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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주 Nov 12. 2020

카프카 전작 읽기 후기

'작가들의 작가', 카프카와 함께 한 시간들을 정리하다.

여름에 시작한 ‘카프카 전작 읽기’를 겨울의 초입에 마무리 지었다.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법 앞에서』, 『소송』, 『칼다 기차의 추억』, 『성』, 『변신, 단식광대』, 『실종자』, 『카프카의 일기』. 이렇게 여덟 권의 책을 넉 달 동안 읽었다. 마지막 책인 『카프카의 일기』는 완독까지 한 달 정도 걸렸다. 9백 페이지가 넘으니 4주 동안 두세 권의 책을 읽은 셈 치면 마음이 편하다.     


1997년, 솔 출판사에서 『카프카 전집』이 처음 출간되었다. 서점에서 『카프카 전집』을 발견했을 때, 보물이라도 찾은 기분이었다. 「변신」 의 독특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좋아했기에, 카프카의 작품들을 모두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었다. 그러나 카프카의 작품들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나처럼 게으른 독자가 편히 볼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암호 같은 이야기들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포기해버렸다. 그 후 『카프카 전집』은 20여년 동안 마치 백과사전인 양 우리 집 책장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말하자면, 소중하지만 읽지는 않는 책이었다.      


 올 여름, <카프카 전작 읽기> 프로그램을 발견했을 때도 20여년 전 『카프카 전집』을 대면했을 때처럼 흥분된 기분을 느꼈다. 드디어 ‘좋아하지만 친하진 않은’ 카프카와 친해질 수 있는 기회였다. 혼자서는 읽기 힘들어도 여럿이 함께라면 읽어낼 수 있다. 2주 동안 한 권을 읽고 격주 월요일 저녁에 회원들과 카톡 북토크를 나눴다. 프로그램 주관자 선생님이 미리 보내 주신 논제를 읽고 각 논제별로 의견을 내고 의견을 들었다. 다양한 해석과 감상들이 오가면서 좁았던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했다.      


첫 책인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를 읽고 나자, 그동안 그의 작품이 왜 그토록 어려웠는지 깨달았다.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에서 카프카는 “제 글쓰기의 주제는 아버지십니다.” 라고 했다. 그가 남긴 작품들 속에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그를 지배했던 감정과 생각들이 여러 형태로 변형되고 은유되어 나타난다. 아버지와의 관계와 카프카의 성장과정을 알지 못하면 그의 작품들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카프카의 작품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열쇠에 해당하는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부터 시작했기에 8차시까지 올 수 있었다.      


한 권 한 권 넘어갈수록 그의 작품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카프카는 시종일관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즉 카프카의 소설들을 읽는다는 건, 카프카라는 한 인간을 조금씩 더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그 정점은 마지막 책인 『카프카의 일기』다. 카프카라는 한 우주를 한 겹씩 찬찬히 보여주다가 『카프카의 일기』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카프카를 보여준다. 『카프카의 일기』는 남에게 읽히기 위해 쓴 글이 아니다. 읽는 내내 내밀한 사적 공간을 허락도 없이 들어가 마음대로 들여다보고 있다는 불편함이 컸다. 그러나 카프카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결정적인 단서들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다.      


20여년 동안 책장에서 잠자고 있던 카프카를, 함께 읽기를 통해 제대로 만날 수 있었다. 신비주의에 싸여 있던 스타를 만난 느낌이다. 하나의 상(想)으로만 존재하던 카프카를 살아숨쉬는 존재로 만났다. 내 손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그와 이야기 나눠 보고 손 잡아 본 기분이다. 아무리 어려운 책도 천천히 깊이 읽고 메모하고 리뷰 쓰고 토론까지 한다면 희미하던 상(想)이 점점 구체적 형태를 띤다. 추상성이 구체성으로 바뀐다. 혼자서는 어려워도 함께 읽으면 쉽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이 읽기에도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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