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타락을 막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전투표 이틀째 날이다. 12.3 계엄령으로 대통령이 탄핵 되어 조기 대선을 치르는 중이다. 이렇게 투표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을까? 많은 국민이 나처럼 불안한 정치 상황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높은 사전투표율을 기록하고 있다. 권력욕은 권력의 부패를 불러온다. 손바닥에 王자를 쓰고 나와 너무 쉽게 얻은 권력에 국민의 소중함을 몰랐던 건지, 대통령이 되고 보니 권력욕구가 더 강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권력자 자신의 욕망을 위한 정치는 대한민국을 여기저기 멍들게 했다.
한때,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나타나는 빈부의 격차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평등과 공정한 분배를 기본 개념으로 하는 사회주의가 이상적인 체제가 될 거라는 희망이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사회주의 체제의 권력자 역시 자신의 권력을 다른 이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숙청하는 절대 권력을 행사하고 자신에게는 평등보다 특권을 허용하면서 권력이 부패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독재 사회주의가 어떻게 변질 되어 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이 바로 이번 주 독서 모임에서 읽은 <동물농장>이다.
조지 오웰은 이 책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실패해가는 과정을 동물에 빗대어 우화 형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사회주의 혁명의 실패라는 어렵고 복잡한 과정을 아이들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이야기한다. 심지어 소련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가 몰락하기 40여 년 전에 출간된 예언서와 같은 책이다. 독재와 전체주의로 타락한 소련의 사회주의를 비판한 오웰은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주의자다. 그는 사회주의 운동의 재건을 위해서 소비에트 신화를 파괴하는 일이 근본적으로 필요하다고 확신하게 되었다고 <동물농장> 우크라이나어판의 서문에 적고 있다.
오웰이 <동물농장>을 완성한 1943년은 영국과 소련이 동맹을 맺은 시기였다. 소련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담겨 있다는 이유로 혹은 다른 핑계로 출판사마다 번번이 출간을 거절당한 끝에 2년이 지난 1945년에야 겨우 출간될 수 있었다.
이 책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영국의 장원농장에 살고 있는 늙은 돼지 메이저 영감은 농장의 동물들에게 인간의 착취와 억압을 비판하며 동물들의 세상인 이상적인 “동물농장”을 만들자고 연설한다. 그의 말에 감동을 받은 동물들은 “동물주의”라는 이념을 만들고 농장 주인 존슨을 쫓아내고 농장 이름도 “동물농장”으로 바꾸어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라는 구호 아래 일곱 계명을 만들어 평등한 공동체를 건설한다.
일곱계명
첫째, 두 발로 걷는 자는 모두 적이다.
둘째, 네 발로 걷거나 날개가 있는 자는 모두 친구다.
셋째,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넷째,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잠을 자서는 안된다.
다섯째,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여섯째, 어떤 독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일곱째,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혁명에 성공한 초기에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라는 계명처럼 평등하게 일하고 수확을 나누는 이상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권력을 차지한 돼지들, 특히 나폴레온과 스노우볼이 리더십을 장악한다. 나폴레온은 개들을 이용하여 스노우볼을 농장에서 추방하고 권력을 독차지하면서 독재정치를 시작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일곱 계명은 돼지들에게 유리하게 조금씩 수정되고 돼지들은 인간처럼 두 발로 걷고, 옷을 입고, 술을 마시며, 인간과 교류하기 시작한다. 다른 동물들은 돼지들의 억압과 착취 속에서 인간의 지배를 받을 때와 다름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농가에서 돼지들과 인간들이 함께 파티를 여는 모습을 창밖에서 동물들이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밖에서 지켜보던 동물들은
돼지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서 인간으로
번갈아 고개를
돌리며 쳐다보았다.
하지만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이미 구별할 수 없었다.
p.151
혁명의 씨앗을 뿌린 메이저 영감은 마르크스 혹은 레닌이라고도 하고, 권력의 중심 나폴레온은 소련의 독재자인 스탈린을, 스노우볼은 스탈린에게 추방당한 혁명가인 레온 트로츠키를 비유한 것이라 학자들은 말한다. 독재자 스탈린처럼 말과 행동이 점점 달라지는 나폴레온의 모습도 흥미로웠지만 비판없이 따라가는 양들의 모습과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지만 아무런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 당나귀 벤자민의 모습은 더 충격이었다. 권력자 혹은 독재 정부에 선동당하여 무조건 따라가는 양들의 모습에서 국민에게 총칼을 들이댄 대통령을 여전히 지지하고 추종하는 일부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나폴레온의 독재 과정을 지켜보며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조용히 침묵하고 있는 벤자민의 모습에서 비판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 무기력한 지식인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오웰은 인간의 본성인 권력욕은 이상적인 체제나 이념보다 우선하고 권력욕이 사라지지 않는 한 권력의 부패는 필연적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처음에는 그런 생각에 오웰이 그린 또 다른 디스토피아를 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만약 무지한 양들이 선동되지 않고, 벤자민이 침묵하지 않았다면, 동물 농장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오웰은 우리가 양들과 벤자민과는 반대로 권력의 부패를 감시하고 저항한다면 유토피아가 펼쳐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것이 이번 대선으로 다음주 출범하는 새로운 정부에 축하를 보내면서도 동시에 감시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