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과학과 마케팅의 흥미로운 만남, 신경마케팅
마트에 가면 제일 먼저 신선한 야채와 달콤한 과일들이 반겨준다. 평소에 잘 먹는 오이나 당근과 같은 야채들을 고른 뒤 알록달록 제철 과일이 진열된 곳으로 가서 잘 익은 과일을 신중하게 선택하는 게 마트에서의 나의 루틴이다. 그런데 마트 입구에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진열하는 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스위스 마트에서도 볼 수 있는 진열 방법이었다. 작년에 유럽 여행 중 들렀던 스위스의 대표 마트 COOP에서 맨 처음으로 납작 복숭아를 골랐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마트 입구에 청과물 코너가 위치하는 건 어떤 이유로 글로벌 트렌드가 된 걸까?
이는 고객이 매장에 들어설 때 신선함과 풍요로움을 바로 느끼게 하여 긍정적인 첫인상을 심어주고, 건강하고 자연 친화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마케팅 기법이었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입구에 진열된 과일 자체의 화려한 컬러와 다채로운 맛과 향이 고객에게 전달되어 더 즐겁고 기분 좋은 상태에서 쇼핑을 할 수 있다.
의식하지 않고 있었는데 감추어진 진실을 알고 나니 놀랍기만 하다. 이렇게 구매 결정과 선택 결정이 인간의 뇌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일어나는지, 그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은 무엇인지 연구하는 학문 분야가 바로 신경마케팅이다. 다시 말해, 신경마케팅은 소비자의 뇌 활동과 생리적 반응을 분석하여 소비자의 무의식적인 선호도, 동기, 의사 결정 과정을 이해하고 이를 마케팅 전략에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름도 생소한 신경 마케팅에 대한 책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가 이번 주 독서 모임에서 선정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 한스 게오르크 호이젤은 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독일의 경제학자로 뇌과학, 마케팅, 경제학을 접목한 신경마케팅 분야의 최고의 권위자다. 그가 개발한 Limbic 모델은 인간의 뇌에 있는 변연계 Limbic System의 역할을 중심으로 소비자의 감정적 동기와 행동을 설명한다. 대부분의 구매 결정은 뇌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데 이때 제품의 감정적 평가를 담당하는 대뇌변연계는 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변연계는 뇌에서 감정, 동기, 기억, 학습 등을 담당하는 중요한 영역으로, 저자는 이 변연계의 활동을 기반으로 인간의 기본적인 동기 시스템을 세 가지 주요 축으로 분류한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변화와 도전을 즐기는 동기를 가진 자극 시스템, 권력, 지위, 성공, 경쟁 우위 등을 추구하는 동기를 가진 지배 시스템, 안정, 안전, 조화, 편안함, 소속감 등을 추구하는 동기를 가진 균형 시스템, 이렇게 세 가지를 빅 3라고 부른다.
저자는 고객이 제품을 구매하는 주된 이유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자유의지보다는 뇌의 무의식적인 욕망과 감정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는 제품의 기능, 가격, 품질 등을 의식적으로 비교하고 구매를 결정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깊고 본능적인 요인들이 작용한다. 저자는 이러한 무의식적 구매 동기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이는 인간의 생존과 번식에 뿌리를 둔 동기 및 감정 시스템의 빅 3 인 자극, 지배, 균형 시스템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즉, 고객은 필요해서 구매하는 것이 넘어서, '호기심', ‘우월감’, '안정감' 등 특정 감정을 얻기 위해 지갑을 여는 경우가 많다.
고객이 어떤 Limbic 시스템에 반응하는지 파악하여, 그에 맞는 감정적 언어와 이미지로 마음을 흔들어야 한다. 나이가 들면 뇌 속과 신경전달물질의 혼합 양상에 변화가 생겨 젊은 소비자층은 지배 시스템과 자극 시스템의 지배를 받는다면, 나이 든 사람들은 균형 시스템에 의해 좌우된다. 나이 든 사람에게는 스포츠카와 같은 지배와 자극의 특징이 강한 상품은 의미를 잃는 반면, 안전 기능이 강화된 세단처럼 균형의 특징이 강한 상품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Limbic 맵을 기반으로 고객의 뇌 유형을 분류하고, 각 유형에 최적화된 마케팅 및 판매 전략을 제시한다. 고객의 무의식적 욕망을 자극하고 충족시키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다룬다. 브랜드가 고객의 뇌 속에 어떤 감정적 가치로 인식되도록 할 것인지 전략을 세워야 하고 고객의 모든 감각을 이용하여 자극과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책은 마케터를 위한 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선택하신 독서 모임 선배님의 말씀처럼 소비에 몰입하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책이기도 하다. 이제 내가 왜 이 물건을 샀는지, 왜 저 브랜드에 끌리는지 등 나의 소비 행동을 뇌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어떤 감정 욕구에 더 민감한지 알게 되면, 충동구매를 줄이거나 나에게 정말 필요한 소비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이 책을 통해 기업들이 나를 어떻게 유혹하는지 알게 됨으로써 좀 더 현명한 소비자가 될 수도 있다. 동시에 나의 자유의지 결정권을 되찾아오는 것이 꽤나 힘든 일임을 깨닫게 한 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