통을 덜어주는 보살들, 진리를 깨닫기 위해 수행하는 제자들보다 훨씬 크게 그려진 이유는 이 그림의 주제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인물들이 그려졌으나 이 그림을 보는 사람도, 이 그림 속 대부분 인물들의 시선은 가운데 석가모니에게 가 있습니다.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의지가 그림 속에서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 그림의 또 하나의 주제는 가르침을 듣는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의지입니다. 그림 속 작게 그려진 한 명 한 명이 이 그림의 주인공이 됩니다. 이 그림에서 한국 그림의 특징이라고 하는 '여백의 미'가 느껴지시나요? 빈틈없이 빼곡히 채워진 인물들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이 세상에 가득 차 있는 것을 상징합니다.


수월관음도/고려/디 아모레 뮤지움

이 그림은 삶이 너무 힘들 때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나타나 도움을 준다는 관세음보살을 그린 그린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은 그 큰 사랑으로 여러 형태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수월(水月)이란 하늘의 달이 이 세상 모든 물에 비치는 것이니 관세음보살의 사랑이 이 세상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표현한 그림입니다. 이를 상징하기 위해 관세음보살의 뒤쪽에는 달이, 앞쪽에는 연꽃이 피어난 연못이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의 큰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관세음보살이 그림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위압적이지 않게 느껴지며, 관세음보살은 따스한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수월관음도는 위의 영산회상도에 비해 여백이 많지요? 이것은 그림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관세음보살의 시선을 따라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림을 보는 우리는 화면을 가득 채운 관세음보살을 바라보다가 편안하게 자리한 관세음보살의 시선을 따라가 조그맣게 그려진 선재동자를 만나게 됩니다. 선재동자는 세상을 돌아다니며 자신에게 큰 가르침을 줄 스승을 찾아다니는 인물입니다. 선재동자는 조그맣게 그려져 있으나 이 그림을 보는 우리와 함께 관세음보살의 가르침을 듣는 인물로 이 그림의 또 다른 주인공입니다.



당당하나 흐름을 깨지 않는다.

이 지도의 이름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입니다. 조선 태종 2년(1402)에 제작된 세계지도로 현재 전해지는 세계지도 중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입니다.  이 지도에는 중국이 가운데에 아주 크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을 보고 우리나라 지도임에도 중국을 중심에 놓은 지도라고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다시 이 지도를 자세히 살펴볼까요? 이 지도에는 유럽과 아프리카가 그려졌을 뿐만 아니라 도시의 이름도 적혀있을 만큼 자세히 그려진 지도입니다. 이 지도를 통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인도차이나반도의 말라카 해협,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오렌지강 등 5000여 곳의 지명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선이 유럽이나 아프리카만큼 크게 그려져 있으며, 일본보다 훨씬 크게 그려져 있습니다. 당시 조선이 경험하는 세계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었습니다. 가장 앞선 문화를 가지고 있던 중국을 지도의 중심에 놓았지만 조선 스스로를 결코 하찮게 그리지 않았습니다. 지도는 멀고 가까움과 방향을 정확히 표시되어 그 쓰임새가 있어야 합니다. 이 지도는 조선의 지형을 자세히 표현하였고, 조선과 가장 많이 교류한 중국을 자세히 표현하였으며, 조선과 교류하였던 일본의 지명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였습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교류하지 않는 나라와 지역에 대해서는 작게 그려 세계지도에서 조선을 크게 부각했습니다.  이 지도를 제작하는 데 책임자였던 권근은 지도의 제작 동기를 밝히는 글에서 '집을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지도를 보고 지역의 멀고 가까움을 아는 것은 다스림에 하나의 보탬이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이 지도는 세계를 이해하는데 쓰임새가 있었으며, 조선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도 표현된 지도였습니다. 그래서 이 지도는 '조선의 자존감이 당당하게 표현되어 있으나 세계의 모습을 바라보는 데 거스름이 없이' 그려진 지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힘들수록 세상의 중심에 '나'를 놓으세요.


사람은 대부분 어렵거나 힘든 일이 겹치게 되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 헤매게 됩니다. 자신에게 닥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려고 하다 보면 힘들기만 하고 한 가지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왜 이럴까'라는 자괴감을 가집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어떤 일이 가장 중요한 지를 파악하고, 그 문제에 집중하여 해결하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잃지 않는 마음입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거나 잘생기거나 부자는 아니지만, '나'는 존재만으로도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세상의 중심은 물리적인 위치가 아닌 내 마음의 가리키는 곳입니다. 힘들수록 세상의 중심에 '나'를 놓으세요.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7월 24일자(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61569)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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