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편집자가 어쩌다 영상 편집자가 됐을까
나는 책을 잘 안 읽는 북에디터였다.
약 9년 간 나는 출판사 에디터로 살아왔다. A4가 들어갈만한 가방에는 대부분 교정지가 들어있었고 가끔은 외부 일정을 핑계 삼아 홍대 근처 카페에 앉아 종이에 코를 박고는 열심히 빨간 줄을 그어댔다.
사람들은 편집자라면 두 가지를 떠올린다.
1.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을 것이다.
2. 맞춤법, 띄어쓰기에 능할 것이다.
대부분의 편집자들이 책을 많이 읽고 좋아하고 다독하며 맞춤법에 능한 건 맞다. 하지만 내 경우, 부끄럽지만 2가지 모두 해당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책은 읽어야 하는 책 위주로 최소한의 분량을 읽었고(예를 들면, 독후감 쓰기 방학 숙제를 위한 독서라든가;;) 편집자로서 나의 가장 취약한 부분은 맞춤법-띄어쓰기를 교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노트북이나 핸드폰으로 국립국어원과 포털 사이트의 국어사전을 옆에 켜 두고 검색해가며 교정을 봤다. 그렇게 힘든(?) 교정을 끝내고 나면 그날은 무조건 맥주각이었다. 수고한 날 위하여!
그런 생활을 하던 내가, 인생의 절대 시련(?) 3-콤보인 "임신-출산-육아"를 경험하게 되었고(절대 행복이기도 했지만) 마침 내가 속해있던 팀이 해체되면서 자연스럽게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선배들은 출판사 에디터로 성장하면 나중에 프리랜서 활동할 수 있어서 육아하면서도 일을 이어갈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예외였다.
도저히 집중해서 교정을 보기에 체력도, 정신력도 받쳐주지 않았다. 하고 싶은데 따라주질 않으니 오히려 더 우울해지고 좌절만 깊어졌다고 할까. 어쨌든 절대 시련 3-콤보가 최고점을 찍으며 내 인생이 '엄마'라는 이름에 적응하는 동안, 나는 일을 겸하지 못한 채 어찌 저찌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아이가 이제 어린이집에 가도 되겠다 싶은 24개월이 지나고 있을 무렵, 나에게 프리랜서 일거리가 하나 들어왔다. 대단한 일도 아니었고, 사실 돈벌이가 되는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를 누군가 필요로 해준다는 사실 자체가 그저 눈물 나게 고마웠다. 오랜만에 시장조사도 하고, 기획 관련된 브레인스토밍도 해보면서 내가 살아있구나 하는 느낌을... 너무나 오랜만에 느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 봐야 고작 36개월, 3년 만인데 말이다.
나는 실용 어학 출판 분야의 에디터였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영어 실력은 꽝이지만, 영어 전문가인 저자분들과 퀄리티 좋은 영어 문장을 '일로써' 접할 기회가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쥐뿔 아는 것도 없는데;;) 영어에 대한 거부감은 많이 사라졌고, 영어 시장을 나름 파악할 수 있는 '감'이 있었다. (시원스쿨 한창이던 시절.. 그땐 그랬지)
그래서일까. 성인 영어 이러닝 사이트를 같이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나에겐 또 다른 '책'을 만들어보자는 것처럼 이해됐고, 나는 별 고민 없이 '오케이! 고맙습니다!'를 외쳤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용감했고, 무모했다. 하지만 그땐 가슴이 벅차올랐고, 내가 육아에서 공식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는 것 자체로 너무 행복했다. (아들아, 미안...)
그렇게 영상을 처음 마주하게 됐다
처음엔 대표님께서 영상을 거의 다 촬영-편집하셨다. 종이책 만지던 편집 쟁이가 컴퓨터로 뭘 할 수 있었겠는가. 그저 영상 편집에 필요한 소스 찾아서 챙겨드리고, 원래 하던 일이 교정이었으니 다 작업된 영상을 교정 보며 자막과 컷의 오류들을 체크했다.
그리고 영상 이외에 수강생들에게 제공하는 pdf 학습 자료(단어집, 연습문제 등), 썸네일(ppt로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ㅎㅎ), 소개글을 작성했고 모든 자료를 사이트에 업로드하고 수강생들을 관리했다. 한 마디로 영상 제작과 관련된 일을 제외한 모든 것을 담당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역할은 그게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그 이상으로 무언가 해볼 욕심을 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사업이 확장되면서 대표님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즉, 도저히 영상 편집을 직접 하실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영상 편집자를 뽑아서 해결하자니, 편집자들의 작업방식이나 포트폴리오가 마음에 썩 와닿는 편집자분이 없었다. 그리고 당시 여러 가지 여건 상 인력을 충원하는 것은 사실, 무리였다. 그러니 이제 방법은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