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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의 기이한 사례 – 로버트 스티븐슨

자신의 욕망과 본성을 통찰하고, 사회적 맥락 안에서 현명하게 표출하는 삶

by 박소형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날 묶어 왔던 사슬을 벗어던진다.
지금 내겐 확신만 있을 뿐
남은 건 이젠 승리뿐



분명 가사만 적었을 뿐인데 머릿속에서는 음까지 저절로 플레이되고 있다. 뮤지컬은 안 봤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노래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의 가사다. '지금 이 순간'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대표하는 곡이자,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뮤지컬 넘버 중 하나이다. 지킬 박사가 자신의 오랜 연구가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에 차서 부르는 곡으로, 작품의 핵심 주제인 인간 내면의 선과 악, 그리고 욕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이 노래를 들어 본 사람이 당연히 뮤지컬을 본 사람보다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성공한 뮤지컬 중 하나가 바로 ‘지킬 앤 하이드’이다. '지킬 앤 하이드'는 브로드웨이 성공 이후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연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2004년 초연을 시작으로 2025년 현재까지 전국에서 공연되고 있는 작품이다.




노래 '지금 이 순간'이나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유명세에 비해 원작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에 대한 관심은 미미한 수준이다. 사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 책의 작가가 누구인지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뮤지컬의 내용이 원작을 아주 많이 각색했다는 사실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뮤지컬 주인공 지킬 박사는 매력적인지 모르겠지만, 원작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의 주인공인 지킬 박사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지킬 본인의 내면 속 악의 덩어리인 하이드의 악행을 감추려고만 하고 하이드에 의해 희생자가 된 사람들의 고통이나 죽음을 애도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만든 하이드의 존재를 증오하고 미워하는 것으로 본인의 책임을 회피하고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명성에 흠이 될까 걱정한다. 또 다른 자신인 하이드의 악행에 대한 반성 없이 기부와 자선과 같은 선한 행위로 자신을 포장해 가며 고매한 지킬 박사로 살아가고 싶어 한다.



이 소설은 변호사 어터슨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여러 악행으로 소문이 난 에드워드 하이드라는 사람이 그의 친구이자 존경받는 의사 헨리 지킬 박사가 자신에게 맡긴 유언장에 등장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터슨은 지킬 박사에게 찾아가 친구이자 변호사로서 하이드가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을 강조하지만 이상하게도 지킬 박사는 그를 옹호하고 보호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던 중, 하이드가 그 지역의 유명인사 댄버스 커루 경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지킬 박사는 하이드와의 관계를 끊었다고 주장하지만, 어터슨은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지킬 박사는 다시 자신의 연구실에 틀어박혀 누구도 만나지 않으려 하고, 그의 하인들은 그가 이전과는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며 이상한 소리를 낸다고 증언한다. 결국 어터슨과 지킬 박사의 하인은 연구실 문을 부수고 들어가지만, 그곳에는 하이드의 시신만이 놓여있고 하이드의 시신 옆에는 지킬 박사가 남긴 두 통의 편지가 놓여 있었다.





사건의 전모가 담긴 지킬 박사의 편지를 요약해 보면 이렇다.

인간의 본성이란 하나로 합쳐져 있지만 원래는 선과 악 두 영역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킬은 자신의 인성 안에서도 인간의 이중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이 둘을 분리하는 연구에 성공한다. 그 약물을 복용한 지킬 박사는 자신의 악한 본성을 가진 존재인 하이드로 변모하여 각종 악행을 저지르고 하이드가 점차 지킬 박사의 통제를 벗어나 독립적인 존재로 행동한다. 심지어 지킬 박사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이드로 변하는 빈도가 늘어난다. 이에 하이드로 살아가거나 스스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 절망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하이드의 모습으로 자살했다는 것을 암시하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이 작품은 인간 내부에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욕망이 존재하며 복잡하고 모순적인 본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내면의 욕구와 본능을 이해하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선에서 조화롭게 충족하며 살아가기. 그것이 바로 행복에 가까워지는 삶이 아닐까.

요즘 나는, 만나면 하하호호 저절로 웃음이 나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관람을 욕망하고 있다. 책을 읽고 나서 행동으로 옮기는 그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 될 거라 확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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