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센세이셔널 – 애슐리 워드

세상을 알아가고 타인과 관계를 맺고 나를 이해하는 감각의 세계

by 박소형

첫사랑과 처음 손을 맞잡은 순간, 나의 모든 감각이 손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성과 손을 잡는다는 건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이때 처음 알게 되었다.

첫사랑과 처음 입을 맞추던 순간, 입술의 또 다른 존재 이유를 깨달았다. 이 순간만큼은, 입술은 단지 음식물을 먹을 때나 말을 할 때 사용하는 신체가 아니라 황홀감을 맛볼 수 있는 통로였다.



이처럼 감각은 세상을 다르게 느낄 수 있는 수단이다.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피부로 느끼며 세상을 알아간다. 감각은 나와 세상 사이의 접점으로 감각을 통해 우리는 살아갈 이유와 가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준 책이 바로 <센세이셔널>이다. 제목 <센세이셔널>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책의 주제인 감각 senses의 의미로 ‘감각적인’ 또는 ‘감각에 관한’이라는 뜻과 미처 깨닫지 못한 감각의 경이로움에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썸네일-097.png



실제로 이 책을 읽다 보면 감각에 대한 놀라운 사실들에 밑줄 긋고 싶은 부분이 많이 등장한다. 시각과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지각에 관한 흥미진진한 구체적인 연구 사례로 감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의 경험도 책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데 그의 경험담을 읽다 보면 바로 공감 버튼을 누르고 싶어진다. 이 책이 매력적인 또 다른 이유는 저자의 유머가 담긴 문장에 있다. 과학자가 이렇게 유머러스하다니... 이런 과학교양서는 처음이다.

인상 깊게 읽은 부분 중 먼저 우리의 감각은 진화의 산물이라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당연한 사실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인간이 시각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경향은 단순히 미적인 선호를 넘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진화해 온 결과였다. 실제로 우리가 아름다움과 심미에 관심을 두는 것은 감각의 무게 추가 시각 쪽으로 심하게 치우쳐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갑작스러운 소리나 큰 소음에 반응하는 이유도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진화의 결과이며 우리가 콧물을 훌쩍거리거나 입을 벌리고 씹는 소리를 불쾌하게 여기는 것은, 이러한 소리가 감염병 전파의 잠재적 위험을 알리는 경고 신호 역할을 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후각과 미각은 남녀의 차이가 분명하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여성은 저농도의 냄새를 인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후각적 경험도 남성보다 풍부한 편이라고 한다. 이런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후각 처리 영역의 뉴런이 남성보다 여성에게 50퍼센트가량 더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맛의 지각을 강화하여 일반적으로 가임기 여성의 미각이 제일 예민하다. 모든 음식에 민감해지는 여성의 임신 기간에는 특히 더 예민해진다.



어찌 보면 오감 중에 가장 후 순위라고 생각했던 촉각의 중요성을 이 책을 통해 깨달았다. 지적 호기심이 많았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아담과 이브가 어떤 언어로 소통했을지 궁금해하며 아기로 실험한 사례는 충격적이었다. 아기의 본능적인 언어를 알아내기 위해 엄마들에게 아기를 빼앗아 침묵과 비접촉 속에서 키우게 지시했는데 아기들을 잘 먹이고 잘 씻겼음에도 불구하고 아기들은 죽고 말았다.


호문클루스.jpg 감각 호문쿨루스 : 사람의 신체적 특성을 그 특성에 할당된 뇌 영역의 크기와 대응시킨 작은 인간 모형



이처럼 촉각은 우리의 행복과 건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긴밀한 신체 접촉을 즐기는 사람들은 더 행복해질 뿐만 아니라 더 건강하고, 면역계도 더 강화된다고 한다. 어릴 적엔 아이 둘 사이에서 양쪽 손을 잡고 자던 시기도 있었지만 사춘기를 지나면서 스킨십이 어색해졌다.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 자주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달았다.


위에서 언급한 오감을 총괄하는 것은 뇌에서 이루어진다. 즉, 감각을 통해서 느꼈던 각 신호의 궁극적인 운명을 지각이라는 경험으로 뇌가 통합하는 것이다. 뇌가 여러 감각을 결합하여 지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서로 다른 부위끼리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각이 내린 결론을 경험이라 부르며 기억 속에 담아 둔다. 그 기억은 과거가 되고 과거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세상을 알아가고 타인과 관계를 맺고 나를 이해하면서 현재의 삶을 살아간다. 결국 무수한 감각의 경험들이 지각으로 통합되어 자신만의 삶을 결정한다.

이 책 덕분에 오감을 통해 세상을 느끼는 경이로운 능력과 지구라는 행성에서 유일무이한 인간으로 살아 숨 쉬는 나의 존재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keyword
이전 18화동물농장 - 조지 오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