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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천소년 Jun 29. 2023

진달래꽃을 통해 배우는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새로운 시작은 상실을 바탕으로 한다

오마이뉴스 (ohmynews.com)


 예전 근무했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수업 후 교무실로 향하던 길에 괴성 소리를 들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확인해 보았더니 우리 반 교실이다. 남학생 한 명이 갑자기 자기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 아이 때문에 반의 몇몇 학생들은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단 아이를 진정시킨 후에 운동장을 함께 걸으며 왜 화가 나서 고함을 질렀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여자친구와의 이별 때문에 화가 나서 고함을 질렀다고 말했다. 사실 그의 여자친구도 우리 반 학생이라 한 달 전에 헤어졌다는 소리를 아름아름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학기 초 상담 때 두 학생이 교제 중인 것을 알고 졸업할 때까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좋은 사이로 잘 지냈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는데, 역시 사람의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남자아이는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한 여학생에 대해 야속하고 섭섭한 감정이 컸다. 그는 한때 세상에서 제일 가까웠던 사람과 남처럼 지내는 것이 마치 신체의 한 부분이 잘려나간 아픔 같다고 표현했다. 마음을 추스르고 학교생활에 전념하고 싶지만 매일 교실에서 그녀를 봐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고 했다. 그날 그 녀석은 평소처럼 친구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여자아이의 일상에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밀어서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남학생에게 너의 고통과 아픔은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다른 사람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행동은 담임교사로서 용납하지 않겠다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다음은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SNS를 통한 학교 폭력 사건이었다. 학교의 한 학생이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 반 학생에 대한 공개 저격 글을 올렸다. 교묘한 방식으로 작성했지만, 당사자와 주변 사람들은 그 대상이 누구인지 금방 떠올릴 수 있었던 내용의 글이었다. 공개 저격 글에 당한 우리 반 아이도 바로 상대를 비방하는 글로 역공을 가했다.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쓴 글을 보면서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격언이 떠올랐다. 두 사람은 글로서 서로에게 생채기 이상의 깊은 상처를 주고받은 것이다. 사실 두 사람은 학교에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사이였다. 소위 말하는 절친, 단짝 친구였다. 그런데 학년이 바뀌고 각자 다른 반에 배정되면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예전보다 멀어졌다. 각자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면서 관계는 소원해졌다. 그 과정에서 한 학생이 상처를 받았고,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를 거짓된 내용의 과장된 글로 공격한 것이다.


 두 사건 모두 엄밀히 따지면 학교폭력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학교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때 아주 가까웠던 사이라는 것이다. 요즘 언론을 통해서도 데이트 폭력과 관련된 기사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상대의 헤어지자는 말에 폭력을 가하고 심지어 강력 범죄까지 벌어지는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난다. 특히 이별 상황에서의 강력 범죄는 너무 심각하다. 얼마 전에도 "헤어지자"라는 애인의 말 한마디에 격분한 남성이 여자친구뿐만 아니라 그녀의 가족까지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최근에 과거 또는 현재의 애인에 의해 목숨을 잃는 사건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극단적인 이별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세상에서 학생들과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국어 시간을 통해 한 편의 시를 학생들과 함께 읽었다. 바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앙케트 조사에서 윤동주와 더불어 항상 1,2위를 다투는 김소월 시인의 대표작인 '진달래꽃'이다. 누군가는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로 인용을 하려는 시가 겨우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냐며 식상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다. 김소월의 시들은 오랜 세월 국정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었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학교 수업을 통해 접했을 만큼 우리에게 친숙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중학교 때는 '엄마야 누나야'라는 작품을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진달래꽃'이라는 시를 국어 교과서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우리는 시험 준비를 위해 김소월의 시를 제법 공부했다. 그래서 그의 시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진달래꽃'이란 시는 민요조의 시로 역설과 반어 그리고 수미상관, 여성적 어조 등의 표현법으로 이별에 대한 정한을 다룬 작품임을 선생님의 설명을 통해 배웠다. 또한 이별의 상황에서도 순종과 인내에 충실한 한국의 전통적 여성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외웠다. (사실 나는 진달래꽃의 화자를 여성으로 단정짓는 것을 경계한다.) 진달래꽃은 항상 '황조가, 공무도하가, 가시리'와 같이 이별을 소재로 하는 고전 문학 작품과 연계되어 시험 문제로 출제되고는 했다.


 비단 시험에 나올 만한 중요한 작가와 작품이라서 수업 시간에 따로 다루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별을 대하는 태도에서 '진달래꽃'의 화자만큼 아름다운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아이들이 시적 화자의 상황과 태도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런 삶의 자세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했다. 인생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수많은 만남과 이별의 상황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태도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싶었다. 나 역시 이별의 상황에서 오랫동안 내 곁을 지켜주었던 사람에게 성숙하고 아름다운 이별이란 선물을 마지막으로 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 시를 통해 배운 지혜로움을 학생들과 나누고 싶었다.


 40대가 된 지금 인생을 되돌아보면 산다는 것은 곧 수많은 이별이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다. 아름다운 우정을 쌓았던 그 시절의 친구들과 한때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던 사람들의 얼굴도 이제는 흐릿하다. 내가 매일 주어지는 하루라는 시간에 충실하게 살아갈수록 과거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머릿속에서 사라져간다.


 이렇게 우리는 매일 이별하며 살아간다. 모든 이별의 상황에서 우리는 언제나 아프다. 특히 사랑하고 좋아했던 감정이 클수록 이별의 아픔도 더욱 크다. 두 번째로 사귀었던 사람과 헤어져야 했을 때 누군가가 첫사랑보다 덜 아플 거라고 위로해 준 적이 있다. 하지만 이별은 매번 아팠다. 첫 사랑과 헤어졌을 때는 한 달 정도 밥을 못 먹었고, 매일 술을 마시며 쓰라린 속을 달래야 했다.


 스물 한 살 시절에는 함께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주었던 친구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제 더 이상 그와 함께 술 한 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할 수 없고, 같이 목욕탕에 갈 수도 없으며, 치열하게 농구를 겨룰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별의 아픔 때문인지 당시의 나는 온몸이 아팠다. 군대에서 친구의 부고 소식을 듣고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가 선임병에게 혼이 난 적도 많았다. 그래서 가수 백지영은 이별의 상황을 '총 맞은 것처럼'이라고 표현했나 보다.


 그럼 나는 내 인생에서 불현듯 찾아온 이별의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는가? 주로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내 몸을 학대하며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몰고 가는 선택을 했다. 굶었고 과음했고 쓰러질 때까지 달렸다. 당시의 나는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상황을 이렇게 만든 스스로를 원망했으며, 급기야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 세상을 저주했다.


 하지만 이제는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말이다. 모든 인연에는 끝이 있다. 하늘이 맺어주었다고 하는 부모 자식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내 곁에 평생 함께 할 것 같은 부모님도 언젠가는 우리 곁을 떠난다. 지금 내 곁을 지켜주는 친구 역시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연락도 하지 않게 될 시기가 온다. 우리는 상대의 마음이 한결같기를 바라지만 사실 그것은 불가능하다. 결혼하자고 죽고 살기로 쫓아다닐 때 마음과 결혼한 뒤의 마음은 다르다. 마음이 바뀌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그 변화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인간의 마음은 바뀔 수 밖에 없고 모든 인연에는 끝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별의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작가이자 인문학자인 고미숙 님은 '시절 인연'이란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시절 인연'이란 불교 용어로 모든 사물의 현상이 어떤 시기를 만나야 일어난다는 뜻이다. 우리는 시절 인연에 따라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와 헤어진다. 모든 인연은 시절 인연이 닿으면 만나게 되고 시절 인연이 끝이 나면 그 연결고리 또한 해체될 수밖에 없다. 시절 인연의 배치가 달라지면 아무리 노력해도 인연의 끝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원치 않던 이별 앞에서 고통스러워했던 한 친구가 떠올랐다. 그 친구는 '만약 그때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더라면' 등의 가정으로 자책하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시절 인연의 개념도 몰랐지만 친구에게 넌지시 말했다.


 "친구야~ 네가 그 사람에게 어떤 말을 했고 무슨 행동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네가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너희 둘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본다. 그 사람이 네가 싫어진 것에는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네 탓은 더욱이 아니다. 그러니깐 너무 자책하지 마."


 이토록 이별은 인생사에서 필연적으로 찾아온다. 그리고 아픔을 동반한다. 우리는 내 삶에서 반드시 찾아올 이별 앞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제 오늘 소개할 '진달래꽃'이라는 시를 보도록 하자.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진달래꽃, 김소월


 첫 번째 연에서 화자는 이별의 상황을 가정한다. 님은 내가 그냥 싫은 정도가 아니라 역겨울 정도로 싫다. 쳐다보기만 해도 구토가 날 만큼 싫은 것이다. '역겹다'라는 단어는 일상에서 쉽게 쓰는 단어가 아니다. (만약 누군가에게 이 형용사를 사용한다면 바로 그 사람과의 관계가 끝이 날 정도로 파괴적인 단어다.) 입에 담기에도 민망할 만큼 험한 단어를 쓰면서 이별의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화자의 선택은 말없이 상대를 곱게 보내 주는 것이다. 아직 이별이 닥치지는 않았지만 이별의 순간이 곧 오리라는 것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두 번째 연에서의 화자의 모습은 조금 더 적극적이다. 영변 약산에 있는 진달래꽃을 한 아름 정도 따서 당신이 떠나는 길에 뿌리겠다고 한다. 상대의 이별 통보 앞에서 격조 있게 침묵을 지키며 이별에 순응을 한 다음, 님이 가시는 길 위에 꽃을 뿌리며 축복해 준다. 결혼식 때 신랑 신부가 입장할 때 꼬마 아이들이 먼저 신랑 신부가 걸어갈 길 위에 꽃을 뿌리면서 걸어 들어가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신랑 신부를 축복하기 위해 어린아이들이 꽃을 뿌리며 축복을 해주듯이 화자 역시 이별의 순간에 자신을 떠나려는 사람을 위해 꽃길을 만들어주면서 이별의 순간을 아름답게 만든다.


 세 번째 연에서 화자는 님에게 완곡하게 부탁을 한다. 자신이 뿌린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달라고 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할 것이 있다. 왜 하필 진달래꽃일까? 봄에 피는 꽃으로는 개나리도 있고 목련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개나리나 목련보다는 진달래꽃이 이 시에 더 어울린다. 그 이유는 진달래꽃의 색이 붉은색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달래꽃은 님에 대한 화자의 사랑이고, 화자 그 자체이다. 그래서 꽃을 밟는 것은 화자를 짓밟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구절을 나는 아파도 괜찮으니 나를 밟고 가라는 자기희생의 의미로 엿볼 수도 있다. 아니면 떠나려면 나를 짓밟고 떠나가라는 말을 통해 님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의 적극적 표현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마지막 연은 첫 번째 연과 비슷한 문장 형태가 한 번 더 반복된다. 나 보기가 역겨워 나를 떠나신다면 죽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한다. 아무리 사랑했던 사람이라도 내가 역겨울 정도로 싫어졌다는 표현을 듣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 대부분 욕을 하거나 상대를 비난할 것이다. 차라리 욕을 해버리면 상대는 더 마음 편하게 떠날 수 있다. 하지만 시의 화자는 고도의 밀당을 시전하고 있다. 이별의 상황에서 슬픔과 아쉬움을 드러내지 않고 상대를 축복해 주는 태도를 보여주며, 상대에게 강력하게 나를 떠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오늘 소개한 '진달래꽃'이란 시는 진달래꽃을 소재로 누군가를 전정으로 아끼고 사랑했다면 아쉬움과 슬픔이 가득한 이별 역시 아름다워야 한다는 비장함과 숭고함을 담고 있다. 꽃이 피고 지는 게 당연하듯이 세상 모든 존재는 생성과 소멸이라는 본질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사랑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는 만나고 헤어진다. 만남 그 단어 자체에 이미 이별을 내포하고 있다.


 봄이 되면 벚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누군가와 이별해야 하는 상황 앞에서는 헤어질 때가 되었다는 운명을 순응하며 받아들이자. 그리고 나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주었던 당신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기를 빌어주자. 그래도 나를 떠난 상대에게 분한 감정이 생긴다면 당신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망상에서 벗어나 오늘 하루 나의 인생을 힘차게 살아가자.


 이별은 아픔을 동반한다. 아픔과 불행은 같은 뜻을 지닌 단어가 아니다. 아프다고 모두 불행한 것은 아니다. 이별로 인한 아픔은 성장과 휴식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다시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겠다. 여자친구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아 괴로운 남학생과 단짝 친구와 멀어져서 괴로운 여학생에게 다음의 말들을 해주고 싶다.


 감사하자! 그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나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고, 더 나은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축복하자! 그 사람 덕분에 즐거웠고 행복했던 순간을 지닐 수 있었다. 진심으로 그/그녀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고 기도하자.


 이런 마음으로 누군가를 떠나 보낸다면 시절 인연이 데려다줄 새로운 사람을 온전히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별에 대처하는 지혜로운 자세를 통해 우리는 성장하고, 더 나은 사람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이별이란 운명 앞에서 '진달래꽃'의 화자처럼 성숙한 자세를 지향하는 격조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더 많아졌으면 한다. 매일 내가 만나는 제자들 또한 그런 태도로 관계를 맺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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