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속에서 나를 만나는 삶을 살다
한국인이라면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이 10년 넘게 사랑받았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이 나도 언젠가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욕구가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특히 복잡한 도시의 반복되는 직장 생활과 끝없이 이어지는 경쟁에 지친 사람들이나 은퇴를 앞둔 중장년층에게는 은퇴 후의 삶에 대한 로망과 자연의 일부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리라.
우리나라 역사로 보면 조선시대 세도정치 시기에, 미국에서 문명화된 지식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삶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서 살았던 경험을 <월든>이라는 책에 기록해 놓은 사람이 있다. 바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다. 그는 당시에도 명문이었던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후에 도끼 한 자루를 빌려 월든 호수 옆 숲속으로 들어가 손수 집을 짓고 2년 2개월 동안 살았다.
그는 숲속 오두막집에서 독서를 하고 호숫가에서 들리는 소리를 묘사하면서 자연과의 교감하며 고독과 다정한 친구처럼 보낸다. 자신의 오두막집을 찾아오는 다양한 방문객들과 자신이 직접 콩을 심고 가꾸는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다. 그렇다고 그가 2년 2개월 동안 오두막집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매일 혹은 이틀에 한 번씩 마을로 산책을 나가고 주 정부의 권위를 인정할 수 없어 주민세를 내지 않아 마을에 나갔다가 체포되어 구금되기도 한다.
근처 베이커 농장의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자 가족을 만난 경험을 기록하고 숲속에서 만난 동물들을 인간 사회와 비유하며 관찰한다. 가을이 되어 겨울 난방을 위해 땔감을 준비하고 눈과 어둠을 뚫고 자신을 찾아와 겨울 저녁을 함께 보낸 방문객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추운 겨울을 나는 다양한 동물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겨울 월든 호수에서 얼음을 뚫고 깊이를 재면서 호수의 수심과 면적과 둘레를 재서 지도를 만들기도 한다. 얼어붙었던 자연이 녹고 새로운 생명이 싹트는 봄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상쾌한 봄날 아침을 예찬한다. 전체적인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이런 내용이지만 끝까지 완독하려면 숲속 오두막집에서 사는 것 만큼이나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 소로가 지향하는 삶의 방식을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자유로운 삶이다. 그는 시간의 주인이 되어 자유롭게 살아가라고 말한다. 소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조용한 절망 속에서 살아가며, 자신의 시간을 통제하지 못하고 물질적 욕구와 사회적 통념에 얽매여 살아간다고 지적한다. 그는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계획하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시간을 투자하며 자유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나는 의도적인 삶을 살고 싶었으므로 숲속으로 들어갔다.
삶의 본질적인 사실을 직면하고 삶이 내게 가르쳐 주는 것을 배울 수 있을지를 살폈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내가 온전한 삶을 살지 못했음을 자각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삶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에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고 싶지 않았다.
p.121
두 번째는 단순하고 검소한 삶이다.
자신의 많은 일들을 더 늘리지 말고 두세 가지로 단순화하고 불필요한 소유물을 줄이고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하며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강조한다. 자발적 빈곤을 선택하여 공정하고 현명한 인생 관찰자가 되어 보라고 권한다.
현인들이 행동한 대로, 가난을 마당의 화초처럼 가꾸어라.
옷이든 친구든 새것을 얻으려고 너무 애쓰지 마라.
옛것에 시선을 돌리고 그것으로 돌아가라.
사물은 바뀌지 않고 우리만 바뀌는 것이다.
p.435
마지막으로 자연을 통해 깨닫는 삶이다.
소로는 자연과 교감하여 삶의 지혜와 영감을 얻고 고독한 시간을 통해 자기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자연은 그에게 단순한 환경이 아니라 깨달음을 주는 스승이자 고독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친구였다. 자연과 함께 한 고독한 시간을 통해 자신 내부에 있는 새로운 대륙을 찾아나서는 콜롬버스가 되어 보라고 강조한다.
내 인생을 두른 넓은 여백을 나는 사랑한다.
때때로 여름 아침에는, 평소처럼 목욕하고 나서
해 뜰 때부터 정오까지 햇빛 환한 문턱에 앉아,
소나무와 호두나무와 옻나무에 둘러싸여
완전한 고독과 정적 속에서 명상에 잠겼다.
p.151
남편은 은퇴 후 전원생활을 꿈꾸며, 도시를 떠나 농사를 지으며 노년을 보내자고 유혹한다. 그럴 때마다 나의 대답은, 나이 들수록 병원 가까운 도시에 살아야 한다는 지인들의 말로 대신했다. 사실 지금까지는 문명과 멀어진 삶을 원치 않았다.
숲속 오두막집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문명을 접속할 수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호수 공원 근처 도서관에서 홀로 독서와 필사를 하며 고독한 자유를 즐기고 있다. 도서관을 나와서는 호수 주변을 산책하며 자연 속에서 계절의 변화를 감탄하며 살아가는 것도 지금은 나에게 충분히 좋은 삶임을 깨달았다. 더불어 자연 속에서 새로운 행복을 찾아 나선 소로의 능동적인 힘은 새로운 도전이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볼 수 있도록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