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빠와 사이가 좋다. 아빠는 아버지이자 베프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나와 잘 통한다. 그래서 나는 어릴 적부터 오늘 하루 있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인생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 ‘인생은 행복인가 불행인가’와 같이 심오한 이야기까지 주제를 불문하고 아빠에게 내 마음과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아빠도 나에게 당신의 마음과 생각을 공유해 주셨다. 그렇게 우리는 언제나 같이 있으면 즐거웠다.
시간은 흘러 흘러 어느덧 나는 30대가, 아빠는 환갑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예전의 모습 그대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늘 함께 하는 시간을 즐거워한다. 특히 아빠는 나의 베스트 산책 메이트인데, 우리는 산책을 갈 때도 두 시간이 걸리는 코스를 도는 시간 동안 손을 잡고 걸으며 끊임없는 수다로 서로에게 힐링 타임을 선사한다.
그런데 이렇게 내가 생각해도 정말 딸바보인 우리 아빠에게는 조금 특별한 임무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나의 5분 대기조 역할이다.
고등학교 때, 야자를 마치고 학원까지 모두 끝나면 12시가 넘는 시간. 아빠는 버스가 끊겨 내가 난처해질까 봐, 위험할까 봐 내가 마치는 시간에 맞춰 항상 나를 데리러 오셨다. 새벽으로 넘어가려는 시간, 깜깜한 밤에 학원 문을 열고 나서면 어김없이 내 뒤편에서 전조등을 환하게 켜고 나를 반겨주는 아빠였다. 참 든든했다.
주말에 친구들과 함께 놀러를 갈 때도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바다 보러 가고 싶으면 바다로, 쇼핑하러 시내에 나가고 싶으면 시내로 갔다. 우리 아버지께 부탁하면 언제든 데려다주시고 데리러 오시니 나는 그저 친구들과 가고 싶은 곳으로 훌쩍 떠날 수 있었다.
그런 아빠의 기다림은 내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됐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막 가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는데 아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찌 이렇게 타이밍이 딱 맞게 전화가 오다니 신기하고 반가웠다. 전화를 받았다.
“아빠, 나 방금 마쳤어! 지금 집으로 가는 길!”
“응, 뒤로 돌아봐봐. 네 뒤에 있다.”
돌아보니 그날도 어김없이 아빠는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내가 마칠 시간을 염두에 두셨다가 시간 맞춰 나오신 것이었다. 그날은 초겨울로 넘어가려는 늦가을 저녁이라 제법 쌀쌀했다. 힘들게 왜 나와서 밖에서 기다리셨냐고 하니,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밤이 늦어 위험할까 봐.
오늘도 어김없이 아빠는 내 뒤에 계셨다.
일 때문에 새벽 일찍 기차를 타러 가야 했다. 새벽 5시에 집을 나섰다. 너무 이른 새벽이라 버스 타기가 힘들어 택시를 타고 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아빠가 함께 따라 나오셨다.
내 손을 꼭 잡아 주시며 밖이 깜깜하니 택시 타는 곳까지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결국 아버지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택시에 올랐다. 택시가 출발하고 창문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니 아버지는 뒤에서 떠나는 택시를 바라보고 계셨다.
그렇다, 내 뒤에는 언제나 당신이 계셨다.
언제나 뒤에서 나를 바라봐 주시는 아버지의 따뜻한 눈빛에
오늘도 마음 놓고 앞을 보고 가는 딸이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